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사는 한자리에서 고정된 자세로 해야 하는 일이다. 글씨를 쓰면서 춤을 추거나 헤드뱅잉을 할 순 없으니까.(혹시 가능했던 독자님은 연락 주세요. 필사 수다를 떨고 싶어요.) 그럼에도 종이 위에서 펜을 움직이는 일이 정적이지만은 않다. 펜촉을 직각으로 세우느냐 아니냐에 따라 글씨 굵기가 달라지고, 줄 노트의 간격에 따라서 글씨 크기가 달라진다. 필사를 하면서 내 습관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노트의 끝으로 갈수록 문장이 위로 올라가거나, 내려가기도 해서다. ‘ㄹ’을 흘려 쓰는지, 각을 맞춰 쓰는지에 따라서는 필사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진다.
원래는 책 속 문장만 필사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필사를 하지만 <헤어질 결심>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나 뉴스레터 ‘인스피아’ 속에서도 기록하고 싶은 구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광고 카피나 트윗을 필사하는 날도 올 것 같다.

이렇다 보니 내가 관심 있는 주제의 글만 읽을 필요가 없구나 싶었다. 어느 정도로 이해하든 상관없다. 책 안에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문장, 아니 단어 하나만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 전 <금붕어와 양자컴퓨터 이야기>(추정호, 서울경제경영, 2021)를 읽었지만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읽었다기보다 본 것에 가깝지만, 필사하고 싶은 문장을 찾는 여정에서 발견한 뜬금없는 책은 삶에 즐거움이 되어주기도 한다.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는 새해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의외의 문장과 책을 찾아 필사해봐야겠다.
글 | 사진. 황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