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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06 이슈

Human Rights

2019.07.26 | 생명의 권리와 자기 결정권 사이에서


지난 4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낙태하는 여성과 낙태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를 임신 개월 수에 상관없이 처벌 하는 형법 제269조 1항(자기낙태죄) 과 제270조 1항(의사낙태죄)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낙태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인식의 변화뿐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한 도덕적·사회적 견해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법리를 떠나, 낙태를 규정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한 사회가 생명과 인권 그리고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준다. 헌법재판 소의 판결을 환영하는 측에서는 낙태 죄가 “경제 개발과 인구 관리의 목적 을 위해 생명을 선별하고 여성의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 그 책임을 전가해왔던 역사”(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의 일환이라고 말 했고, 반대 측에서는 “수정되는 순간 부터 독립적인 인간 생명체가 시작” 되기 때문에 아기의 생사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 중 ‘자기’의 범위 안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낙태법 유지를 바라는 시민연대).

ⓒ flickr / Fibonacci Blue

재판소의 판결은 당장 법의 효력을 중지하는 ‘단순 위헌’이 아니라 국회의 법 개정이 있을때까지만 존속시키는 ‘헌법 불합치’로, 2020년까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과 특수 상황에서만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한 ‘모자보건 법’을 국회가 개정하도록 했다. 따라서 어디까지 허용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하는지, 낙태에 관한 논의는 종결 된 것이 아니라 촉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6주만 지나도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태아의 생명권과 원치 않는 임신 및 출산으로 남성은 겪지 않는 큰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 모두 근본적인 권리임에 틀림없다. 우리보다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법률 적으로 낙태 허용을 고민해온 나라들 에서는 어떻게 낙태를 규제하고 있는지 참고하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특히 서양에서는 낙태를 더 쉽게 받아 들인다는 인식이 있지만, 유럽만 하더라도 국가마다 매우 다른 낙태 관련법이 있고, 모두가 진보적이지는 않다. 또한 작년에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로 낙태가 허용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낙태는 유럽에서 여전히 큰 정치적인 화두이다.

유럽 국가 중에서는 러시아가 1920년 처음으로 낙태를 허용했는데, 이 영향으로 공산주의 체제하의 많은 동유럽 국가들이 1950년대에 낙태를 합법화 했다. 당시 동유럽에서는 낙태를 산아 제한의 첫 번째 도구로 보았는데, 그 후에는 법과 사회 인식이 바뀐 적도 많다. 예컨대 루마니아는 1956년 낙태 를 허용했다가 10년 후에는 불법으로 만들고, 1989년에 다시 합법화했다. 폴란드에서는 1993년까지 낙태를 허용했지만 지금은 산모의 건강 위협, 태아의 기형, 혹은 성폭행에 의한 임신 등의 경우가 아니면 불법이다. 우크라이나에서도 폴란드의 낙태법을 따르려는 움직임이 있다. 앞서 말한 러시아 또한 지금은 임신 12주가 지나면 산모나 태아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성폭행에 의한 임신이 아니면 낙태를 불허한다.

이렇게 점점 낙태를 저지하려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최근엔 낙태를 더 쉽게 만든 나라도 있다. 포르투갈, 스페 인, 스위스, 사이프러스 등은 1990~ 2000년대에 낙태법을 개정했다. 그리하여 포르투갈은 10주, 스위스는 12 주, 스페인은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 특히 사이프러스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전면 금지 했다가 작년 3월 12주(성폭행에 의한 임신인 경우 19주) 내에는 허용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낙태를 금지하지는 않되 기본적으로 이를 부정적인 선택으로 인식하고 단념시키려는 나라가 많다. 독일에서는 임신 3개월 이내에 낙태하려는 여성은 의무적으로 3일을 기다려야 하고, 다른 선택지에 대한 상담을 받아야 한 다; 12주 이후의 낙태는 산모의 신체적 혹은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만 허용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24주까지 낙태 가 가능한데, 상담을 받은 날과 수술일 사이에 반드시 5일을 기다리게 되어 있다; 또한 병원은 여성에게 낙태 가 아닌 방안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 벨기에는 1990년에야 낙태를 합법화했는데, 낙태하려면 상담 후 6일 을 의무적으로 기다려야 하고 임신 3개월 이내에만 가능하다. 프랑스 역시 2015년까지 이렇게 상담일과 수술일 사이에 여성이 낙태 결정을 재고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 있었다.

관련법이 더 복잡한 나라도 있다. 영국에서는 의사 두 명이 낙태가 의학적 혹은 사회적 이유로 불가피하다는 걸 보장해야 하고, 핀란드에서는 아직 12주가 지나지 않고 여성의 나이(17세 이하 또는 40세 이상)나 자녀 상황(네 명 이상의 자녀), ‘사회적 문제’(가난, 심각한 스트레스) 등의 특수한 이유가 있어야만 낙태를 허용한다. 덴마크에 서는 12주까지는 여성의 선택으로 임신중절을 할 수 있지만, 그 후에는 성폭행, 여성의 건강 문제, 태아의 기형, 혹은 여성이 경제적으로 아이를 양육 할 수 없을 때 낙태를 허용한다.

안도라, 산마리노 그리고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에서는 주 수에 상관없이 산모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완전히 금지한다. 몰타에서는 이른바 ‘전면 금지’를 택해 법적으로 산모의 생명 보호도 낙태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이들 나라는 모두 국민의 90% 이상이 천주교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역시 대다수가 천주교도인 모나코와 리히텐슈타인에서도 태아의 기형, 성폭행, 근친상간, 혹은 산모의 건강이나 생명 보호 등의 근거가 있을 때만 낙태를 허용한다. 태아가 잉태되는 시기부터 생명으로 받아 들이는 천주교의 교리를 생각하면, 이들 국가의 낙태에 대한 태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다양한 법률이 있지만, 공통된 부분도 많다. 첫째는 (몰타의 경우를 제외하고) 산모의 생명을 태아의 생명 보다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낙태에 부정적인 나라라도 산모의 생명을 위협할 경우에는 낙태를 허용한다. 두 생명의 무게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산모에게 죽음을 가져다 줄 것을 알면서도 출산을 강요하는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 보인다. 둘째는 어떠한 국가도 낙태를 주 수에 상관없이, 근거 없 이 허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보류 기간이나 상담을 의무화한 국가 들을 볼 때, 낙태를 편한 마음으로 언제든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셋째로 낙태 허용 의 예외 경우를 보면, 사회가 정당하 다고 느끼는 낙태의 근거에 공통점이 있다. 산모의 경제 상황, 태아의 기형, 성폭행에 의한 임신 등이다. 이러한 예외 조건은 그 사회가 어떤 임신을 환영하고 어떤 임신은 염려하는지를 드러낸다. 또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경제 능력이 없는 산모의 아이는 부유한 산모의 아이보다 생명의 권리가 작은가? 기형의 태아는 건강한 태아보다 더 쉽게 낙태되어야 하는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낙태에 만 국한되지 않는데, 정말 본인의 의지로만 임신이나 출산에 대한 결정을 자유롭게 내릴 수 있으려면 사회가 어떠한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가?

ⓒ flickr / Rick Kimpel

낙태 문제의 민감성을 잘 아는 유럽의 국제기구들은 낙태에 대해 한 가지 정책을 제시하는 것을 꺼려왔다. 예컨대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낙태에 관한 어떤 지침이나 강령이 없다. 반면 유럽 평의회는 2008년 모든 회원국에 낙태를 주 수에 상관없이 형법으로 처벌하는 제도를 폐지할 것과 여성이 안전하 고 합법적인 낙태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비슷하게 유럽인권재판소 또한 한 번도 ‘낙태권’을 표명한 적이 없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재판소에서 지금까 지 낙태에 관한 판결을 내린 적은 사실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가장 대표 적인 판례 중 하나가 ‘Tysiac v. Poland(2007)’인데, 낙태를 금지한 폴란드에서 산모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임신 및 출산으로 장애를 안게 된 여성이 제기한 소였다. 낙태권 옹호자들 은 이 사건을 통해 유럽에서 낙태권이 인정되길 기대했지만, 재판부는 이와 다르게 폴란드가 이미 가지고 있는 법 아래 이 여성이 합법적인 낙태를 할 수 있었는지를 제대로 판단해주는 시스템이 없었다는 근거로 유럽 인권조약 제8조(프라이버시와 가족 생활의 권리)의 침해를 선언했다. 역 시 폴란드를 상대로 한 ‘R.R. v. Poland(2011)’에서는 태아의 장애를 판별 하는 테스트를 병원에서 제시간에 해 주지 않는 바람에 장애아를 낳은 여성 에 대해, 폴란드가 낙태를 허용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에서 보건 시스템을 구축해 제때에 유전자 검사를 제공했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낙태는 비단 한 여성의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여성의 몸에 대한 국가의 규제, 어떤 존재가 보호받을 ‘생명’인지에 대한 정의,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 등 여러 가지 측면이 얽혀 있다. 유럽 국가들의 서로 다른 법체계와 유럽 국제기구들이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 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낙태법 개정엔 하나의 옳은 길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태아의 생명권 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둘 다를 성숙하고 지혜롭게 존중하며 나아가기를 바란다.

*이 기고는 재판소의 입장이나 내부 정보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오로지 필자의 의견과 공개 된 정보에만 의거해 작성했습니다.

임현수

미국 예일대 로스쿨 졸업. 현재 예일대 국제인권센터의 펠로 자격으로 유럽인권재판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재판소에서는 주로 스위스와 포르투갈 판사의 업무를 지원하며, 재판 및 국제법 연구 부서에도 소속되어 있다.

Writer 임현수

Editor 박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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