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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4 인터뷰

흙에서 자란 내 마음

2021.07.18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정지용의 시 ‘향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흙에서 자란 내 마음…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옥천에서 태어난 시인의 애틋한 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스탤지어는 다다를 수 없는 장소를 몹시 그리워하듯 뭉클하게, 또 액자 속 아름다운 사진처럼 영원으로 묘사되곤 한다. 경부선 기차가 서울을 출발해 대전을 지나 충북 옥천에 있는 친구의 집에 도착할 때면 묘하게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하다. 옥천에 오면 유명 관광지나 맛집 등을 열심히 검색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친구의 집에 머물며 하루 종일 꽃 내음 가득한 정원만 돌아봐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도시를 떠난 친구는 정원이라는 신의 놀이를 통해 자신만의 소우주를 만들려 한 것이 아닐까. 그는 자신의 고향인 이 땅에 씨를 뿌리고, 계절의 흐름에 따라 생명을 거두며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는 숭고한 표정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 각각의 표정들에는 희망과 슬픔이 담겨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마다 비현실적인 풍경에 저절로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충청북도 옥천군에 사는 나의 오랜 친구 김종민은 소와 꽃을 키우며 목장 안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옥천에서의 삶은 어때?

서울에 살 때와 비교해 매우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어. 사람은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도 소는 그렇지 않잖아. 주말이든 연휴든 매일 밥을 주고, 똥을 치워야 하니까.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는데 오히려 그런 반복적인 생활이 나를 건강한 인간으로 만들어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됐어.

도시와는 다른 리듬이네. 소를 키우는 사람의 일과가 궁금해.

한우를 키우고 있어. 쉽게 말해 인간이 먹을 소를 키우는 거지. 어미 소가 송아지를 잘 낳게 도와줘야 하고, 소들이 아프지 않게 보살펴야 하고, 소들을 살찌우기 위해 사료도 준비해야 하고, 또 목장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고, 목장과 관련된 모든 일이 나의 업무야. 업무 외 시간엔 목장에 꽃을 심고 가꾸는 중요한 취미를 즐기면서 살고 있어.

언제부터 전원생활을 하고 싶었어?

늘 내 마음속에 있었어. 학창 시절부터 집에 대한 로망은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이었거든. 상상 속에서 그 집을 수만 번 짓고 부시곤 했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아직은 꿈의 집은 아니지만 현실과 타협하면서 점차 근접해간다고 느껴.

좋아하는 집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잖아. 어때?

일단, 넓은 집을 좋아해. 이번에 침실을 크게 만들어보니 굉장히 만족스럽거든. 평소 귀찮아서 청소를 잘 안 하는데 방이 넓으니까 청소를 덜해도 깨끗해 보이는 장점이 있어. 넓은 공간이 주는 심리적 여유가 있더라고. 분명 대도시의 집이 주는 의미와 다른 점 같아.

형은 무엇이든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것 같아. 남들은 섣불리 이해 못할지라도,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도대체 어떤 확신으로 사는지 문득 궁금해졌어.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에 살면서 나아질 게 없다고 생각하면 슬퍼지잖아. 과거의 집을 떠올리면 ‘어떻게 거기서 살았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여기까지 버텨왔어. 나는 공상가인 편인데, 살다 보니 신기하게 자연스럽게 어느 부분 실현이 되더라고.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고 믿어. 하고 싶은 게 워낙 많은 성격이다 보니까 이렇게 하나씩 이루다 보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직접 만든 정원을 바라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

정원 가꾸기는 마치 ‘신의 놀이’ 같아. 정원을 ‘소우주’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어. 만약 신이 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감히 정원 만들기도 그와 비슷한 재미를 준다고 생각해. ‘너는 여기서 피어나라’는 마음으로 씨앗을 심으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아름다운 조각이나 욕조를 원하는 곳에 둘 수고 있고. 하지만 전지전능한 신이 되지는 못해. 궂은 날씨 때문에 씨앗이 싹 트지 못할 수도 있고, 그만큼 관리를 못하면 온갖 풀들이 한데 뒤엉키기도 하니까.

귀농에 관심을 갖는 청년들도 많잖아. 적응하는 데 어렵진 않았어?

나 같은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야. 옥천이 나의 고향이지만, 초등학교 때 대전으로 이사 가서 줄곧 대도시에서 살았거든. 그리고 성인이 되어 다시 돌아와보니 나는 외지인도 아닌, 그렇다고 토박이도 아닌 애매한 상태였어. 그래도 나름 장단점이 있기도 해. 도시인들은 오히려 프라이버시가 없으면 불편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땐 가끔 외지인인 척한다거나, 반대의 경우엔 ‘OOO의 아들입니다’라고 하면 내 정체성이 쉽게 설명되기도 한단 말이야.

오래된 집을 직접 개조하고, 지어보면서 뭘 느꼈어?

아무래도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어. 사진은 다시 찍을 수 있지만 집은 한번 지으면 되돌릴 수가 없잖아.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해야 된다는 부담이 있었지. 실용성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또 직접 해보니까 건축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게 됐어. 언젠가 다시 집을 짓는다면 전문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함께 더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어.

이 집은 형을 닮았네. 목장 안에 있으면서, 사무실이자, 세상 단 하나뿐인 집이니까.

그전엔 내 방이 침실 겸 사무실이었어. 따지고 보면 집에서 24시간 근무하는 느낌인 거야. 자려고 누워 있어도 컴퓨터 모니터가 보이고, 일해야 되는 서류가 잔뜩 책상에 쌓여 있었지. 이 집의 궁극적인 목표는 비록 목장 안에 집이 있더라도 휴식과 업무가 분리되는 거야. 스스로 만족할 쾌적한 침실에서라도 편안한 휴식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짓기를 시작하게 됐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뭔지 궁금해.

‘풀 뽑아야 되는데…’ 이제 곧 장마철이잖아. 정원엔 잡초도 정말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자란단 말이야. 꽃들을 쑥쑥 잘 자라게 하려면 잡초를 미리미리 뽑아둬야 해. 잡초가 만든 그늘이 꽃들 위로 지지 않도록. 안 그러면 올여름은 지는 거야.


글/정규환
사진/곽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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