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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3 컬쳐

사소하게 연연하는 - 별점 1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리뷰왕 장봉기>

2024.07.22

<리뷰왕 장봉기> 스틸

글. 박현주

이전에는 후기 작성, 리뷰가 특정한 사람들의 일이었다면 요새는 누구나 리뷰어가 될 수 있다. 배달앱에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서점 사이트에서, 내 SNS에서. 전 국민 비평가의 시대이다. 하지만 리뷰에는 항상 양면이 있다. 내가 남을 리뷰할 때는 거침없고 솔직한 마음으로 쓸 수 있지만, 내가 리뷰의 대상이 되면 조마조마하기 짝이 없다. 리뷰의 동의어는 평가이다. 그리고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심지어 부정적인 평가가 더 폭발적 호응을 얻기도 한다. 이것이 관심 경제의 이면이다. 나는 세상의 그 무엇도 리뷰하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내가 하는 무엇이든 평가받을 수 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나를 쪼개고 가르고 냉정하게 분석할 것이다.

<리뷰왕 장봉기>(총 7화, 웨이브, 왓챠, 티빙 제공)는 평가가 범람하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배달앱 리뷰라는 익숙한 소재를 통해 보여준다. 한 회 10분 분량의 이 숏폼 드라마는 실패한 60대 소설가 장봉기(김종구)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무명 작가인 장봉기는 30년 동안 써온 필살기 원고를 출판사에 가져가지만, 출판사 사장은 직원들이 이 원고를 보고 쓴 악평을 산더미같이 내놓는다. 거기에 더해 사장은 <맛집기행>을 써서 팔로워를 모으고 인플루언서 작가로 활동한다는 오진필 얘기까지 꺼내며 봉기를 자극한다. 작가로서 자긍심이 무너진 봉기, 하지만 중요한 건 상처받은 자존심보다 허기진 배다.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봉기는 배달앱을 보고 족발을 주문하려다 리뷰를 하면 서비스로 족발 볶음밥을 준다는 말에 리뷰를 덜컥 약속해버린다. 짧은 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작가적 자존심, 결국 봉기는 며칠 고민한 끝에 자신의 필력을 발휘하여 별 다섯 개짜리 화려한 리뷰를 써낸다. 그의 리뷰는 폭발적 반응을 보이고 폐업 직전의 족발집에는 주문이 밀려든다. 한편, 알 수 없는 리뷰 테러들로 동네의 좋은 가게들이 속속 문을 닫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낀 배달 기사 단비(김가영)는 봉기의 재능을 알아보고 공동 작전을 제안한다.

드라마는 매회 시작 전 “이 웹드라마는 판타지 코미디이므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길!”이라는 자막을 띄운다. 하지만 이렇게 자조적으로 ‘판타지 코미디’를 표방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드라마의 리얼리티가 강조된다. 리뷰 하나에 울고 웃는 작은 음식점들의 현실, 또 잘 쓴 리뷰 하나가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럴 효과, 이를 이용한 악성 마케팅 수법 등이 간략하지만 꽤 날카롭게 그려진다. 리뷰왕으로 사람들에게 각광받게 된 봉기는 이제 평균 점수 1점 대의 가게들을 찾아다닌다. 그가 버릇처럼 하는 말은 “직접 먹어보고 판단하는 수밖에”이다. 여기에 현대 소비 사회의 아이러니가 있다. 우리는 냉철한 평가자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가르는 판단력이 있다고 믿지만 결국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크게 영향을 받고 만다. 직접 체험하며 오류도 겪고 거기에서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는 과정은 이 바쁜 시대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단 한 번 밥을 먹어도 실패 없이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내 시간과 돈은 너무나 소중하니까. 그래서 리뷰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누군가의 노력을 응원해주는 재능

그러기에 관심 경제하에서는 짧은 리뷰 하나가 타인을 지킬 수도, 공격할 수도 있는 무기가 된다. 이 작은 드라마에서도 이렇게 현실에서의 리뷰를 이용한 전쟁이 일어난다. 오진필과 그의 하수인 진석은 <맛집기행>이라는 책과 유명세를 들이대며 식당에서 돈을 뜯어내고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고용된 체험단을 돌려 평점 테러를 한다. 그리고 봉기와 단비는 이런 평점 테러를 당한 가게들에서 음식을 주문한 후 그들을 살려내는 리뷰로 이에 맞선다. 현실을 단순화한 블랙코미디적 대결 구도이지만, 한편으로는 실제 일어나는 사건들을 고발하는 탐사 보도 같은 생생한 긴장감도 있다. 소박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백반 집 같은 느낌의 드라마이다.

<리뷰왕 장봉기>가 다루는 음식이 족발, 카레, 국밥, 치킨 같은 서민의 한 끼이듯이 이 작품에는 화려함이라고는 없다. 이 웹드라마는 본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신의 신기헌 감독이 제작한 19분짜리 동명의 단편영화에서 시작했다. 이 영화는 울산단편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면서 이야기로서의 잠재성을 인정받고 10분짜리 7부작 드라마로 재탄생한다. 김종구 배우가 맡은 장봉기는 영화에서는 배달 전문 식당을 운영하는 갑질 입주민에게 복수하기 위해 리뷰를 시작했지만 드라마로 오면서는 자아실현적 동기로 움직이는 것으로 바뀐다. 장봉기 역할의 김종구 배우, 단비 역할을 맡은 유튜버 김가영 씨를 포함해서, 모든 역할은 신인이나 오랫동안 조·단역으로만 알려진 배우들이 맡았다. 작품의 면면이나 만들어진 과정 모두 드라마가 추구하는 소박하고 귀여운 힘과 맞아떨어진다.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별점 1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따뜻함이 있다는 것이다. 장봉기는 평생 글 한 번 팔아보지 못한 무명 소설가이고 가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남자이다. 그런데 그가 리뷰를 쓰자 사람들이 열광하고 배달 플랫폼에서도 리뷰왕으로 불러준다. 평생 악평만 받아보던 그가 자신의 글로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의 필력은 누군가의 노력을 깎아내리거나 폄훼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끝없이 노력해온 사람들의 성과를 발굴하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썼다. 어쩌면 이것이 장봉기라는 인물이 평생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별점 1의 소설가라도 그 뒤에 숨은 노력을 누군가 바라봐주는 것.

그렇다고 봉기가 무작정 호평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7회, 단비는 봉기에게 그의 아내가 만들어준 치킨을 배달해주고 호평을 남기길 종용하지만, 봉기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과 리뷰는 별개라고 말한다. 작가인 봉기는 고작 몇 줄의 글이지만, 자신의 양심을 배반할 수 없다. 그렇대도 그가 남긴 리뷰에는 맛없는 음식을 파는 업주에 대한 질책보다는 이를 통해 그의 노력이 더 빛을 발하길 바라는 희망이 담겼다.

무명의 소설가이자 경비원, 맛있는 음식을 지키고자 하는 배달원, 맛집 테러단에서 괴롭게 일하는 문창과 출신 아르바이트생이 힘을 합쳐 그들을 무시하는 건물주, 돈으로 움직이는 음식 평론가, 경쟁 업체들에 대항해서 싸우며 서민을 지킨다는 이야기는 역시 판타지일 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리뷰왕 장봉기>는 평범한 우리가 일상에서 가진 힘을 솔직히 묘사한다, 누군가의 노력을 응원할 수 있는 힘 말이다. 그러기에 이 드라마가 봉기와 진필의 전면전이 자세히 그려지기 전에 7회가 끝난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이런 작은 판타지라도 계속될 수 있도록 <리뷰왕 장봉기>의 시즌 2를 기대해본다.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정정보도] 사소하게 연연하는- 별점 1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리뷰왕 장봉기> 기사 관련

본 보는 지난 323호에 게재된 '사소하게 연연하는 - 별점 1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리뷰왕 장봉기>' 제목의 기사에서, 해당 웹드라마가 신기헌 감독의 단편영화에서 시작되었다는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리뷰왕 장봉기>의 원작자는 오승진 작가이고, 오승진 작가가 집필한 원 저작물에서 단편영화와 웹드라마가 각각 파생된 것으로 확인되어 이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문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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