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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0 빅이슈

신도림역 한성호 빅판 (2)

2023.11.12

이 글은 '신도림역 한성호 빅판 (1)'에서 이어집니다.

ⓒ 신도림역 한성호 빅판

통풍이 심하세요?
네, 워낙 오래전부터 앓았어요. 빅판 일 하기 전에 물류 센터에서 택배 분류하는 일을 일당 14만 원을 받고 한 적이 있는데, 몇 번 하고 나니 다리가 퉁퉁 붓더라고요. 이후 아예 못 일어나고 한 달 이상 누워 있었어요. 며칠 일당 받은 걸 병원비로 다 써버린 거예요. 돈 버는 게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거죠.(웃음) 그때 ‘아, 일당을 많이 주는 일은 이제 못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간이 의자를 갖고 다니면서 판매지에 앉아 있는 건 어떠세요?
안 돼요. 한 권이라도 더 팔려면 적극적으로 해야 해요. 그냥 지나가실 분도 제가 서서 크게 떠들고 홍보하면 사 가시기도 하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그냥 지나가세요. 한 권이라도 더 팔려면 매대 옆에 계속 서 있으면서 인사하고 판매 멘트를 외쳐야 해요.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루 한두 권이라도 더 판다고 했을 때 그걸 한 달로 따지면 차이가 크잖아요. 제가 몸소 느껴요. 인사도 안 하고 멀뚱멀뚱 서 있으면 독자들이 그냥 지나치세요. 근데 적극적으로 인사드리고 하면 그냥 가려다가도 한 권 사 가시고 그래요.

빅판을 그만두실 뻔한 적이 있다고요?
네, 그만두려고 했었어요. 밤 8시쯤 취객들이 와서 괴롭힌 적이 있거든요. 저녁 먹으면서 반주를 했는지, “너 뭐 하는 놈이냐!” 하면서 시비를 걸더라고요. 그러면서 막걸리값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더라고요. 큰 소리가 나니 사람들이 몰려들어 다 쳐다보고… 제가 완전히 망신을 당했죠. 길에서 그런 일을 당하니 너무 수치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양(계영) 코디님한테 부끄러워서 더는 못 하겠다 했더니 양 코디님이 “그런 고비를 넘겨야 해요. 선생님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시비를 건 취객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에요. 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물러나야 해요. 부끄러워하실 것 없어요. 당당히 판매하시면 돼요.”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 말에 마음을 다잡고 당당하게 판매지에 서 있기로 했어요.

홈리스가 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사실 홈리스가 되기 직전에 빅판 일을 시작했죠. 노숙을 한 적은 없어요.(웃음) 테이블 서너 개 있는 조그마한 식당을 몇 년 운영했었는데, 코로나19로 힘들어지면서 접었죠. 식당을 정리하면서 빚이 생겼어요. 지금도 그때 진 빚을 갚아나가는 중이에요. 수입이 많지 않으니 조금씩 갚고 있죠. 50대 넘어 인생이 한번 꺾이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어요. 처음에는 완전히 폐인 같았어요. 무료 급식소에 가면 줄 쫙 서 있잖아요. 그 줄에 같이 서 있는 저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하고 그랬어요. 근데 무료 급식소에서 빅판이란 일을 알게 돼 다행이에요. 피폐했던 마음이 많이 나아지고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기서 인생이 한번 꺾였지만, 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은 빚을 다 갚으시려면 《빅이슈》가 많이 팔려야 할 텐데요.
돈 욕심 내서 내가 이걸 얼마를 팔아 얼마를 벌겠다, 이런 생각은 안 하려고 해요. 그보다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적적하지 않고, 생활비에 보탬 되고, 그 정도로 이 일을 하는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적어요. 몇 권이 팔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서 어디 나갈 데가 있다는 게 좋아요. 오전에는 빅이슈 사무실에 가고 오후에는 판매지에 가고, 오전과 오후 다 할 일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죠.

1년 넘게 일하셨는데 그동안 친해진 빅판이 있나요?
아니요. 전 다른 빅판들하고 사적인 대화는 거의 안 해요.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가급적이면 안 하려고 해요. 친해지는 건 좋은데, 말을 하다 보면 ‘너는 얼마 팔았니, 나는 얼마 팔았니.’ 이러면서 판매량을 비교하게 되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지점이 생길 것 같아요. 저는 누군가와 지나치게 친해거나 지나치게 멀어지거나 하는 게 싫어요. 너무 친해지면 제가 해야 할 도리나 이런 게 생기게 마련이잖아요. 저는 아직 그걸 감당할 마음의 여유는 없는 것 같아요.(웃음)

, 평소에도 말씀이 많지는 않으신 것 같습니다.
네, 평소 말은 별로 안 하지만 제가 이 인터뷰에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우선 제가 빅판으로 일할 수 있게 도와준 김형철, 양계영 두 코디님에게 감사드리고 싶어요. 지금은 그만두신 유병호 코디님께도 꼭 감사를 전하고 싶고요. 그리고 신도림역에서 저를 찾아주시는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려요. 다들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에요. 경제적 도움뿐 아니라 인간적인 도움도 받고 있으니 꼭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글. 안덕희 |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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