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와 국경이 인접한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위치한 로힝야 난민 캠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 캠프로 무려 100만 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2017년,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한 미얀마군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도망쳐 온 로힝야 난민들은 방글라데시 원주민과 한데 섞여 살아간다. 장기화되는 난민 캠프 생활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이기 쉬운 여성 난민들은 여성 커뮤니티 센터 ‘샨티카나’에서 대학살의 생존자로서 서로를 돌보고 회복 탄력성을 키우며 일상을 직조해나간다.
오랜 차별과 박해로 말과 행동마저 통제당해온 로힝야 여성들에게 샨티카나는 함께 춤추며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누군가에게는 낯설지도 모를 로힝야와 샨티카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그곳을 찾은 두 예술가의 여정을 담은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공선주‧오로민경‧이승지‧이유경‧전솔비 지음, 파시클출판사, 2024)는 전쟁의 참혹함을 전시하는 대신 로힝야 여성들의 일상을 조명한다. 책을 덮은 뒤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학살과 박해 이후에도 춤을 추는 로힝야 여성들의 반짝이는 모습이다.
글. 김윤지 | 사진. 김화경
텍스트나 이미지 등의 기록으로만 접했던 로힝야 난민 캠프와 샨티카나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재기록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전솔비 2020년쯤 이 책을 함께 기획한 사단법인 아디(팔레스타인,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 분쟁과 인권 침해가 있는 현장을 찾아 피해의 조사·연구·기록을 담당하고 당사자 옹호 활동을 하는 단체)를 통해 로힝야 난민 캠프와 그곳의 여성들의 존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어요. 대부분이 로힝야족이라는 존재를 2017년에 있었던 로힝야 대학살의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을 거고, 저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이 누구인가보다는 그들이 입은 피해와 처참한 상황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죠. 이미지를 만들고 텍스트를 만지는 창작자로서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과 연대하고 싶었지만, 당장 우리가 그곳에 가서 뭘 할 수 있을지가 잘 떠오르지 않았어요. 물리적으로 가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고요. 거리도 거리지만 외지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거든요.
그렇다 보니 꽤 오랜 시간 그 문제를 마음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어요. 그 시간 동안 로힝야 난민 캠프에서 펼친 활동과 그에 대한 기록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곳을 경험했죠. 우리의 마음이 누군가의 기록으로 움직였듯이 우리도 우리만의 기록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는 경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죠. 그러던 중 작년 4월에 오로민경 작가와 예술 워크숍 진행자로서 로힝야 난민 캠프에 방문할 기회가 생겨서 기록을 위한 여정을 시작하게 됐어요.
샨티카나는 어떤 곳인가요?
전솔비 재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이기 쉬운 여성 난민들이 캠프 안에서 겪는 다중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에요. 특히 여성 난민들의 트라우마와 공동체를 회복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춰 활동해왔어요. 제노사이드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여성들은 트라우마를 겪을 뿐만 아니라 장기화되는 캠프 생활 속에서 젠더 기반 폭력에 노출되기도 하기에 더 폐쇄적인 생활을 하게 되거든요. 로힝야 문화가 특히 여성에게 좀 더 폐쇄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샨티카나를 짓게 된 이유 중 하나예요.
무슬림 중에서도 특히 더 보수적인 로힝야 문화 아래 말과 행동을 제약당하는 환경에서 지내온 로힝야 여성들은 사회적인 관계를 쌓는 것도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어렵거든요. 샨티카나는 여성들이 심리지원 프로그램, 역량개발 프로그램, 문해 교육 등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기르고, 회복과 자립을 기반으로 여성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걸 목표로 해요.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이웃 여성들과 유대관계를 쌓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해나가죠. 사실 원래 이곳의 이름이 샨티카나가 아니었대요. 샨티카나를 방문한 여성들이 이곳에 오면 평화가 느껴진다는 말을 자주 해서 샨티카나라는 이름이 붙여진 거예요. 평화가 로힝야 말로 ‘샨티’거든요. ‘카나’가 집이라는 뜻이고요. 둘을 더하면 샨티카나. 샨티카나는 로힝야 여성들에게 평화의 집과도 같은 존재예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여성 공동체를 활성화하나요?
전솔비 현재 샨티카나에서는 로힝야 난민 여성으로 구성된 심리지원단 30명이 활동 중이에요. 심리지원단 양성 과정을 수료한 로힝야 여성에게는 심리지원단으로서의 자격이 주어지는데, 샨티카나를 방문한 난민 여성들을 대상으로 심리지원 활동을 교육하며 샨티카나 전반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해요. 주기적으로 대표도 선출하는데 그게 은근 경쟁이 붙는다고 하더라고요. 리더가 되려고 활동을 더 열심히 하기도 하고요. 소액이지만 임금을 지급하는데,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힘든 캠프 내에서 내 힘으로 무언갈 할 수 있다는 건 큰 동기부여가 돼요.
로힝야 여성들을 직접 만나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서 준비해간 예술 워크숍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고요.
전솔비 로힝야족은 로힝야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통역을 두세 번씩 거쳐야 해서 저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인지 워크숍 진행이 계획대로 안 돼서 우왕좌왕할 때도 많았죠. 근데 뭔가를 나누고 싶은 저희의 마음을 아시는 건지 항상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셨어요. 이외에도 로힝야 여성분들의 배려를 느낀 순간들이 많은데, 그러면서 점차 그분들과 저희 사이에 관계망이 생기는 느낌을 받았죠. 무엇보다 로힝야 여성분들이 제 예상보다 굉장히 적극적이고 밝더라고요. 그분들이 원하는 바를 말할 줄 아는 여성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워크숍 구성이 저희가 일방적으로 뭘 가르치기보다는 함께 만들어가는 쪽으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세팅은 최소한으로 해두고 그분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했죠. 처음 샨티카나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만 해도 여성분들이 자신들이 지금 원하는 게 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하는데, 저희가 그곳에서 만난 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요구할 줄 아는 당당한 여성들이었어요. 샨티카나의 프로그램으로 인한 여성들의 변화를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한 소중한 순간이었죠.
오로민경 카메라 옵스큐라(안쪽을 어둡게 만든 상자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고 바깥에서 어두운 쪽으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상을 맺히게 하는 방식) 워크숍을 통해 그간 피해자로서 줄곧 관찰의 대상이 되어왔던 로힝야 여성들이 기록 행위의 주체가 되어보기도 했는데요. 자유롭게 카메라에 담고 싶은 것들을 담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중에 다 같이 모여서 뭘 찍었나 봤더니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들을 담았더라고요. 샨티카나의 정원, 그곳을 지키는 경비원들의 모습, 부엌, 이웃 여성의 얼굴 같은 것들이요. 사실 저는 방문객이기도 하지만 이곳의 모습을 사진이라는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온 거잖아요. 이곳의 어떤 모습을 기록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로힝야 여성분들의 시선에서 본 샨티카나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새삼스러운 일상의 순간들도 잊지 않고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결국 그곳의 여성들을 변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로민경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이곳에서 자신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건 중요한 일이거든요. 샨티카나에 처음 방문한 날, 이곳에서 실제로 진행되는 힐링 프로그램을 체험해본 적이 있는데, 서로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고, 호흡을 함께하고,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며 교감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살아 있음을 느꼈어요. 내 몸과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몸, 나를 만지는 손길을 느끼다 보면 절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되거든요.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알게 된 여성들은 적어도 샨티카나에 있는 순간만큼은 집중해서 웃고 떠들고 즐거워해요.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와서 자기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조차 말로 내뱉지 못하던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변화가 여성들에게 동력이 되어주는 거겠죠.
기록을 위한 이번 여정이 두 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전솔비 저희가 캠프에서 활동하는 동안 샨티카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손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로힝야어를 통역해주는 방글라데시 직원의 손, 매번 운전해서 샨티카나로 우리를 데려다줬던 운전 기사님의 손, 로힝야 여성들이 글씨 쓰는 걸 지도해주는 샨티카나 직원의 손, 글과 사진으로 그곳을 기록하고자 끊임없이 움직였던 저희 둘의 손 등등이요. 누군가를 돌보는 마음을 이미지화하면 바로 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곳을 돌보는 여러 손길이 모여서 돌봄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거라고 봐요. 그곳에 있는 동안 샨티카나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과 돌봄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감각을 느꼈어요. 로힝야 여성들과의 관계망이 형성된 이후엔 그들의 기쁨이 꼭 내 기쁨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고요. 여러모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여정이에요.
샨티카나가 로힝야 여성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남았으면 해요?
전솔비 캠프를 쭉 둘러보면 밖에 나와 있는 건 대부분 남성들이에요. 모여서 얘기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아무 데서나 목욕을 하는 남성들도 있죠. 그에 반해 여성들은 외부 활동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요. 나이 있는 어르신들은 종종 보이지만 젊은 여성들은 거의 집에만 있어요. 보수적인 로힝야 문화 특성상 집도 편안하기만 한 공간은 아닐 거예요. 뭘 하든 남편의 허락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적어도 샨티카나만큼은 로힝야 여성들에게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언제든 와서 웃고 떠들 수 있는. 사실 그곳의 상황이 긍정적이지는 않거든요. 미얀마 내전도 격화되고 있고 난민 송환 문제도 복잡하고요. 샨티카나는 이런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나 자신과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에 집중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완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품고 있는 공간이거든요.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샨티카나의 그런 가치가 잘 유지돼서 그곳의 방문객이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나아가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로 다가갔으면 하나요?
오로민경 학살과 박해 이후,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자신들이 겪은 죽음과 상실에 대처하고 그 안에서 회복 탄력성을 키워나가는 로힝야 여성들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잘 배워야 할 사례라고 생각해요.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재난이 벌어졌을 때, 혹은 소중한 것을 상실했을 때 과연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회복해나가야 할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세계 곳곳에서 재난이 빈번해지고 있고, 이에 대한 감각이 분명 필요한 시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