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이런 동화 같은 곳이 아님은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 그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불행한 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함은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세상은 드라마 속 같은 곳이 아니기에 친절이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옳음과 친절함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택해라.”
영화 <원더(Wonder)> 중에서

ⓒ pixabay
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다수는 나를 매우 시니컬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글에서 드러나는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토론장에서 상대를 물어뜯는 평론가 부류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내가 나를 평가하는 건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여러모로 평론가와는 거리가 멀다. 일단 그들만큼 논리적이지 못하며, 무엇보다 논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는 상대방이 피치를 올리면 져주는 편이고, 논쟁적 사안이어서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더라도 논쟁을 하고 나면 한동안 우울한 기분에 빠진다. 토론회 사회라도 보면 그렇게 마음이 안 좋을 수가 없다. 나쁘게 말하자면 겁쟁이라 할 수도 있다. ‘겁쟁이가 그렇게 공격적으로 글을 쓴다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래 겁이 많은 강아지가 더 많이 짖는 법이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을 들어 방금 내 신념에 반박하고 싶겠지만, 심지어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 극악무도한 이들조차 유전자나 타고난 본성이 문제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본성이 문제인 게 나쁘다는 소리 아닌가 싶겠지만, 내 세계관 내에서 이 둘은 별개다. 그 악함을 그 사람이 선택한 건 아니니까.
그런데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모든 사람을 악하게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다 나름의 나쁨을 가지고 있는데, 일부만 특정 행동을 과도하게 비난받는 것이 공평하지 않은 것이라 느끼는 거다. 모두가 나쁜 사람이라면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용서와 이해를 받을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넋두리처럼 하자 친구는 “그건 네가 나쁜 놈이어서 그렇고.”라는 말로 정리해주었다. 그렇지. 나 스스로가 악인이라 악인에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내 친구는 현자다. 친구야, 악인한테 한번 뒤져볼래?
아무튼 다 착하다고 믿든, 다 나쁘니 나쁜 짓을 해도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고 말하든 결론은 같다. 원래 지독한 비관주의는 낙관주의와 동일하다.
동네 바보 혹은 선인들의 우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혹은 모두가 악인인) 작품에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작품은 별로 없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보통 선악구도가 분명하다. 이런 구도가 대다수인 이유는 이렇게 만들어야 작품이 재밌고 관객들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감정이입을 할 선한 주인공과, 아무 죄책감 없이 증오할 악당이 있어야 하는 거다. 하지만 아주 가끔 악인이 없는 작품들이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꽤 좋은 작품이란 평가를 받는다. 최근 세 번째 시즌이 마무리된 애플TV의 대표작 <테드 래소(Ted Lasso)>가 이 부류에 속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의 설정은 어처구니없다. 미국의 한 미식축구 감독이 프리미어 리그 축구팀의 감독 제의를 받고 영국으로 넘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감독은 농담을 좋아하며 축구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 상황만 봐도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코미디다. 축구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진 않지만, 프리미어 리그 좀 본 사람들에게는 드라마 중간중간에 나오는 설정이나 대사, 배경에 더 마음이 끌릴 것이다. 물론 축구를 몰라도 전혀 상관없다.
드라마는 너무도 평화로워서 어떤 면에서 현대의 우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등장인물은 각자의 선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들은 종종 충돌하긴 하지만, 에피소드가 흘러감에 따라 결국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부분 행복한 결과를 맞는다.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행동은 주변 사람들과 무엇보다 시청자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시트콤인 만큼 등장인물 모두는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다. 어느 면에서 동네 바보 같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바보들이 모여 만든 세계는 아름답다. 그들은 부족하고 어느 면에서 편협하지만, 모두 타인의 고민과 사연에 관심을 가져줄 만큼의 친절함은 갖추고 있다.
세상이 이런 동화 같은 곳이 아님은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 그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불행한 이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함은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세상은 드라마 속 같은 곳이 아니기에 친절이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공동체를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면서도 흐뭇하게 바라본다. 역시나 착한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 <원더(Wonder)>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옳음과 친절함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택해라.”
오늘 하루는 날카로운 말을 접고 친절을 택해야지. 바로 나부터. 그런 의미에서 작품에 대한 비판은 넣어두는 걸로.
추천 콘텐츠
플랫폼: 애플TV
제목: 테드 래소
포인트
축구: ★★
유머: ★★★
친절: ★★★★
소개
오후(ohoo)
비정규 작가. 세상 모든 게 궁금하지만 대부분은 방구석에 앉아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가장 사적인 연애사>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등 여섯 권의 책을 썼고 몇몇 잡지에 글을 기고한다.
글.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