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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미경

2020.03.20 | 누구의 엄마도 아닌 배우 김미경

유리의 엄마, 은상의 엄마, 지영의 엄마…. 대중에겐 ‘엄마의 얼굴’로 알려져 있지만, 김미경은 작품 속에서 대장장이, 간호사, 해녀 등 전문 영역을 개척한 여성으로 자주 등장했고, 1985년 연극 <한씨 연대기>에서 1인 13역으로 데뷔한 35년 차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35년간 자고 난 날만큼 점점 더 연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만나는 동시대를 사는 여성이자 어머니를 매번 다르게 표현하고자 하는 배우 김미경을 만났다.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에 출연 중이다. 작품 속 엄마 은숙은 딸이 죽은 후 애써 손녀와 사위를 무시하며 지낸다. 딸 기일에도 혼자 괜찮은 척하다가 화장실에서 숨죽여 우는 엄마다. 김미경 배우가 해석한 <하이바이, 마마!>의 엄마는 어떤 사람인가.
대본을 보고 ‘이 사람은 이런 캐릭터구나!’로 보기보다, ‘나’로부터 시작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물론 허구의 연기를 하긴 하지만 ‘유리의 엄마는 이랬을 거다.’ 하는 건 거짓말이다. 내 진심으로 연기하는 역할에 다가가는 것과 허상을 만들어 연기하는 것은 다르다.

자식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상상은 어떤 엄마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죽은 딸이 다시 돌아오는 상상이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설정에 대해서는 얼마나 자신과 이입해보는 편인가.
권혜주 작가와 <고백부부> 때에도 같이 했는데, 대본을 받기 전 대략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야기의 무게가 느껴졌다.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아주 짧은 장면 안에서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내용이 시한폭탄 같았다. ‘아, 이거 너무 깊다. 내가 너무 힘들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프게 대충 ‘그러겠거니’로 다가가는 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유리가 드라마에서 남편을 생각보다 빨리 만났다. 앞으로 ‘유리와 엄마가 언제 만날까?’가 드라마의 포인트 같은데.
엄마를 만나면 너무 슬플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스포일러라 말씀드리긴 어렵고.(웃음) 연기자들끼리도 이야기를 나눴다. 이게 어떤 마음일까. 나로 놓고 봤을 때 죽은 딸이 살아 돌아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감정이다.

김태희 배우와는 엄마와 딸로 다시 만났다.
처음 만난 건 드라마 <용팔이>에서였다. 김태희 씨는 아무래도 결혼 후 두 명의 아이도 생겼고, 연기자로서 폭과 시야가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면에서 전에는 표현하지 않던 모습들도 지금 표출하고 있다. 태희 씨는 굉장히 낙천적이고 용감하다. 몸을 사리는 게 없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배우다. 정말 내 딸로 다가온다.

<하이바이, 마마!>의 은숙은 길에서 손녀를 보고도 모른 척한다. 회 차가 지날수록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많이 드러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작가님과 마음이 통했다. 이 인물은 내 아픔에 대한 위로조차 받고 싶지 않을 것이고, 방어를 할 것 같았다. 내 딸과 나의 이야기는 감히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다. 손녀가 눈앞에 있지만, 이 아이를 통해 내 딸을 기억하는 것보다 손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은숙이다. 사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물러나 있는 것이다. 딸의 방에 가서 멈춰 선 시계를 돌리고, 달력을 넘기는 장면도 그렇다. 그 방은 은숙만의 공간이다.

거의 쉬는 틈 없이 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드라마 업계에 ‘김미경 배우가 엄마로 나오면 성공한다.’라는 불문율이 있었을 정도다. 작품을 고르는 노하우나 기준 같은 게 있나.
작품 안 고른다. 들어오는 대로 한다.(웃음) 작품을 보고 ‘이건 재미없어.’ 하면서 거절하는 경우는 없다. 할 수 없는 경우는 스케줄이 겹칠 때뿐이다.

드라마로 김미경 배우를 만난 대중이 많지만, 극단 연우무대 출신이다. 연극은 어떻게 하게 됐나.
이것저것 많이 했다. 그림도 그렸고, 무용도 오래했고. 그런데 다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선배 한 분이 저를 이끌어서 연극을 보게 했다. 그때 <한씨 연대기> 리허설을 봤다. 북에서 온 한영덕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완벽하게 우리 정서의 이야기였다. 내가 알던 연극이 아니었다. 숨도 못 쉬고 구경하면서 울기도 했다. 당시 연출가 김석만 선생님과 인사를 하게 됐는데, 연극을 보고 넋이 빠진 내 모습을 보고, 연극이 하고 싶은지 물으시더라. 나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연우무대가 시작됐다. 연우무대는 위계질서가 없고 자유로웠다. 정말 운이 좋았다.

인생행로가 즉흥적으로 결정됐다. 그땐 그렇게 오래 연기를 할지 모르지 않았나.
그렇다. 그해 가을에 갑자기 캐스팅돼버렸다. 첫 작품이 <한씨 연대기>였다. 1인 13역을 덜컥 나에게 주는 바람에…. 그렇게 시작된 연기 생활이 오늘에 이르렀다.

재작년에 <한씨 연대기> 연출로 참여했다. 감흥이 남달랐을것 같다. 연출로 보는 작품은 어땠나.
어렸을 때 맡은 역할과 나이 들어 맡은 역할이 다르다. 하는 입장에서 보는 입장이 되니 데뷔작이기도 해서 그런지 욕심이 많이 났다. 고려대학교 의과대 연극반이 1993년 당시에 <한씨 연대기>를 무대에 올렸다. 이후 서로 바빠서 소식이 끊어졌다가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나 60주년 공연으로 <한씨 연대기>를 올린 것이다. 진료하랴 연습하랴, 다들 고생을 많이 하셨다. 무대 위에서 너무 잘하셨다. 그분들도 이 기억을 평생 가져가지 않을까 싶다.

1995년 결혼 후 4년간 연기를 하지 않았다. 다시 무대에 서고 싶어서 근질근질하진 않았나.
친정 엄마와 언니가 “우리가 아이 봐줄 테니 일하라.”고 했다. 만삭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고 계획했다. ‘빨리 낳고 연기해야지.’ 했는데 웬걸, 퇴원 후 우는 딸을 달래는데 눈을 깜빡거리면서 내 목소리를 듣는 모습을 본 순간 다 내려놓았다. 세상의 그 무엇도 아이보다 중하지 않더라. 지금도 그렇지만.

그러다가 1999년에 <카이스트>로 드라마를 다시 시작했다.
송지나 작가와 오랜 인연으로 알고 지냈다. 언니(송지나)는 내가 아이만 키우고 연기를 안 하는 게 보기 싫었나 보다.(웃음) 매일 톱니바퀴처럼 아이와 씨름하는 나에게 언니가 <카이스트>라는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으니 일주일에 한 번 나가서 방송에 익숙해지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인데도 망설여지더라. 그때 아이가 네댓 살이었는데, 정말로 일주일에 한 번 나갈 수 있게 해줬다. 가끔 아이가 세트장에 놀러 오기도 하고…. 아이는 TV에 엄마가 나오니까 신기해했다.

첫 드라마 연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카이스트>에서의 연기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소극장에서 관객과 눈을 마주하면서 연기하다가 카메라 앞에서 하려니 미치겠더라.(웃음) 엄청나게 NG를 냈다. 다행히 곱게 봐주셨지만. 초반에는 ‘어떻게 연기를 이렇게 해? 감정을 어떻게 끊어?’ 같은 생각을 했다. 막 울다가, 다른 거 찍다가, 아까 울던 거랑 감정 연결을 하라고 하고.(웃음) 그러다 6개월 정도 지나니 조금씩 분위기를 따라가게 됐다. 이후 드라마와 더는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망>이라는 작품을 하게 됐다. 그 작품 덕에 처음으로 내가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 김종학 감독님께서 마음대로 놀게 해주셨다. 그다음부턴 카메라공포증도 없어졌다.

지금은 엄마 역할을 많이 하지만 <카이스트>에서는 매점 언니 역할이었고 이후 이모나 선배 역할도 했다. 엄마 역할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특별한 계기는 없다. 처음 엄마 역을 한 건 <햇빛 쏟아지다>라는 작품이었다. 어느 날 연락이 왔는데, 엄마 역이라는 거다. ‘내가 벌써 엄마?’ 싶었다. “제 아들이 누군가요?” 물으니 류승범 씨라는 거다.(웃음) 고민을 좀 했는데, 연극에서 80세 노인도 했는데 ‘안 될 게 뭐 있나’ 싶었다. 그런데 엄마로 방송이 나가자마자 계속 미친듯이 엄마 역 캐스팅이….(웃음) ‘나 아직 엄마 역 맡을 나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 늘 이렇게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다니니까, 어떤 분들은 직접 만나면 왜 이렇게 젊냐고 묻기도 하신다.

<태왕사신기>에서는 대장장이, <힐러>에서는 해커, <동안미녀>에서는 패션회사 부장, 그 외에 교수나 간호사 등 전문직 역할도 많이 했다. 이렇게 직업이 확실한 역할을 할 때는 배우로서 해석의 여지가 많아 더 좋을 것 같다.
너무 다르다. 훨씬 재밌다. 평상시의 나와 가장 비슷한 캐릭터는 <힐러>의 해커나 <태왕사신기> 바손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선이 굵은 역할을 많이 했는데, 크게 부담스럽진 않다. 오히려 아름답고 부드러운 느낌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상속자들>에서 은상이가 엄마에게 화를 내는데, 엄마 역의 김미경이 다시 딸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대본을 볼 때, 내가 더 소화를 잘 해야겠다는 장면이 있을 것 같다.
엄마로 다가갈 때의 연기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과 같다. 대본을 보면서 ‘이 장면은 정말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모든 연기자가 할 텐데, 정답은 ‘나에게서 떠나면 절대 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진심이 아니면 바로 거짓말이 된다. 얼마만큼 진심인지를 내가 끄집어내야 한다.

김미경은 딸에게 어떤 엄마인가.
애한테 물어봐야 하는데.(웃음) 우리 딸은, 늘 ‘엄마 좋아’라고 말한다. 최고의 ‘베프’다. 누구와도 말할 수 없는 걸나와 공유한다. 애가 어릴 때 “엄마가 왜 좋냐?”고 물어 보니 ‘개그맨 같아서’라고 하더라. 그때 ‘정말 성공했다, 김미경 장하다.’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열 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네 자매를 키우셨다고 들었다. 김미경은 어떤 딸이었나.
어머니께서 딸들을 굉장히 엄하게 키우셨다. 집안에 남자가 없으니, 우습게 보이는 게 싫으셨던 거다. 당시만 해도 그런 게 있었다. 나머지 세 딸은 평범하게 성장했지만 저는 정반대였다. 심하게 개구쟁이였다. 운동을 너무 하고 싶었고, 잘하기도 했다. 여러 번 대표로 뽑히기도 했는데, 번번이 엄마가 못하게 했다. 딸내미 다칠까 봐. 내가 수영 배우겠다고 할 때도, 단칼에 거절하셨다. 엄마가 물을 무서워하신다.(웃음) 심각하게 말 안 듣는 딸이었다. 억지로 살아낸 것 같다, 하고 싶은 거 못하면서. 그러다 내가 돈을 벌면서부터 어렸을 때 못한 것을 시작했다.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것엔 일단 부딪혀본다. 가끔 드럼을 친다. 시간이 없어 자주는 못치지만 지속하고 있는 취미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생긴다면 하고 싶은 것은?
스쿠버다이빙을 할 거다. 여름에는 강원도에 가면 좋고, 제주도에도 간다. 다이빙하기에는 필리핀도 좋다.

<82년생 김지영>의 미숙 역시 중요한 엄마 역할이었다. 이 영화의 제일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미숙이라는 농담도 있었다. 자기 엄마에게 받고 싶은 응원을 지영이 엄마에게 받았다는 평도 많았는데.
영화 개봉 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제 인스타그램에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댓글을 단 분들이 있다. “저런 엄마와 하루만이라도 살아봤으면.” 같은 이야기를 썼더라. 무대 인사에서 만나 저를 한 번만 안아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안아주실 생각이 있나.) 당연하다. 얼마든지. 그런 댓글을 보면 가엾고 마음이 아프다. 제 주변에도 차별받고 자란 친구들이 너무 많다. 우리 시절엔 아들과 딸은 밥상도 따로 앉고, 도시락 반찬이 달랐다. 우리 집은 딸만 있어서 겪지 않았지만 내 친구들의 삶은 그랬다. 난 그런 친구들에게 ‘집을 나오라’고 했고. 차별이 비일비재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엄마가 아닌 다른 역할에 대한 갈증도 있나. 살인마나 사이코패스 같은 역할이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특정 직업을 원하는 건 아니다. 사실 내 나이 정도 되면 여성 연기자의 연기 폭이 좁아진다. 왜 이 나이엔 다양한 역할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뭐든지 할 수 있는데. 그런 답답함은 있다. 악역에 대한 욕심도 얼마든지 있다. 정말 제대로 된 악역하면 무섭지 않겠나. 근데 잘 안 들어온다. 내가 나쁜 사람 같이 안 보이나 싶다.(웃음)

만약 ‘김미경’이라는 배우를 주인공으로 연극이나 영화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을 주고 싶나.
휴머니즘을 좋아한다. 하나도 더 하지 않고 덜 하지도 않은, 정말 리얼한 연기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싶다. 정말 사실적인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이던데. 고양이는 어떻게 키우게 되었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반려동물이 없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도베르만, 도사견 사이에서 같이 뒹굴면서 컸다. 딸아이가 어릴 때 우연히 고양이를 입양해서 키웠는데, 지금 네 마리가 됐다. 덕분에 외로울 틈이 없다. 완벽한 ‘개냥이’들이다.

1985년에 데뷔한 후, 35년 차에 접어들었다. 김미경이라는 배우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어떤가.
음, 되짚어볼 만큼 여유가 있는 삶은 아니었던 거 같고,(웃음) 많은 작품을 했는데, 결국 통째로 뭔가 하나를 한 느낌이다. 연기는, 오래했기에 더 어렵다. 사람의 심리는 답이 없다. 끝없이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빅이슈'를 통해 배우 김미경의 이야기를 접할 여성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히 무슨 말을 할까. 지금의 여성들은 너무나 분명하고 똑똑하다. 우리 딸하고 이야기해봐도 사고 자체가 다르다. 젊은 분들의 이야기들이 당당하게 느껴진다. 몸이 건강한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걸 놓치지 않으면, 어디서 무엇을 해도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진행 김송희・황소연
사진 백상현
스타일리스트 박화정
헤어 소피아(제니하우스)
메이크업 양희연(제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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