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지영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어느 대통령 직속 행정기구에서 전문가 여러 명을 참석자로 해 딥페이크 성범죄 합성물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를 위해 발제나 토론 등을 맡은 관계자들은 단상 위로 올라 기념 촬영을 했는데, 그 모습을 본 순간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단상 위로 올라간 사람은 모두 15명이었는데, 그중 양복을 입은 남성이 13명이었다. 여성은 오직 두 명뿐이었다. 사실 정말 비명을 질러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이들의 모습에서 무심코 어떤 무리한 주장마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저 모습이 한국 딥페이크 성범죄 합성물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생각이었다.
최근 문제가 되는 텔레그램 메신저 내에서의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성범죄 합성물의 경우 핵심을 ‘딥페이크’라고 본다면 이는 본질을 벗어난 것이거나(의도하지 않았다면) 혹은 그저 은폐하는 일(의도했다면)에 불과하다. 이는 ‘딥페이크’라는 그간 들어보지 못했던 무언가 새로운 형태의 범죄가 나타난 것처럼 보이고, 그렇게 떠들고 싶은 이들이 많아 보이나(‘새로운 범죄 형태이기 때문에 예방하지 못했어!’라는 일종의 알리바이가 가능하기에) 사실 ‘아주 빠른 속도로’ 성범죄 합성물을 만들어 유통할 수 있다는 특수성을 제외하고 그 본질은 이전의 성범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 성교육을 하면서 학생들을 만나온 심에스더 성평등 강사는 나에게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은 카카오톡 내 오픈채팅을 이용한 미성년자 그루밍 성폭력이 나왔을 때, 그러다 메타버스 안에서의 성폭력이 나왔을 때, 그리고 이번의 텔레그램 내 딥페이크 성폭력이 나왔을 때 그저 예방 교육의 이름만 달리해 반복된다. 기술이라는, 일종의 담는 그릇만 달라진 것이고 우리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힌 성폭력 문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번 사건을 마주한 복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제 막 애플이 1세대 스마트폰을 출시했기에 오늘날과 같은 첨단 기술이 없었다. 그럼에도 성폭력은 그 ‘담는 그릇’을 바꾸어 계속돼왔다. 그것은 예를 들면 학교 내 여성 구성원이 입은 치마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실내화에 붙인 작은 조각 거울의 형태로도 가능했다. 그리고 그 행위를 숨죽여 지켜보다가 눈빛과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때로는 일부러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를 연출하면서 공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무엇보다 그 명백한 의도는 계속 이어져왔다. 그건 수치심이었다. 복수의 공모자들은 언제나 수치심을 주고 싶어 했다. 그 수치심의 목표는 권력의 재확인이고, 그곳에 여성 구성원의 자리는 없다. 여성은 이렇게 ‘객체(도구)’가 된다.
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에 가능한 일들
이번 텔레그램 내 딥페이크 성폭력 역시 마찬가지로 이 범죄 행위는 ‘자기 주변에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합성물을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합성물을 최종적으로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합성물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됐다는 걸 한 여성이 알게 만드는 것까지가 완성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여성을 같은 사람으로, 같은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료 시민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이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여학생을, 같은 부대에서 복무하는 여군을,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여직원을, 자기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몇 초 안에 만들어낸 합성물에서 여성은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 합성물에 대한 진단과 대안 모색은 여성주의를 경유해서 시도하지 않으면 결코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물론 당장 해결할 수도 없고 재미도 없는 답이다.
얼마 전 통일부가 한 포럼을 열면서 남성 연사 20명과 여성 연사 한 명을 섭외해 주한영국대사관의 거센 항의를 받고 여성 연사를 추가로 섭외한 일이 있었다. 주한영국대사관은 “성평등 가치를 지지한다”라는 입장을 외부로 공개하기까지 했다.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남성과 여성 인사의 수를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성평등과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장 딥페이크 성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인 여성 동료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일만큼 시급한 일이 있을까? 무엇보다 딥페이크 성폭력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모색하는 자리에 당사자의 목소리를 이렇게나 무성의하게 누락하는 일만큼 토론회가 엉터리라는 걸 입증하는 길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 토론회는 내게 성폭력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이 남성을 중심으로 한 현재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권력 구조를 재편성해야 겨우 한 발이라도 떼어볼 수 있겠다는 불편한 사실을 씁쓸하게 보여주는 일로 남았다. 과연 이것으로 가능할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함께 만들고 동명의 책을 썼다. 사람 하나, 개 하나랑 서울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