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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0 빅이슈

주거 안정의 여정 (2)

2023.11.06

이 글은 '주거 안정의 여정 (1)'에서 이어집니다.

하지만 얼마 후부터 유성 님은 사회복지사들을 슬슬 피해 다녀 집중 관심이 필요한 여성이 되었다. 이제는 방을 좀 열심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하면 지인 집으로 갈 생각이라 했고, 지인이 방을 줄 만한 형편이냐고 물어보면 우물쭈물하며 그 순간만 모면하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장기 이용인이 되면서 유성 님과의 상담 내용은 대부분이 빨리 방을 결정하여 시설을 퇴거하는 방안에 대한 것이었다. 혼자 생활하는 게 부담되면 홈리스를 위한 거주 시설을 연계할 수 있다고 하니 관심을 보였지만, 동시에 수급비를 받지는 못한다고 설명하자 곧 시큰둥해했다. 그다음엔 우리 시설 가까이에서 고시원을 얻어 생활하면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찾아와 도움을 청하라 하고 고시원 명단을 제공했다. 그러나 어느 고시원은 남은 방이 없어서, 어느 곳은 리모델링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어느 곳은 너무 비싸서, 또 어느 곳은 환경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정을 못 했다며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는 날이 길어지면서 더는 어려우니 다른 시설에 가서 상담을 받으라 하자 큰 가방과 캐리어에 짐을 정리해서는 길거리에 한참을 서 있던 날도 있었다. 그날은 하필이면 장마철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어서 마음 약해져 모시고 들어와야 했다. 어떤 날은 이제 정말 안 되겠으니 어디라도 결정하라 하자 짐만 맡아달라며 나갔는데, 밥을 먹으러 찾아온 행색을 보니 어디서 노숙을 하거나 찜질방에서 자고 오는 듯했다. 수급비는 찜질방 비용을 내고 밥도 먹어야 해서 거의 써버렸으니 고시원은 다음 달에나 알아봐야겠다며.

시설에서 시설로, 고시원에서 시설로, 시설에서 거리로
진척이 없는 긴 실랑이에 지쳐갈 무렵, 유성 님이 몇 주나 나타나지 않더니 어느 날 찾아와서는 방을 얻었다고 했다. 드디어 방을 얻었다고? 박수를 쳐주며 어디에서 지내느냐 물었다. 시설 아주 가까이에 있는 집의 방 한 칸을 얻었단다. 오며 가며 집 앞에 나와 있던 할머니와 얘기하다가 방을 얻는다니 자기 집을 보여줘 들어가게 되었단다. 그러고는 공무원이 찾아와 실제 그 방에 거주하는지를 확인하더니 뭣 때문인지 주거급여 중 일부만 지급된다는 말을 하고 갔다고 푸념한다. 계약서는 제대로 작성된 것인지, 월세 납부영수증은 받았는지를 확인하던 동료 사회복지사는 함께 주민센터를 찾아가 좀 알아봐야겠다며, 그래도 찬바람 불기 전에 방을 얻었다니 얼마냐 다행이냐고 안도했다.

일시보호 기간이 끝날 때쯤 시설의 사회복지사들을 매우 난감하게 하는 사례 중 하나가 거주 시설도 싫고, 고시원도 싫고, 심지어 임대주택 입주도 싫다는, 그저 지금 이대로 있겠다는 여성들을 대하는 일이다. 최근에도 이미 이용 기간이 만료된 순영(가명) 님이 거주 시설이 싫다면 월세를 지원하는 서비스를 찾아 고시원을 얻어보자는 제안에 한 달째 반응하지 않고 있다. 고시원 월세를 감당할 일이 걱정인 것인지, 아니면 밥해 먹으며 생활하는 게 버거운 것인지, 생활비가 걱정인지 명확한 답이 없어 이야기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 모든 게 걱정되고 마땅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홈리스 여성들이 활용할 수 있는 복지 서비스가 있지만 어떤 여성들은 그에 대한 정보가 없거나 혹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필요한 요건을 갖추지 못해 진입이 안 된다. 어떤 여성들은 서비스가 자신에게 제공할 유리함을 곡해하거나 당장 이익을 제공하지 못해서, 혹은 서비스를 기다릴 만큼의 여유가 없어서 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시설에서 시설로, 고시원에서 시설로, 시설에서 거리로… 이곳저곳 불안정한 비정형 주거지에서의 삶을 무한정 연장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홈리스 여성이 한 발 앞으로 나가는 데 필요한 게 어느 한 가지만은 아닌 듯하다. 종합서비스와 지속적 관심이 없으면 정말 일보 전진이 힘들다고 느낄 때가 많다.

소개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글. 김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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