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진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자격을 갖게 된 조영(가명) 님은 요즘 고민에 빠졌다. 수급비를 받게 되면 이제 몇 달 동안 열심히 출근했던 공동작업장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집에만 있다가 또 우울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내가 있는 여성일시보호시설의 긴급 서비스를 거친 후 고시원을 얻어 독립하였으며, 주소지가 생기자마자 수급 신청을 하였더랬다. 이미 근로 능력 평가 없이도 수급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연령이었고, 가족도 재산도 그리고 일반 노동 시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생활을 꾸려갈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급신청을 하고 두 달이 넘는 기간을 기다려 선정되었다는 통지를 받으면 보통은 두말없이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막상 홈리스 여성들을 만나다 보면 수급 심사에서 탈락할까 걱정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간혹 조영 님처럼 수급자가 되고 나서의 일상을 고민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홈리스 여성들의 안정적인 노숙 탈피를 바라며 일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조영 님의 고민은 응대하기 난감한 이야기 중 하나다. 그래서 그녀와 그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야 했다.
무슨 일을 하며 살아왔나요?
1970년대 후반, 제 나이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15년간 주부로 생활했어요. 일이 너무 하고 싶어 2년 정도 보험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죠. 하지만 일을 시작하면서 남편과 금전적인 문제로 다툼이 잦아졌어요. 결국 너무 힘들어 집에서 도망쳐 나왔어요. 이후 모텔 같은 곳에 기거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다가 어떤 남성을 만나 함께 살게 되었죠. 시설에 오기 전까지 한 20여 년 그 남자와 살았나 봐요. 동거남과 지낼 때도 일을 하고 싶었지만 동거남은 자기 주소로 전입신고 하는 걸 싫어해 쭉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여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동거남이 일을 왜 해야 하냐며 반대하기도 했고. 좋은 게 좋은 거겠거니 하며 지냈어요.
홈리스 상황에 처하는 과정에서 일을 하기 어려웠나요?
오랜 기간 동거남의 수입으로 생활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동거남이 어떤 일에 연루되어 수감되었죠. 오래 돈을 벌지 않고 살다가 갑자기 그렇게 되니 일을 찾아보는 건 너무 막연하기만 했어요.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어진 갑작스러운 상황에 두렵고 우울감이 심해졌어요. 다행히 제 주변의 아는 분이 이런 홈리스를 위한 시설이 있다는 걸 알려줘서 이용하게 될 때까지 그런, 아주 우울한 상태였어요.
근로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생활은 어떠했나요?
동거남 수입으로만 생활할 때는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었어요. 영화를 본다든가 하는 문화 활동을 할 여유는 없었죠. 동거남에게는 말하지 못했는데 어려울 때 형제자매에게 빌린 돈이 있어서 갚아야 했는데 제가 일해서 번 돈이 없으니 갚지를 못하고, 그렇다 보니 연락을 끊게 되고,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시설의 공동 작업장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일시보호시설에 왔을 때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디 병원에 가려 해도 교통비 몇 천 원조차 없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심적으로 뭐든 하지 않으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질 것 같아 너무 두려웠어요. 취업을 한다든가 하는 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끼던 상황이었지만, 계속 힘없이 있고 싶지는 않아서 무슨 일이든 했어야만 했어요.
공동 작업장 참여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일 참여는 조영 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하루 세 시간씩 일시보호시설 공동작업장에서 일했어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았어요. 너무 가까운 거리이긴 하지만(시설과 조영 님이 생활하는 고시원은 아주 가깝다.) 출근을 한다는 것, 어딘가 소속이 되어 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손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시설의 공동작업장에서는 머리끈을 포장용 비닐 봉투에 넣는 하청 조립 공정에 참여한다.) 치매 예방 등 건강 유지에도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어디든 힘든 상황은 있죠. 그래도 다들 이해하면서 일하는 것 같아요. 일 참여 자체는 너무 재미있는 거죠. 다만, 물론 아픈 사람이어서 그렇겠지만, 혼잣말이 심한 참여자가 있으면 듣고 있기 힘들기는 합니다. 그래도 포장을 하는 순서 하나하나, 진행하는 절차가 너무 재미있어요. 물건을 검수하고, 포장하고 그날 할당된 양을 모두 마치고 완성된 물품을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무언가 성취감을 얻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그런 점이 너무 좋아요.
수급자가 되어 근로 수입이 없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앞으로 어떤 삶을 계획하나요?
최저생계비가 나라에서 나온다니 정말 안심이 되기는 하죠. 동거남이 갑자기 없어지면서 불안했던 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요. 하지만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아요. 아까 말한 것처럼 출근해서 사람을 만나 같이 일하는 것, 뭔가를 열심히 해서 생산품을 보는 것이 다 재미있고 성취감도 주니까요. 딱히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앞으로 고시원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답하고, 또다시 전처럼 우울증이 심해지면 어쩌나 싶기도 해요.
저는 돈은 안 받아도 되니까 공동 작업장에 자리 하나만 마련할 수 있으면 계속 출근해서 일하고 싶어요. 작업장 일이 아주 무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반나절 딴생각하지 않고 일하는 게 정말 좋거든요. 작업장에 자리가 없다면 시설에서 다른 자원봉사 할 거라도 찾고 싶어요.
내가 일하는 일시보호시설에서 여성 홈리스를 위한 자활 사업으로 공동 작업장을 시작했을 때 일차적 이유는 물론 아무런 자원이 없어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긴급 비용을 마련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단지 용돈 혹은 생계비를 벌기 위해 일하는 것만은 아닌 것처럼, 홈리스 여성들도 일을 통해 급여만 얻어가는 것이 아니다. 조영 님처럼 일을 하며 출퇴근하는 일상을 회복하고, 소속감과 재미를 느끼고, 성취감도 얻는다. 어떤 홈리스 여성은 종일 혼잣말을 하는 조현병 환자였지만 일에 집중할 때는 혼잣말의 빈도가 줄어들기도 했다. 치료에 동의하지 않아 의사소견서도, 근로 능력 평가도 받지 못하고 수급자가 될 수 없었으나, 공동 작업장에서 일하면서 고시원 월세를 내고 ‘내 힘으로 사니 억지로 치료받으라고 하지 말라.’며 당당히 저항하는 여성들도 보았다. 단시간 일 참여였지만 수입이 생기면서 시설에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커피를 사줄 수 있어 뿌듯해하는 여성들도 많이 보았다. 일은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 사람에게 당당함을 준다.
그러나 현실은 생계의 수단으로서의 일, 생계비를 확보할 수 있는 일을 넘어 삶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확인받는 차원의 일에까지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훌륭한 제도가 있어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지만, 그 제도의 수혜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에게도 조금 다른 의미의 ‘일’은 필요하다는 것. 그런 논의를 하기에는 일이 없어 홈리스가 되는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대책을 마련하기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