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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2 스페셜

MBTI의 밈에 빠진 사람들

2021.11.28 | 적극적 과몰입의 세계

식빵 봉지를 떠올려보자. 빵을 꺼낸 , 당신은 입구를 어떻게 밀봉하는가? MBTI 밈에 따르면, 매듭을 묶어 빵을 보관하면 ENTJ, INTJ 유형에 가깝고, 밀봉클립을 쓴다면 ENFJ, INFJ일 수 있다. 묶는 것도,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싫어서 그냥 방치한다면? 당신은 혹시 ENTP나 ISTP 유형이지 않은가?

MBTI 검사로 알려진 성격유형 테스트의 밈들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이 16가지 유형에 속한다고 가정하고, 친구의 예민한 질문엔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려운 일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를 분석해서 유형별 궁합과 관계성까지 파악한다. 밈들은 ‘같이 있으면 절대 안 싸우는 유형들’, ‘조별과제 A+ 가능한 유형들’ 같은 식으로 직관적이면서도 친근해서 MBTI 유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혈액형·심리테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간단한 상황극 형태다. 유명한 MBTI 밈 중 하나인 ‘같이 있을 때 절대 안 닥치는 조합’에 따르면, ENFP, ENTP 유형은 함께 있을 경우 시끄럽고 대화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외향을 지향하는 ‘E’로 MBTI가 시작하는 이들은, 주로 외부 세계나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MBTI 유형 안에선 내향을 지향하는 I형, 외향을 지향하는 E형이 각자의 에너지를 다른 방식으로 소모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람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힘을 얻는 E 타입과 혼자만의 시간, 내적인 에너지에 집중하는 I 타입의 차이는 수많은 콘텐츠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현실을 중시한다’고 알려진 S 타입과 ‘미래에 초점을 두는’ N 타입의 간극 역시 자주 언급되곤 한다.

성격도 밈이 된다
아이돌 멤버 등 유명인들도 팬들과 소통하는 ‘라방’이나 각종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MBTI를 언급하는 추세다. 공공기관에서는 MBTI를 직원 역량 교육에 활용하는가 하면, 입사지원 시 자기소개서에 MBTI를 기재하라는 회사도 늘고 있어, MBTI는 이제 현대인의 프로필이나 마찬가지다. 간이검사로 알려진 ‘16personalities’ 사이트에서 도출된 유형이든, MBTI협회에서 제안하는 공식 검사에 임하든, MBTI는 나 자신을 알 뿐 아니라 나와 잘 맞는, 혹은 맞지 않는 타인을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유형별 비교분석을 통해, 아예 모르는 타인과 MBTI로 대화를 시작하거나, 밈의 일종인 ‘MBTI 궁합’으로 새로운 인연을 결정하는 이들도 많다. 메신저의 오픈채팅방에서 MBTI를 검색하면, 16가지 성격유형을 주제로 한 오픈 채팅이 수두룩하다. 특정 유형만 입장 가능한 채팅방도 있다. 직관형, 감성형 등으로 채팅방의 콘셉트를 정해 참여자들이 MBTI를 주제로 대화하는 오픈 채팅에 참여한 이들은, 내 ‘본성’과 ‘사회 생활용’ MBTI 유형이 다르다는 점을 깨닫거나, 나와 비슷한 성향을 공유하는 이들을 만나고 일상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사주, 혈액형으로 성향이나 개인의 선호도를 짐작하듯이, MBTI로 각각의 성향과 취향을 짐작하는 게 당연해진 것이다.

적극적 과몰입의 세계
유튜브에선 크리에이터들이 영상 플랫폼의 장점을 살린 MBTI 상황극을 만들어 인기를 얻는다. “우울해서 머리 잘랐어”, “시험 망했어” 같은 친구의 질문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두고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토론을 벌인다. T 타입의 경우 ‘머리를 어느 정도 길이로 잘랐는지’, ‘무슨 시험을 쳤는지’를 궁금해하지만 F 타입의 경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궁금해한다는 식의 차이를 발견하고 신기해한다. 사람마다 공감과 생각의 발전 방향이 다르다는 데에 집중하는 콘텐츠다.

특히 코미디언 강유미의 유튜브 채널은 MBTI 유형을 캐릭터화한 롤플레잉 영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주로 개인의 에너지를 직장 생활과 가족, 친구 간의 만남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진 15~20분 길이의 영상이다. 구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주변인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들의 특성을 나열한다. 댓글을 통해 확산되는 유형의 특징은 이런 식이다. ‘계획을 끊임없이 세운다’, ‘스스로 맞춤법 틀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거짓말을 극도로 싫어한다’. 물론 유형별 특징이 한 인간을 모두 포괄하지는 못하고, 사람이라면 모두 조금씩 갖고 있는 성격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이 말도 저 말도 맞는 것 같고, 테스트를 할 때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것도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요즘은 XXXX로 살고 있다’는 말로 최근의 기분을 설명하는 경우도 SNS 프로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MBTI 콘텐츠에서 자주 보이는 댓글이 있다. “살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못 만나봐서 내가 이상한 줄 알았다”, “내 성격이 못난 줄 알았는데 비슷한 사람들을 보니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같은, 위로와 안정의 증거들이다. MBTI 검사, 그리고 생산되는 밈과 짤이 크게 ‘흥하는’ 건, 나를 알고 서로를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에 목마른 사람들이 자신뿐 아니라 타인과 더 나은 관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관계를 시작하기에 앞서 서로의 MBTI를 먼저 확인하는 절차는, 이미 새로운 매너로 정착했다.


황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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