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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0 컬쳐

현상 유지를 위한 변화 ― 일본 드라마 <지속 가능한 사랑입니까?>

2022.08.06

ⓒ TBS <지속 가능한 사랑입니까?> 스틸

하루는 뇌우가 몰아치고, 다음 날은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나날들, 환경 위기와 요동치는 물가 속에서 새로이 떠오른 화두가 바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지속 가능성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버텨나갈 수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견딘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필요한 물자가 꾸준히 공급되어 고갈되지 않고, 미래의 세대가 누려야 할 자원을 미리 끌어다 쓰지 않는다는 의미까지도 이 단어의 뜻에 포함된다. 환경과 관련한 맥락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요즘은 비즈니스나 개인 삶의 영역까지도 그 쓰임새가 확장된 듯하다. 지금 사회에서는 성공과 상승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삶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노력이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개발과 향상이 아니라도 지속 가능한 삶을 누린다는 것만도 축복이며 한편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상태이다.

2022년 2분기 일본 드라마 <지속 가능한 사랑입니까? ~아버지와 딸의 결혼행진곡~>(TBS 방송, 국내에서는 채널J와 왓챠 방영)은 사랑과 삶을 지속 가능성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현지에서는 줄여서 “지조코이”라고 부르는 이 드라마는 일상적인 설정에 급박한 사건이 없어서 잔잔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그만큼 삶의 평범한 의미를 깊이 파고든다. 극의 중심은 요가 강사인 딸 사와다 교카(우에노 주리)와 그의 아버지이자 사전 편집자인 사와다 린타로(마츠시게 유타카)이다. 어머니가 죽은 지 2년, 딸과 아버지의 동거 생활은 무난하면서도 삐걱삐걱 유지된다. 요가 강사로 일하면서도 슬슬 독립을 꿈꾸는 교카는 창업 세미나에 등록하고, 거기서 우연히 만난 히가시무라 세이타(다나카 케이)에게 호감을 품는다. 자신의 인생 계획을 우선시하고 싶은 교카는 세이타에게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교제”를 신청하지만 거절당하면서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린타로는 교카의 새 출발을 위해서 딸과 함께 결혼상담 업체에 등록하기로 결정한다. 원치 않지만 아버지를 위해 결혼상담소에 간 료카는 그 회사의 직원인 세이타와 재회한다.

ⓒ TBS <지속 가능한 사랑입니까?> 스틸

드라마의 부제가 알려주듯이 <지조코이>는 인생에서의 결혼의 의미, 결혼으로써 만들어지는 가족의 의미를 정의하려고 한다. 아버지 린타로가 사전편찬자인 만큼 이 드라마에서는 단어의 뜻을 여러모로 살펴본다. 린타로는 한국적 맥락이라면 금수저/흙수저 논란과 유사한 “부모뽑기(親ガチャ)”라든가, “썸을 탄다”라는 신조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한편 “결혼”이라든가 “살아간다”라든가 하는 기존의 단어들을 어떻게 새롭게 바라볼 것인가를 고찰한다. 기계적이고 감정을 억압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요가 강사가 된 교카는 대조적으로 몸이 알려주는 솔직한 언어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교카는 요가 강습 중 평화로운 삶을 가꾸기 위한 행동 원칙들을 알려주는데, 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만트라이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지만 생활을 맞춰나갈 자신이 없어서 친구 사이를 이어가는 교카와 세이타, 그리고 소꿉친구로서 교카를 짝사랑하고 무엇이든 맞춰주려는 하야테(이소무라 하야토) 사이의 삼각관계도 극의 흥미로운 요소이다.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신경전이라는 구태의연한 면이 없지 않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우선시해야 하는 점을 이 관계를 통해서 비춰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교카는 나의 삶을 바꿔가면서까지 만나야 하는 사랑이라는 건 있을까,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위한 조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기에게 계속 던지면서 흔들린다. 하지만 솔직한 흔들림조차 삶의 일부이다.

드라마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에만 초점이 있지 않다. 아버지 린타로는 결혼상담 업체에서 정형외과 의사 히나타(이가와 하루카)를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의 가능성을 그리게 된다. 린타로는 교카의 어머니를 사랑했고 함께한 결혼 생활은 행복했지만, 하나의 사랑이 끝났다고 인생도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위 ‘고스펙’의 히나타는 그렇기 때문에 되레 결혼 시장에서의 조건을 따지지 않는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형태가 정해진 결혼이나 연애가 아니라 어떤 형태가 되었든 행복이라는 것을 그들 모두가 깨닫는다.

ⓒ TBS <지속 가능한 사랑입니까?> 스틸

상대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크디큰 배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민을 평화롭게 풀어간 드라마지만 그 내용은 가볍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에노 주리의 건강하면서도 깊이 있는 연기가 돋보인다. 국내에는 <노다메 칸타빌레> 등의 4차원의 독특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지만, 30대 후반이 된 우에노 주리는 독립적이면서도 감정에 정직한 교카를 자신에 어울리는 캐릭터로 구현해냈다. 다나카 케이도 환경과 본연의 성격 때문에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세이타를 자연스럽게 연기하며 우에노 주리와 합을 맞춘다. 일에 충실하면서도 교감할 수 있는 대상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현대인들의 갈망과 설렘이 이들의 관계 속에 들어 있다. 교카와 세이타는 성격이나 식성 등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상대의 다름을 이해하는 배려를 배워가며 지속되는 관계를 꾸려나간다.

극의 후반부에 이르면 <지조코이>의 인물들은 결국 “살아간다”는 말에는 “변화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린타로는 과거, 일본어학을 공부하던 대학원 시절의 지도교수에게서 들었던 말을 떠올린다. 병상에 누운 지도교수는 유언처럼 린타로에게 변화하지 않는다면 살아 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지속한다는 건 매번 똑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뜻일 수가 없다. 실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안다. 말과 몸을 포함, 세상 모든 것들은 변해가고, 그에 맞춰서 나를 바꾸어야만 지속이 가능하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변해갈 수밖에 없다. 교카와 세이타는 지속 가능한 사랑이란 나를 변화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배운다. <지속 가능한 사랑입니까>는 삶의 계획을 자기 힘으로 꾸려나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그 방법을 같이 생각해주는 드라마이다.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해서 변화하며 살아간다.


글.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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