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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95 이슈

ISSUE

2019.06.05 | 잠재적 살인마가 타고 있어

영화 <뺑반> 스틸

남들도 다 그래


고등학생 때 잠깐 다닌 학원의 원장 선생님은 술을 좋아하 셨다. 자랑스레 전날 밤 음주 단속에 걸린 무용담을 늘어놓 곤 했는데, “돈 봉투 두 개를 차에 두고 다니면 아무 문제없 어”라며 “남들도 다 그래” 하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심지어 아이 둘을 차에 태우고 음주 운전을 할 정도로, 그는 음주 운전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당시는 블랙 박스도 CCTV도 많지 않던 시절이고, 뇌물에 관대한 시절이 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직업이 선생 님이었기에 그 행동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게 무서웠 다. 며칠에 한 번씩 반복되는 이야기에 ‘음주 운전은 별일 아 닌 것’으로 생각하기 쉬웠다. 문제는 학원으로 찾아온 졸업 생들과 술을 마시곤 그들에게 수강생을 집으로 데려다주라 는 말을 하면서부터 크게 번졌다. 앞이 뿌옇게 보인다는 졸 업생 한 명은 웃으면서 운전대를 잡았고, 학생 몇몇은 그 차 에 탔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날 학생들은 무탈하게 집에 도착했지만, 원장 선생님의 기행을 알게 된 부모님들은 더 이상 자식들을 그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 술 자리가 있을 때면 그런 원장 선생님 같은 사람이 꼭 있었다. 술 한두 잔은 괜찮다며 운전대를 잡는 사람이 부지기수. 이 들을 보며 음주 운전은 실수가 아닌 습관이란 걸 알게 됐다. 실제로 국회는 음주 운전 재범 실태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 며 최근 3년간 발생한 음주 교통사고의 40% 이상이 재범자 에 의한 사고이고, 20% 가까이는 세 번 이상 음주 운전으로 적발된 상습범이라고 밝혔다. 음주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 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얘기다.


윤창호 씨의 죽음

“아무 일도 없었다”는 음주 운전자들의 운은 누군가의 목숨 을 담보로 한다. 음주 운전자들이 생각하는 ‘운이 나쁨’의 범 주엔 음주 단속에 걸렸거나, 전봇대를 들이받았다는 정도. 하지만 최악의 경우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걸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 잠재적 살인마라고 해도 무방하 다. 그들이 모는 차는 살인 흉기가 되어 타인을 위협한다. 작년 9월, 20대 윤창호 씨도 한 음주 운전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군 복무 중이던 창호 씨는 휴가차 부산에 갔다가 만 취 운전자의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진 후 끝내 세상을 떠났다. 음주 운전자에 대해 문화적으로 관대한 시각과 아 울러 음주 운전에 대한 가벼운 처벌 등 제도적 실패에 원인 이 있다고 여론은 지목했고, 관련 제도 보완의 필요성에 무 게가 실렸다. 창호 씨가 평소 “법과 정의가 바로 서는 세상 을 만들기 위해 검사가 되고 싶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친 구들은 ‘윤창호법’을 발의하기 위해 국민 청원을 올리고, 국 회를 찾았다. 여야 의원들이 발의에 동참했고, 법 이름은 자 연스럽게 그의 이름을 땄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일명 윤창호법)

음주 운전으로 인해 사람을 다치게 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음주 운전으로 사망 사고를 일으킨 경우:
1년 이상의 유기징역
→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역


처음 제출한 개정안은 피해자가 사망했을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이었으나, 3년으로 조정되었다. 보통 검찰이 징역 3년 을 구형할 경우 실제 판결에서 집행유예 가능성이 높기 때 문에 후퇴된 법안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윤창호법이 의미 있는 건 이미 귀한 생명들을 잃었지만 이제라도 제2, 제3의 창호 씨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국회 의 벽을 넘었다는 것이다. 윤창호 씨 사고의 비극이 음주 운 전자를 각성시키고, 음주 운전 자체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이들이 동의했다.

영화 <뺑반> 스틸

여전히 법이 우스운 사람들

하지만 음주 운전자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이 지난 12월 18일부터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음주 운전 사건은 하루 걸러 발생하고 있다. 윤창호 법안을 공동 발의한 국회의원 이 음주 운전을 하다 걸려 망신살을 산 게 바로 엊그제 같은 데 이어 연예인, 운동선수 그리고 경찰관까지 줄줄이 적발 됐다. 그중 세 차례 음주 운전 전력이 있음에도 무면허 상태 로 운전대를 잡은 배우 손승원 사건은 대중의 공분을 샀다. 윤창호법 적용 연예인 1호라는 불명예까지 얻었다. 공개된 CCTV 영상에서 손승원은 사고 직전 왕복 10차선 도로에서 불법 좌회전을 시도하다, 직진하던 차와 충돌하는 아찔한 상황을 맞았다. 더욱이 사고 수습을 하지 않고 그대로 도주 하는 모습이 담겼다. 사고 당시 그가 운전한 차는 앞 범퍼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충격을 받았으나, 그는 도로의 무법자 처럼 계속 질주하다 주변 운전자들이 가로막아서야 멈췄다. 드라마 <청춘시대>, 연극 <알앤제이>, 뮤지컬 <랭보>까지 다 방면에서 활동하는 라이징 스타였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의 커리어를 무너뜨렸다. 걸린 것만 네 번. 그에겐 음주 운전이 일상이었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연예인이 다른 직군보다 더 많은 비난을 받는 건 그만큼 그들이 끼치는 영향력이 크 기 때문이다. 자숙한답시고 몇 달을 쉬다 조용히 모습을 드 러내는 작태가 익숙한데, 국민 배우라 불리는 이들부터 아 이돌 스타까지 음주 운전자가 버젓이 활동하는 모습은 대중 에게 ‘걸려도 크게 문제없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음주 운전은 습관 또는 중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 다.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상습 음주 운 전으로 이어진다고. 하지만 이런 무책임한 행동은 타인뿐 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장 음주 운전을 근절하는 건 어렵겠지만, 점점 사회 적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윤창호 씨 사건 이후 음주 운전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만 2500명 이상. 음주 운 전자들이 갑자기 늘었다기보다는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고, 주변의 신고가 늘었기 때문이란다. 음주 운전자가 스스로 위험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주변 사람들의 적극적인 신고 가 필요하다. 적어도 ‘음주 운전은 무조건 걸린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운전대 잡는 일을 피해야만 한다. 그래야 더는 무고한 희생을 치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Editor 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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