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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3 스페셜

숨 가쁜 주말의 밥, 밥, 밥

2020.08.26 | 육아하는 집의 '돌밥' 일기

주말 아침입니다. 밤새 이어진 빗소리에 푹 잠들지도 못했는데, 아이는 “엄마, 아빠, 놀아줘.” 하고 흔들어 깨웁니다. 평소엔 깨워도 안 일어나겠다고 난리를 치면서 주말엔 왜 꼭 일찍 일어날까요. 막 토요일이 되었는데 월요일이 그립습니다. “아으으으~” 소리를 내며 뻐근한 몸을 일으켜 가장 먼저 냉장고를 열어봅니다. 이틀간 또 뭘 해 먹여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집 앞 화단에 나갔습니다. 밤새 핀 샐비어 꽃을 따 아이 입에 물려주고, 아이는 꿀을 빨아 먹습니다.

아침 9시부터 요리하기는 귀찮습니다. 달걀 세 알을 프라이팬에 굽고, 이틀 전 얼려둔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립니다. 반찬으로 김치, 명란젓, 매실장아찌, 멸치볶음 등을 꺼내놓았더니 아이 표정이 시무룩합니다. 얼른 간장과 참기름에 밥을 비벼주고 김 한 봉지를 꺼내준 후에야 먹기 시작합니다. 반찬 상태를 보며 ‘백김치랑 멸치볶음은 오늘 다 먹어야겠네. 장아찌는 조금 더 새로 무치고.’ 하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반찬이 없는지 아이는 밥을 반쯤 먹고 남겼습니다.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냉장고를 열어보며 “엄마, 저거 먹어도 돼요?” 하고 물어봅니다. 사과와 복숭아를 깎아 접시에 담아 건넵니다. 아이는 포크로 사과를 찍으면서 또 말합니다. “엄마, 저거 식빵도 먹으면 안 돼요?” “아이 녀석, 밥을 먹을 일이지.” 구시렁거리며 다시 일어나 토스트를 만듭니다. 달걀을 풀어 밑간을 하고 우유도 조금 붓습니다. 구운 빵을 먹기 좋게 잘라줍니다. 아이는 과일과 빵을 먹고 나서야 드디어 흡족한 듯 “꺼윽” 하는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말, “엄마, 점심때는 월남쌈 해주세요.” 아, 오늘 점심은 월남쌈이구나.

낮 12시,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는 아이에게 비가 와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럼 카페에 가서 빙수 먹자, 빙수! 빙수 먹으러 가자아~ 방방이 뛰러도 못 가는데!” 하고 화를 냅니다. 종종 가던 키즈 카페를 못 간지 어언 다섯 달째인 데다 집에만 있으니 꽤 갑갑한 모양입니다. 카페도 코로나19 때문에 안 가는 게 좋다고 하니 방바닥을 뒹굴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대신 맛있는 블루베리 아이스크림 만들어줄게.” 하고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하는 말. “나는 빙수가 먹고 싶단 말이야!” 하지만 눈물은 그쳤습니다. 냉동 블루베리와 떠먹는 요구르트, 꿀을 믹서에 간 뒤 각얼음 통에 얼립니다.

재료 준비만 한 시간
월남쌈 재료를 사러 나왔습니다. 햄, 단무지, 맛살, 파프리카, 오이, 무순, 방울토마토, 라이스페이퍼, 김밥용 김. 집에 와서 재료를 씻고 다듬어 알맞은 크기로 썹니다. 라이스페이퍼와 김도 길게 반으로 자릅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싸 먹기 좋으니까요. 재료를 준비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립니다. 서서 계속 칼질을 하고 있자니 다리가 아프지만, 이렇게 준비해서 통에 차곡차곡 넣어두면 사나흘은 편합니다. 파프리카와 오이, 방울토마토는 적당히 썰어 식초, 설탕, 올리브유, 소금, 후추를 넣어 버무립니다. 냉장고에 두고 며칠 먹을 수 있는 상큼한 여름용 샐러드가 완성됩니다.

오후 2시, 쌈 재료를 꺼내고 따뜻한 물을 준비합니다. 집 앞 화분에서 키우는 상추도 몇 장 뜯어 왔어요. 김에 밑간한 밥을 얇게 깔아 아이에게 넘겨줍니다. 재료를 넣어 돌돌 말면 김밥으로도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세 식구는 각자 입맛에 따라 월남쌈도 싸고, 김밥을 말기도 합니다. 본인 취향대로 재료를 넣으니 “이거 먹을래, 저건 먹기 싫어.” 같은 말도 없습니다. 몇 개씩 만들어 먹은 뒤 아까 얼려둔 블루베리 요거트 아이스크림 다섯 개를 접시에 담아줍니다. 아이는 더 달라고, 너무 적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반려되었습니다. “그러면 배 아프고 이에 벌레 생겨서 안 돼요. 이거 먹고 치카 해야 해요. ” 시무룩하던 아이는 하나를 들어 먹으면서 금세 방긋 웃습니다. “맛있어! 그럼 내일도 다섯 개 줘야 해.”

에어프라이어야, 고마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평일엔 하루 두 끼를 겨우 먹는데, 주말엔 아이 입맛대로 만들어 주다 보니 하루 종일 배가 부른 상태입니다. 차를 준비해 남편과 마시고 있으려니 종이에 그림을 그려 가위로 오리고 있던 아이가 달려와 “엄마 나도 차!” 하고 외칩니다. 아이에게는 루이보스와 페퍼민트, 레몬머틀을 블렌딩한 차를 우려 줍니다. 아이가 두어 잔 마시더니 다시 놉니다. 남편과 천천히 차를 마시며 소화시키고, 미지근하게 식은 아이의 차를 빨대 컵에 담아 책상 옆에 놓아둡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는 이걸 마시면서 놀곤 합니다.

저녁이 되고, 낮에 먹은 월남쌈 재료를 다시 꺼내자 아이가 말합니다. “월남쌈 먹기 싫어요. 다른 거 먹고 싶어요!” 냉동 닭 날개를 해동해 양념장에 버무린 뒤 180℃에서 10분간 굽고, 뒤집어서 양념을 바른 뒤 5분 더 굽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핫윙이 완성되었습니다. 에어프라이어가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아이는 핫윙 열두 조각을 먹고, 엄마와 아빠가 만들어준 월남쌈과 김밥을 하나씩 먹은 뒤 만족스러운 듯 “이제 배부르다.” 합니다. 내일은 또 무얼 해서 먹이나…. ‘냉동해둔 밥과 고기가 아직 있고 채소가 시들시들하니 카레를 만들어야겠다. 그러면 몇 끼 분량은 나오겠지. 바질이 좀 자랐던데 버터와 올리브유, 치즈, 소금, 꿀, 마카다미아랑 같이 갈아서 바질 페스토를 만들면 남은 식빵을 찍어 먹을 수 있겠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될지는 잘 모릅니다. 집안일은 ‘어제의 내가 준비해둔 것에 오늘의 내가 감사하는 일’의 반복입니다. 배가 빵빵하게 부푼 채 남편 품에 안겨 책을 읽는 아이를 보면 흐뭇하면서도, 월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는 ‘3귀’ 존재, ‘참 귀엽고, 귀하고, 귀찮다.’ 하고 속으로 읊조려봅니다.


혜림
여섯 살짜리 딸을 키우는 결혼 10년 차, 만 39세 맞벌이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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