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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2 인터뷰

다정하게, 두려움 없이

2020.08.13 | 래퍼 슬릭

슬릭은 드문 래퍼다. 여성 혐오적 가사가 ‘펀’하고 ‘쿨’하다고 생각하는 힙합계와 선을 그었고 사회적 소수자를 포괄하는 교차성 페미니즘을 자주 가사로 표현한다. 여성 뮤지션들이 총출동한 예능 프로그램 Mnet <GOOD GIRL: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를 통해 작은 선물에 크게 감동받고, 여성 동료들과의 협업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이 귀엽다고 ‘순두부’ ‘행복한 고구마’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가 ‘순두부’가 되었지만 변한 건 없다. 마지막 무대 위에서 슬릭은 “내가 필요했던 건 많은 돈이라기보다 내가 사랑하는 너가 나를 사랑하는 거야”라는 랩으로 사랑과 포용을 노래했다. 그건 쉽지 않다. 슬릭은 쉽지 않은 길을 가는 예술가다.

‘인권 행사계의 장윤정’이었는데 <GOOD GIRL> 출연으로 이제 전 국민에게 귀여움을 받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하하. 이상하기도 하다. 집에서나 귀여움을 받았는데. 어색한 면도 있다. 사람을 귀엽다고 하는 게, 내가 누굴 귀여워할 땐 몰랐는데 나를 귀여워하니까 계속 귀여워야 하는 건가? 귀여운 척해야 하는 건가? 난 안 귀여운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귀엽지 않은 많은 면을 알고 있기에 자기 자신을 귀엽다고 생각하진 않잖나. 그래서 나중에 안 귀여워지면 어떡하나 불안하기도 하고. 벌써 그렇다.(웃음)

<GOOD GIRL> 첫 무대에선 하고 싶은 걸 다 보여줬다. Mnet 무대에 무지개 깃발을 올리다니. 어떻게 구상했나.
방송 무대 경험이 많지 않아서 처음부터 Mnet에 무지개 깃발을 세우면 멋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작가님이 무대에서 쓸 소품을 얘기해달라고 하기에 뭘 쓸지 고민했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소품을 써본 적이 없거든. 마침 내가 트랜스젠더 권리에 관심이 많았다. 변희수 하사님의 군 강제 전역과 숙명여대 합격자의 입학 포기 사건이 있었고 내 주변에도 그 사건들에 상처받는 친구들이 있었다. 방송에 나가는 김에 이 사람들의 생존에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처음엔 무지개뿐 아니라 여러 성 지향성, 성 정체성을 나타내는 플래그를 세우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없었고 어떤 플래그인지 잘 모를까 봐 무지개로 하게 됐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잘 나왔다.

마지막 무대 <잘 나가서 미안>은 퀸 와사비와 함께했다. 정반대의 색깔이라고 여겨졌지만 환상의 호흡을 보여줬고 드러나는 이미지만으로 색안경을 꼈던 사람들에게 반전을 줬다.
사실 사람들이 나와 와사비의 이미지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줄 몰랐다. 와사비는 대기실에서 처음 만나 이야기하다가 친해졌다. 음악 취향도 잘 맞아서 방송하는 내내 같이 무대에 오르자고 했었다. 우리를 다르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더라. ‘겉모습이 달라서?’인가 싶었고 오히려 공통점이 가장 많았던 친구였다.

퀸 와사비가 트워킹을 할 때 옆에서 슬릭은 체조를 했다. 굉장히 재밌는 퍼포먼스였는데,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내 애드리브였다. 댄스 브레이크의 주인공은 와사비니까 난 빠져 있다가 다시 랩을 하면 등장할 계획이었다. 방송 날 리허설 때 호루라기를 목에 걸었는데 안전 요원이 된 기분이었다. 안전 요원은 준비운동을 하니까 나도 해봤다. 리허설 때는 등장할 때 체조를 했는데, 재밌어서 본 무대에선 댄스 브레이크 때 한 거다. 무대 끝나고 내려오니까 다들 엄청 웃겼다고 하더라.

2016년에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면서 힙합계를 비판하고 멀어졌다.
힙합계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건드리는 게 짜증 났다. 모르고 쓰는 걸 텐데 너무 모르는 것 같고, 알려고 하거나 궁금해하지도 않는 게 싫었다. 힙합이라고 혐오 표현의 사용이 정당화되진 않는다고 했더니 난리가 났다. 어느 포인트에서 버튼이 눌린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내 눈엔 더 많은 게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고 그들의 눈에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지금은 아예 다른 차원에 있다고 생각한다.

업계와 등을 돌린다는 건 많은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큰 용기를 낸 것 같다.
그땐 모르고 그랬다. 최근에 ‘정말 용기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딱히 용기를 낸 게 아니었고 이렇게 될 줄 모르고 한 행동이 훨씬 많다. 큰 반향이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용기라는 건 두려움을 헤치고 나아가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딱히 두렵지 않았다. 두려워해야 하는 게 업계와 척져서 기회를 얻지 못한다든지, 돈을 못 벌게 되는 결과일 텐데 난 잃을 게 없었거든. 부자였다가 가난해지면 정말 힘들었겠지만 늘 가난했으니까.(웃음)

교차성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여성 외에 다른 소수자들도 포괄하는 교차성 페미니즘을 어떻게 공부하게 됐나.
학문으로 공부하는 거와 실제 사람들이 공유하는 페미니즘은 결이 조금 다른 거 같다. 시류를 파악하기 위해 SNS를 들여다보는데, 한때 미러링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러링의 쾌감이나 전복의 의미가 좋아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미러링으로 상처받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세상의 성별을 남성과
여성으로만 나눠야 미러링이 가능한데 그 시선 자체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다양한 성 지향성, 성별 이분법적인 구조 등을 알게 됐고, 성소수자 중에서도 성별적으로 소수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전에 SNS에 ‘서른 너머의 삶’에 대한 공포가 있다고 했다. “제3자 입장에서 본다면 어이없을 만큼 노후를 걱정했다.”고도 했고. 30대를 앞둔 여성들이 곧잘 느끼는 감정인데, 30대가 된 지금은 어떤가.
서른 살인데 인생에서 귀엽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듣고 있다. 물론 굉장히 에이지즘적인 말이긴 하다. 늙어도 귀여울 수 있다! 그런데 당사자 입장에선 되게 이상하다. ‘나이 서른에 귀엽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듣다니.’ 싶다가도 ‘이건 굉장히 ‘언피씨’한 생각이야.’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웃음) 서른 살부터는 어른이 되어야 하고 달라져야 할 거 같았는데 막상 되어보니까 아무것도 안 달라지고 어른도 안 되어서 어쩔 수 없겠더라. 어쩌면 결과가 모든 걸 설명해주는 거 같다. 신념을 지켜온 사람이라는 내 이미지도 그렇다. 내가 만들려고 한 이미지가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이고 있다. 비슷하게 지금처럼 엉망진창인 채로 살아도 될 거 같다. 세상이 멸망하진 않겠지.

추천해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
남메아리 님이 추천해준 노래인데, 칼라 블레이의 ‘Lost in The Stars’를 추천하고 싶다. 듣고 위안을 많이 받았다. 요즘 대중음악과 달라서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진지한 고민에 빠지기 좋다. 피아노와 기타만 쓰는 라이브 버전을 특히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빅이슈》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스마트폰이 현대인을 망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는 10년도 안 됐고 그전엔 또 다른 문제점이 많았다. 그러니까 심각한 일이 있다면 무시하라고 하고 싶다. 어차피 10년 후엔 아무도 그 이야길 하지 않을 테니까. 20대 여성일 때, 세상의 객체일 땐 모든 것이 마음에 다 와 닿았고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말들이었던 거 같다. ‘네가 뭔데, 내 삶을 재단해?’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 만약 삶이 당신에게 자꾸 시비를 건다면 ‘네가 뭔데. 너나 잘해.’라는 마음으로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

※슬릭님의 더 많은 화보와 인터뷰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 232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양수복
사진 박기훈
스타일리스트 김수정
헤어·메이크업 신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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