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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2

힐튼호텔 철거와 상실을 대하는 태도 (2)

2023.02.05


이 글은 '힐튼호텔 철거와 상실을 대하는 태도 (1)'에서 이어집니다.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건축사적인 맥락에서 호텔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근대의 징표였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힐튼호텔은 수준 높은 디테일과 완성도 면에서 다시 재현하기 어려운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힐튼호텔이 자본 논리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자본 논리로 없어질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미 보유한 소중한 자산이므로 허물기보다 이 자산으로 21세기의 어떤 이정표를 만들겠다는 시각으로 건물의 미래를 생각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 <중앙일보>, “‘현대 건축 자산’, ‘보존 강요 안 돼’, 호텔 철거 두고 논란”

또 재개발 과정에서 도시 빈민의 판자촌이 철거되는 일에는 지극히 엄격한 ‘자본의 논리’가 건축 자산 보존에서는 다소 느슨해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냉정하고 날카로운 잣대로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늘 말해왔지만, 힐튼호텔 보존에 대해서는 ‘21세기의 이정표로서 건물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하며 다소 역설적 자세를 내보이는 태도에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1978년 서울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유치로 도심 곳곳에 있는 판자촌 철거와 동시에 호텔 건설에 열을 올렸다. 당시 호텔은 관광객이 머무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 배경 자체를 비판할 수 없지만 정부와 자본이 대상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달랐다.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사람들의 삶을 지워내고 세워진 호텔의 보존이 납득되지 않아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힐튼호텔은 1978년 도심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9개 구역 중 하나인 양동 지역의 재개발사업 일환이었다. 정부와 서울시는 1970년대 초부터 서울역과 시청 일대, 종로, 을지로, 세종로 등 강북 도심 일대를 재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많게는 100여 개 필지로 나뉘어 있는 사업 지구 내의 복잡한 이해관계, 자금 부족 등으로 거개의 사업이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1988년 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1981년 이후 본격화되었다. 다른 지역과 다르게 힐튼호텔이 속한 양동 지역 6지구의 사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당시 사세를 급속도로 확장해나가던 대우그룹이 단독 시행자였고, 재개발사업의 목적도 처음부터 호텔 건립으로 뚜렷하게 정해져 있었다. 또 해외 차관 도입으로 자금 확보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해외투자가 있으면 수입 자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건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도 유리했다.
– <경향신문>, 오늘 서울에서, 건축의 아름다움으로 자본을 이길 있을까

기사에 등장하는 양동 지역의 재개발에 대해 언론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철거에 대항할 힘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비교적 순조롭게’가 아니라 거주자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아니었을까. 반복적으로 철거되는 와중에 몇몇 건물은 ‘쪽방촌’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이곳은 수십 년 동안 없는 존재처럼 여겨지다가 또다시 재개발 상황에 놓였다.

계단 아래, 쪽방촌

힐튼호텔 후면부는 인적이 드물다. 이곳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높이 솟은 서울스퀘어와 힐튼호텔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힐튼호텔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바로 건물 뒤쪽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 부설 제중원교회가 전신인 남대문교회도 있다. 얼핏 보면 통하는 길이 없어 보이지만 내리막길이 있다. 그동안 짐작만 했을 뿐 나도 그 길로 가본 건 처음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곧장 내려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이곳을 통과하면 쪽방촌이 바로 보인다. 소문으로만 듣고, 멀리서만 보던 쪽방촌에 닿기가 그렇게 쉬울 줄 몰랐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외딴섬 같은 양동 쪽방촌. 길 건너편 동자동 쪽방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다만 양동은 다사다난한 세월 속에 처음에는 힐튼호텔 건설을 이유로, 두 번째는 재개발로 많은 세입자가 어디론가 이주했다.

똑같이 사라지는데 왜 어떤 건물은 외면받고, 또 다른 건물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서 보존하라고 난리일까? 철거 대상의 성격 면에서 분명 차이점은 있으나 ‘사라진다’는 현상 면에서는 같다. 앞선 문단에서 강조한 점이다.

건물의 성격이 다르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과 ‘보존하는 것’에 위계가 존재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 사회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을까? 어쩌면 나 또한 모른 척 외면하고 있던 사람 중 하나일지 모른다. 지금에 와서야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며 쪽방촌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상상해볼 뿐이다. 쪽방 앞에서 기웃대며 서성거린들 쪽방 사람들의 인생을 100% 이해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거주하지 않는 이상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건 기록뿐이니, 모른 척하는 대신 어떻게든 남겨보고자 붙잡아두고 발걸음을 할 뿐이다.

쪽방촌으로 향하는 골목길 인근에 흡연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들이 쪽방 사람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인근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일 수 있고,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잠깐 머무는 사람일 수도 있다. 맞은편에서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인부 몇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공중에 흩날리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었다. 내게 쏟아지는 시선은 무심하면서도 이상했다. 기분이 찜찜해서 골목이 조용해질 주말에 다시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010년대 초반, 나는 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에서 야간 경비원으로 일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틈날 때마다 주변을 걸었다. 몇 년 후 ‘서울로7017’이 개장했고 소월로에 ‘피크닉’같이 힙한 장소도 생겼다. 나는 경비원을 그만둔 후에도 종종 이 일대를 걸었다. 백범광장을 지나 남산도서관까지 갔고, 서울로를 건너 피크닉도 갔으며 서울스퀘어를 보며 야간 경비원으로 일한 시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도 동자동에는 가지 않았다. 서울역과 남산 사이, 서울스퀘어와 맞닿은 곳에 있는 지역인데도 말이다. 동자동이라는 이름도 몰랐으며 그곳에 쪽방촌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정지돈, <스페이스 ()픽션>, 상상으로서의 관광, 68.

어두운 밤, 한 걸음 두 걸음

예정보다 늦은 시간 다시 쪽방촌에 도착했다. 사위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가로등 불빛으로 건물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골목에는 사람이 없었다. 건너편에서 본 마른풀이 무성한 빈 땅이 보였다. 옆을 보니 쪽방 건물이 쭉 이어져 있는데, 아마도 그중 일부를 철거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공사를 할 예정인지, 비계로 공사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위에 새겨져 있는 문장, ‘중구민을 위한 도시’.

헛웃음이 났다. 공사장, 쪽방 상담소, 재개발을 대비해 비어 있는 쪽방 건물 그리고 아직 남은 쪽방 그리고 사람들. 과연 중구민을 위한 도시인가? 길을 따라 걸어가니 몇몇 사람들이 1층 슈퍼 앞에 앉아 있었다. 골목 안까지 들어가 살펴보고 싶었으나 시선이 내게 닿아서 더 이상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곧장 걸어 서울역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맡은 냄새는 불쾌하지 않은 대신 현실을 더 또렷이 인지하게 했다. 대한민국 도시 개발사의 이면은 서울역 앞 화려한 풍경에 덮여버렸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주거 공간과 권리는 끝끝내 지켜지지 못했고, 마지막 남은 양동의 흔적마저 지워버리려고 한다. 남산 앞 힐튼호텔이 사라지는 건 못내 아쉬워하며 그 건축사적 의미를 하나라도 더 담으려 애쓰지만, 이곳에는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다. 불과 반경 몇 미터 내에 있는 쪽방촌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동경의 시선으로 높은 건물을 바라보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위대하고 대단한 업적으로 남을지 모를 테니 말이다.


글 | 사진.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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