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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8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홈리스

2021.04.06 | 홈리스 여성 이야기

코로나19와 홈리스의 삶
“오늘은 꼭 검사받으셔야 해요! 검사 안 받으면 시설을 이용하지 못한다고요.”
“아니, 나 지난주에 검사받았는데 왜 또 받으래. 무슨 검사를 맨날 받으라고 하냐고.”
“일주일에 한 번씩 검사를 받으셔야 여기 있을 수 있다니까요.”
코로나19 선제검사를 받네, 못 받네 하는 이 실랑이는 요즘 내가 일하는 곳에서 거의 매일 보는 풍경이다.

지난 1월에 서울역의 홈리스 시설에서 처음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고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일시보호시설에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 1년간 전체 이용인들에게 마스크를 쓰도록 하고, 되도록 외출을 자제해달라 하고, 매일 두 차례씩 소독액으로 청소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듯하여 외부 전문 업체에 맡겨 1~2주에 한 번씩 대대적인 방역소독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1월 말 이후 서울시의 지침은 시설의 모든 실무자와 이용인 모두 의심 증상이 없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코로나19 선제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음성 판정을 받지 않으면 시설 이용이 허용되지 않는다. 몸도 마음도 힘든 분들이 매주 20분 거리의 선별진료소에 다녀오는 게 그렇게 수월한 일은 아니다. 지난 1년, 시설 안에서도 절대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며 이용인들과 힘겨운 씨름을 했는데, 안 되는 일이 하나 더 추가되니 그만큼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쉽지 않다. 사실 코로나19의 유행 이후 누구라도 일상의 위기와 변화를 경험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니 홈리스만 코로나19 때문에 더 힘들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거처가 안정되지 않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위기감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되도록 안전한 집에 머물러야 하는 보통의 생활에서 느끼는 갑갑함이 사치스러울 정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소독액을 분사하는 곳에 있어도, 24시간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매주 코로나19 검사를 받아도, 한 방에서 여러 명이 생활하고, 욕실과 식사 공간을 공유하며 몇 십 명, 혹은 몇 백 명이 한 건물에 있는 한 집단감염의 위험은 상존한다. 그사이 겨울철 거리 생활을 하는 홈리스들의 동사 위험을 걱정하여 지하도에 만들어졌던 응급 잠자리는 몇 차례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집단생활이 집단감염의 위험을 높이니 고육지책이었을 텐데, 홈리스 입장에서는 영하의 날씨에 추위를 견딜 것이냐, 아니면 코로나 집단감염의 위험을 피할 것이냐 중 그 무엇을 택해도 안전하지 않은 녹록지 않은 현실이었을 것이다. 지난겨울이 홈리스들에게는 그토록 혹독했다.

고립! 이중고!!
요사이 다행히도 노숙인 시설에서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였다는 소식은 없다. 1~2월에 100여 명의 홈리스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사실 ‘아, 올 것이 왔구나.’ 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 1년 가까이 대유행을 피해왔다는 게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이었으니… 그간 홈리스 지원 현장에서는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한 거지?’라며 이런저런 상황 분석을 하기도 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던 현장의 실무자들과 이런 현실을 인내한 홈리스 당사자들 덕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어쩌면 홈리스들의 생활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실제로 홈리스들은 교회 예배나 학교 출석, 유흥업소나 카페 출입 등 많은 사람들과 교류나 소비를 매개로 한 접점이 적은 편이다. 지역사회에서의 교류보다는 홈리스 커뮤니티 내에서의 교류에 국한된 측면이 강하다. 홈리스 상당수가 가정이 해체되어 연락하는 가족이 극히 드물고 또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독신의 비중도 높으니 가족생활을 매개로 교류가 생길 리 만무하다. 일반 노동시장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의 비중도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1년을 버티다 결국 집단감염이라는 현실을 경험하고 난 지금은 지난해 1년 가까이 확진자가 없었던 게 결국은 ‘운’의 작용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더는 운에 기대기는 힘들 것이다. 홈리스가 안전한 주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전염병을 피하기란 대단히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홈리스들의 거처로 제일 먼저 떠올리는 소위 ‘복지시설’은 필요한 경우 자가격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일뿐더러, 서글프게도 일정한 거리두기조차 용이하지 않는 곳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화장실과 샤워실 같은 위생 시설이 갖춰진 독립 거처가 없이는 밖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는 고립을, 그리고 안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한계로 감염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이중고를 겪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안전한 집이 필요해
코로나19 시대, 비대면 네트워크를 어떻게 다져나갈지 여러 가지 생활문화에서의 실험과 시도가 이루어지는 때, 홈리스들은 어쩌면 시설이나 노숙인 커뮤니티 내에, 혹은 고시원에 고립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그 안은 물리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하지 않아 감염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은 곳,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유행은 홈리스와 같은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건강할 권리, 식사를 할 권리, 안전한 주거에 머물 권리 같은 기본권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의 공포와 위기가 가뜩이나 위태로운 홈리스의 삶을 더 흔들지 않도록 하려면 구태의연하지만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홈리스에게도 안전한 집이 필요하다고.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 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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