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일기, 장을 합친 말로, 책을 읽고 각자 느낀 이야기를 일기 쓰듯 공유하는 장이란 뜻의 독서 모임 ‘일끼장’. 2021년 소규모 독서 모임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총 72명의 멤버와 함께해왔다. 책이 너무 좋아서, 대화하고 싶어서, 책을 전혀 읽지 않아 한번 읽어보려 방문하는 이들까지 독서 모임 멤버들의 성향도 다양하다. 운영자인 백지원, 이가희, 이지수 씨는 이 모임을 변화무쌍하게 가꿔나가고 있다.
책 속에서 재미를 찾고, 책 밖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재미를 찾는 독서 모임의 나날은 어떻게 흘러갈까. “서점에 가면 모르는 책보다 읽었던 책이 훨씬 많아졌다.”는 세 사람의 신기한 경험에 귀를 기울여보자.
글. 황소연 | 사진제공. 이가희
독서 모임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날까지, 운영진은 여러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일끼장에는 세 가지 세션이 있고,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정규세션’은 2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토론 모임을 진행하는 메인 세션. ‘편독세션’은 세 사람이 번갈아 모임을 기획한다. ‘이벤트세션’은 토론보다는 책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한다. 책은 참여하는 이들의 자율 추천을 받아 투표로 정해지거나, 진행자가 테마에 맞춰 선정한다. 독서 모임을 확산하기 위해 세 사람은 모임 콘셉트와 홍보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기획한 모임의 타깃층을 고려해 홍보물을 디자인하고 홍보 플랫폼을 정하는 것까지 모임 준비에 포함된다.
책을 읽고 참여자를 모을 뿐 아니라, 논제를 공유하고 리마인드시키며 참여를 이끄는 것까지 운영진의 역할이다. “모임 전까지 이탈자를 막기 위해, 책에 집중하고 완독할 수 있는 사전 활동도 진행해요.” ‘기록’을 주제로 했을 땐 어떤 도구를 활용해 무엇을 기록하는지 사진을 찍고 코멘트를 덧붙이는 활동을 하는 식이다. 이러한 기획을 위해 세 사람은 모임 전까지 책의 내용을 되짚는다. 기획 단계에서 책을 한 번 더 읽으며 책의 소구점을 찾고, 같이 이야기 나누면 좋을 논제를 발굴한다. “책을 통해 타인과의 접점을 찾고자 고민한다.”는 게 백지원 씨의 얘기다.
왠지 어려울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다르다
독서 모임이라고 하면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하고, ‘유용한’ 내용을 적어두어야 할 듯한 부담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세 사람은 책을 어떻게 읽고 기록할까. 이가희 씨는 거창한 감상을 적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책 한 권을 읽고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고 하시는 멤버들도 많이 계시더라고요. 저도 그랬는데, 남는 걸 만들고 싶어서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다니는 여러 생각들을 그대로 종이 위에 적기 시작했어요.” 인상 깊은 문장도 옮겨 적으면서 기록하면 책 내용이 오래 기억난다. 그래서 일끼장의 정규세션에선 ‘필사 공유’가 필수 활동이다. 어플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 이지수 씨는 책을 리스트 형태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독서 어플 ‘북적북적’을 사용한다. 모두 책에 몰입하기 위한 방법이다.
모임을 통해 책을 읽는 것 외에 다른 활동이 새롭게 연결되기도 한다. 이 역시 책을 어렵게 느끼지 않고 재밌는 존재로 여기게 되는 장치다. 새벽반에서 토론 시작 전 명상 시간을 갖거나 드레스 코드가 있는 독서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이러한 기획은 책을 즐겁게 읽는 경험을 추구하기에 탄생한 아이디어다. “모임 주제가 ‘취향 있는 삶’과 ‘쇼핑’이었고, 다룰 이야기 중 하나가 ‘자아가 투영된 쇼핑’이었어요. 이 주제에 맞게 ‘나를 표현하는 옷’을 드레스 코드로 정했습니다.” 길게는 1년 넘게 책을 읽고 만나는 모임에서 책뿐만 아니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 역시 참여자들이 위안을 느끼는 지점이다.
작은 규모에서부터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독서 모임을 4년여간 이끌기까지 있었던 인상적인 경험을 물었다. 세 사람은 참여자들이 계속 모임을 신청할 때 느끼는 뿌듯함에 대해 입을 모았다. 책을 전혀 읽지 않았던 이들이 일끼장을 통해 책 읽는 재미를 느끼고, 다수 앞에서 말하는 걸 어려워했던 이들도 본인의 의견을 거침없이 낼 때 보람차다는 것. “스스로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행복했어요.” 독서 모임을 운영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이가희 씨의 얘기다.
함께 읽을 때만 생기는 놓칠 수 없는 경험
책을 꼭 혼자 읽을 필요는 없지만, 이들이 독서 모임을 오랜 시간 이끌며 함께 책을 읽는 이유는 뭘까. 백지원 씨와 이지수 씨는 그 이유가 디테일에 있다고 짚었다. “혼자서 읽었을 땐 굳이 이 책이 왜 좋았는지 상세히 정리하지 않았는데, 같이 읽게 되면서 단순히 좋고 싫고를 넘어 ‘왜’ 좋았는지 생각하게 돼요.” 같은 문장을 보고 타인과 나의 차이를 인지할 때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 좋다는 것. 이 과정을 거치면 책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된다. 이가희 씨는 책을 어려워했던 이들도 ‘읽어야 해서’가 아니라 ‘읽고 싶어서’ 읽게 되는 게 독서 모임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백지원 씨는 지난 독서 모임에서 읽은 〈도둑맞은 집중력〉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종이 위의 단어를 향해 바깥으로 기울었다가, 그 단어의 의미를 향해 내면으로 기우는 것을 오가는 매우 독특한 상태’. “저자가 독서를 표현한 구절인데요. 책을 읽으면 나를 좀 더 들여다보고 몰입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 좋아요.”
쇼츠, SNS 가득하지만… 책이 줄 수 있는 건 따로 있다
애서가 세 사람에게 책에 집중할 수 있는 팁을 물었다. 답변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독서를 편안한 행위로 만들라는 것. 이가희 씨는 조용한 카페처럼 나만의 독서 공간을 찾을 것을 권했고, 백지원 씨와 이지수 씨는 책 읽는 시간에 대한 팁을 전했다. 시간 내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랜 시간 집중하는 게 어렵다면 차라리 책 읽는 호흡을 짧게 가져가라는 것. 전자책 리더기 등 자신의 독서 습관에 적합한 물건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책보다 재미있는 게 많다는 의견이 ‘중론’인 세상이지만, 이지수 씨는 책에 다른 콘텐츠로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본다. “영화나 짧은 영상 콘텐츠는 보는 이의 상상력에 한계를 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책은 주인공의 말투, 생김새, 옷차림 등 내가 원하는 대로 상상할 수 있고 이 모습이 각자 다르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죠. 서로가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고 상상한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자리가 생각보다 흔치 않아요.” 독서 모임은 이런 열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장이 된다.
만화책, 동화책, 시집 다 좋다, 시작은 부담 없는 책으로
독서가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은 분명 서점에 가는 것도, 책을 집는 것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때는 ‘찍기’와 가까운 본능적인 선택이 중요하다. “처음엔 생각을 비우고 옷 가게에 가서 예쁜 옷을 고르는 것처럼 책을 골라보세요. 표지가 맘에 들거나 제목이 끌린다거나, 그냥 손길이 가는 책을 하나 골라서 읽는 거죠.” 그러다 몇 장 읽지 않았는데 벌써 흥미가 떨어진다면 또 다른 책을 고르면 된다는 게 세 사람의 조언이다. “책 한 권을 완독할 생각으로 읽기보다 책을 구경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시는 걸 추천해요. 만화책, 동화책도 좋죠.”
마지막으로 세 사람은 뭔가를 느끼거나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기를 강조했다. “그냥 읽다 보면 책 읽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점차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게 돼요. 나에게 가장 좋은 책은 남들이 좋다고 한 책이 아니라 나에게 가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책에는 정답이 없고, 독서는 자유로움과 가깝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일끼장 인스타그램
@ilkki_gr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