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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5 인터뷰

<윤희에게> 김희애 인터뷰

2019.11.22 | 희애로부터


윤희의 전 남편은 딸에게 "니 엄마는 옆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단둘이 사는 딸이 엄마에게 먼저 말을 붙여봐도 윤희는 귀찮은 티를 역력하게 내며 단답형으로 일축한다. '피곤하다'고 한 번도 자신의 상태를 말로 설명하지 않음에도 이 여자의 표정에는 삶의 피로가 뚝뚝 묻어난다. 어딘지 무력하게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윤희가 첫사랑에게 받은 편지를 읽을 때에는 처음으로 얼굴에 표정이라는 것이 돋아난다. 무뚝뚝하고 말이 적은 중년 여성, 회상 신이나 상태를 설명하는 내레이션도 없이 그저 현재의 표정만으로 '윤희'라는 사람을 보여줌에도 우리가 그의 상처를 어루만지게 되는 것은 배우 김희애가 그런 윤희를 성실하고도 애틋하게 보듬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이나 관객이 왜 김희애를 찾게 되는 걸까요?'라는 질문에 김희애는 "신뢰? 망하지 않겠다는? 하하하"라고 답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물론 그 후에는 겸연쩍어 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말이다. 첫사랑을 찾아가는, 그러나 실은 자신을 찾고 싶어 20년 여정에 나선 여성을 그린 포근한 온도의 영화<윤희에게>의 윤희는 이렇게 호탕하고 믿음직한 김희애라는 배우의 얼굴 위에서 탄생한다.




여러 시나리오 중에서도 <윤희에게>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일단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 나에게 들어오는 작품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만 어떤 시나리오는 읽으면서도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 "너 이래도 안 볼래?" 막 밀어붙이는 장면이 이어진다거나 "뭐가 이렇게 세?" 싶은 게 많다. 독자 입장에서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이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장면이 많다. 설득력 없고 불필요하게 세기만 한 장면이 많으면 읽으면서도 부담이 된다. 그런데 <윤희에게>는 정말 좋은 한 편의 소설책처럼 읽혔다.
존재감이 큰 게 아니지만 '저 여기 있어요'라고 언뜻 드러나는. 왜 길 가다 보면 무심히 발견하는 조그맣고 예쁜 들꽃이 있지 않나. 그런 순하고 예쁜 꽃을 발견하는 것처럼 대본 읽으면서 불편한 게 전혀 없었다. 이런 대본이 정말 귀하기 때문에 해야겠다 싶었다.

<사라진 밤>과 같은 센 장면이 있는 스릴러 영화도 하지 않았나.
스릴러야 장르가 분명하다. 결국은 말이 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 같다. 필요한 장면이 아닌데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나오는 자극적인 장면들. 자극적이고 너무 무섭고 관객을 그런 걸로 끌어오겠다는 저의가 보이는 대본은 양심상 이걸 해도 되나 싶어지는 거다. 그런데 내 맘에 꼭 맞는 게 없다고 5년 10년을 쉴 수도 없지 않나.
그래서 이런 시나리오가 너무 귀하고 이런 역할을 나에게 주신 것도 감사하다. 영화제에서 공개되고, 시사 이후에 반응들도 찾아보는데 좋은 반응이 많아서 참 감사하고 좋더라. 우리가 귀하게 느끼고 만든 작품을 어루만져 주시고 알아봐 주셨다는 게. 아직까지는 절반의 성공 같다 이게 대중들의 선택으로도 이어지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다.

<우아한 거짓말>이나 <히스토리> 그리고 <윤희에게>까지, 작은 영화들을 선택하고 힘을 보태주는 것 같다. 영화를 고를 때 그냥 대작의 유명세로 선택하진 않는 것 같은데.
존재감 있는 캐릭터도 많이 들어오지만, 내 경우에는 내 역할보다는 전체 작품을 보고 선택하는 편이다.
작품이 재미있으면 내 역할이 작아도 괜찮다. 그런데 그런 경우 캐스팅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영화에서 작은 역할이지만 알고 보면 반전의 비밀을 품고 있는 인물이 있지 않나. 그런 역할에 내가 들어가면
'저런 작은 역할에 김희애가 출연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라 캐스팅에서 제외하기도 한다고 하더라.(웃음)
그런데 그런 역할 정말 재미있지 않나. 반전을 가지고 있는.

'윤희'에게는 이전에 김희애가 해왔던 많은 인물들의 단면이 있다. <쎄씨봉>의 첫사랑 서사도 있고,
<우아한 거짓말>에서 딸을 키우는 엄마, <허스토리>에서의 일본어를 쓰는 장면이라던가.

자기 안의 것을 끄집어 내서 연기하는 배우도 있지만 내 경우는 그동안 해왔던 역할 중 어떤 것도 내 자신이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지나온 수많은 배역과 작품들이 숙성되어서 나오는 건 있을 거다. 내 세포 안에서 나를 이루고 있다가 나오는 거니 당연히 역할에 녹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같은 것은 없고 다른 역할 속에도 나만의 컬러는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윤희에게>에서는 윤희가 그간 겪어왔던 폭력적인 상황들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무력한 얼굴 속에 그녀가 살아온 삶이 묻어난다.
영화 초반의 무표정한 윤희는 어떻게 해석해서 만든 것인가.

대본이 좋아서 그 안에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전에 윤희가 살아온 삶과 일본에 여행을 다녀온 후의 상황이 분명히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힘들었겠나. 자기의 생 자체를 부정하는 삶을 20년 동안 살아왔는데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물론 그녀가 힘들게 살았던 과거사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왔으면 관객에는 더 친절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엔 이러게 보여주는 게 맞았던 것 같다.

윤희와 쥰이 사랑한 과거의 일도 상상에 맡겨져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이기도 했는데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에선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나.

영화도 많이 보고, 다른 배우의 연기도 보고, 다큐멘터리도 봤다. 보통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 사회 통념과 같은 장애물 때문에 더 절절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일본에서 촬영한 쥰과의 장면들은 그 순간에 그런 감정을 쏟아 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배우라고 해서 버튼만 누르면 감정이 나오는 게 아니라서 걱정을 많이 하고 갔는데 감독인이 시나리오를 순수하게 잘 써주셔서 자연스럽게 표출할 수 있었다. 사실 울어야 한다 그러면 눈물이 쏙 들어간다. 오히려 마음을 담담하게 먹었을 때 더 잘 나오기도 하고.


쥰과의 감정 신 중에 가장 먼저 촬영한 게 어떤 장면이었나.
일본에서 쥰의 집을 몰래 지켜보다가 택시 타고 뒤돌아 가는 장면을 가장 먼저 찍었다. 너무 가슴 아팠다. 내가 원래 굉장히 이성적인 편이다. 연기할 때에도 이성적으로 하는 편인데 그 장면에서는 눈물이 멈추질 않더라 오열하면서 찍은 것도 있고, 여러 버전을 찍었는데 가장 이성적으로 촬영한 신으로 편집을 하셨더라. 연기에 정답은 없으니까. 감독님은 오열보다는 이성적인 장면을 좋게 보신 것 같다.

유재명 배우가 연기한 전 남편은 윤희를 "같이 있는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여자"라고 설명한다.
임대형 감독은 '윤희'를 어떤 인물로 설명했나. 감독과 맞춰가는 과정이 있었을 것 같은데.

감독님과는 별로 대화가 없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감독님에게 묻지만 나는 원래 질문이나 대화를 많이 하는 배우는 아니다. 다른 길로 가고 있으면 감독님이 잡아주기를 기대하는 편이다. 어떤 배우들은 대화를 많이 하고 그런다는데 나는 그런 편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길과 감독이 생각하는 길이 서로 다를 수도 있고 거기에 정답이 없다는 게 이 일의 재미있는 부분 같다. 이분이 생각 못 했던 걸 내가 해석할 수도 있고 감독님이 생각한 것에 내가 맞춰갈 수도 있고 그걸 찾아가고 하나의 창작물로 만들어지는 게 재밌다.

<아들과 딸>에서 차별받던 여성 '후남'을 연기했던 배우가 2019년에 '윤희'를 연기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윤희 역시 오빠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꿈을 접지 않나.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 중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그땐 그게 너무 흔한 일이라 다 그렇게 사는가 보다 했는데, 지금은 다르지 않나 세상이 조금은 좋아진 것 같다. 과거엔 생각지 못 했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변화들이 너무 긍정적이고 좋게 생각된다.

연기 잘하는 여배우들이 정말 많은데.
또래의 남배우들에 비해 활약할 수 있는 작품 수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나에게도 '시나리오 많이 들어오죠'라고 하시는데 그렇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우리 영화가 선입견을 깨고 더 많은 대중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창작자들도 이런 시나리오를 용기 내서 더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내년에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방영 예정이다.
공개된 게 적은데, 조금만 설명해준다면

그전에는 드라마에서 수동적인 역할이 많았다면 지금은 밖으로 표출되고 한 사람의 인물로서 바로 서는 그런 캐릭터들이 많아진 것 같다. 연기하면서도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진화되고 복잡한 생물체로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서 배우로서는 축복이다. 새로 하는 드라마도 굉장히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줄 것 같다. 연기적으로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고, 정말 연기의 희열이 느껴지는 장면도 많고 인물 자체도 복잡하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쓸모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다. 어디 갖다 놔도 도움이 되고 그 작품이 빛나는 데 도움이 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김송희
사진제공 리틀빅피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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