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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8A

녹색빛 - 곰을 위한 해피엔딩, 거의 다 왔어요!│죄 없는 곰의 감옥살이

2024.10.17

글. 신지선 | 사진제공. 녹색빛

이번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웠습니다. 참 길기도 했고요. 무더운 날씨가 이어질수록 철창 속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집니다. 내리쬐는 태양과 습한 기운을 피할 길 없이 철창 속에 갇혀 이번 여름을 보내고 있는, 사육 곰 이야기입니다. 사육 곰은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기르는 곰을 말합니다. 2024년 9월 현재 280여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철창 안에서 살아야 하는 사육 곰의 현실은 매우 열악합니다. 배설물이 쉽게 빠질 수 있도록 구멍이 뚫린 뜬장에서 개 사료, 음식물 쓰레기 등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운이 좋은 농장을 만난 곰은 뜬장 대신 시멘트 바닥에서 지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육 곰은 생후 10년이 지나면 철창을 나올 수 있습니다. 웅담을 채취한 후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갇혀 지내다가 죽어서야 철창 밖을 나가는 이 경악할 상황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는 합법입니다.

1981년, 정부 주도로 벌어진 곰 비극의 시작

“곰을 비롯한 야생동물 사육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곰은 잡식성 동물로 안전 관리만 유의하면 병 없이 쉽게 사육할 수 있습니다. 곰에서 나오는 웅담과 피, 가죽 등은 국내 수익뿐만 아니라 수입 대체 효과도 얻을 수 있는 사육 가능한 야생동물입니다.” (출처: 1985년 9월 6일 〈대한뉴스〉)

한국에서 곰 사육은 1981년 정부가 농가 소득을 증대하는 방안으로 재수출 목적의 곰 사육을 권장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에는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이 관행은 멸종위기종 보호를 외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85년 곰 수입이 금지되었고, 1993년에는 한국 정부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면서 곰 수출 또한 막혔습니다. 곰을 활용할 길이 막힌 농가는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고, 정부는 농가의 손을 들어줍니다. 1999년에는 24년 이상 된 곰의 웅담 채취가, 2005년에는 법이 더 완화되어 10년 이상 된 곰의 웅담 채취를 합법화한 것입니다. 이렇게 곰들은 기가 막힌 운명에 처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곰의 완전한 자유를 위한 끊임 없는 노력

사육 곰의 현실에 개탄하고 그들의 자유를 위해 싸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녹색연합은 2003년 사육 곰 문제를 처음 공론화했습니다. 한의사와 함께 웅담 대체재를 조사하고, 사육 곰의 현실을 알리며 시민들의 여론을 변화시켰습니다. 국제단체와 협력해 해외 여론을 통해 정부를 설득하기도 했고요. 우리와 뜻을 함께할 농가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중성화 수술을 통해 더 이상 철창 속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지 않도록 했으며 불법 증식 농가를 처벌할 수 있게 법적 규제도 강화했습니다. 수차례의 법안 발의와 특별법의 본회의 통과, 야생생물법이 개정되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철창 속의 곰들을 생각하면 너무 느린 변화이지만, 확실히 희망은 커지고 있습니다.

거의 다 왔어요

청산할 수 있는 확실한 변화가 이제 막 시작되려 합니다. 지금 전남 구례와 충남 서천에 곰 보호소가 건립되고 있습니다. 곰들이 자유를 만끽할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곰들은 시멘트 바닥과 뜬장이 아닌, 흙과 풀을 밟으며 원래의 본성에 맞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야생에서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고, 친구 곰들과 뒹굴며 놀고, 나무를 타고, 쉬지 않고 머리와 몸을 쓰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농장의 사유재산인 곰을 야생으로 돌려보내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1981년에 시작된 곰 사육의 역사는 긴 시간을 겪으며 복잡하게 꼬여버렸습니다. 정부가 개입을 망설이고, 농가가 손을 놓은 사이 곰들은 고통 속에서 살다가 죽어갔습니다. 곰 사육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입니다. 우리가 직접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합니다. 이 나라에 곰을 들여와 고통을 준 세월에 대한 책임을 모두가 통감해야 합니다. 앞으로 이 같은 비극이 더는 없도록 다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이 끝맺음은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이뤄낼 때 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남은 곰들을 끝까지 지켜내어 원래 있어야 할 야생으로 돌려보낼 때까지, 여러분의 관심과 힘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웅녀의 후손들

저는 사육 곰에 관해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할 때 종종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지만 웅녀의 후손이기도 하다고. 웅녀의 후손이 감히 곰을 철창에 가두고 웅담을 얻기 위해 죽이면 어떡하냐고. 단군 할아버지가 노하실 거라고, 이 부끄러운 역사는 하루빨리 청산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말입니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실 애절한 진심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유례없는 폭염의 추석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상기후가 평범한 날들로 번지고 있는 지구, 철창 속 곰들을 하루빨리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수십 년을 고통받아온 사육 곰, 진짜 해피엔딩을 함께 만들어주세요.


신지선

녹색연합 이음팀. 환경 운동과 근력 운동 사이를 오가는 프로 운동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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