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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2

힐튼호텔 철거와 상실을 대하는 태도 (1)

2023.02.05


'힐튼호텔이 철거된다고 했다. SNS에는 호텔 영업 종료와 철거를 아쉬워하는 게시물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일부 건축가는 시대를 반영하는 건축 유산으로서 힐튼호텔을 보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건축가, 비평가, 이론가 들이 개인적으로 또한 집단적으로 이 사안을 고민하며 더 나은 해법을 찾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 C3KOREA, 힐튼호텔 철거 위기에 부쳐

우아하고 세련되며 기능적으로도 완벽한 최고의 공간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던 그는 네트워크와 정보를 총동원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자재를 구해다 썼다. (…) “생각했던 것의 95% 이상을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완성도 높게 설계되고, 시공을 잘한 건물이에요. 그래서 더욱더 철거를 막고 싶은 마음입니다.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들에게 부동산 투자로 이익을 올리지 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 <서울신문>, 남산과 40 공존모더니즘 걸작철거 위기 넘어 다른 공존도전

나는 서울에서 많은 건물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매번 아쉬움을 토로한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지켜내야 할 대상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 기준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힐튼호텔 건설과 관련해 건축 당시 시대 상황, 건축물의 의미, 특정 인물에 대한 설명이 담긴 기사가 앞다투어 쏟아졌다. 하지만 호텔이 세워지기 전의 장소성을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호텔이 자리한 부지에는 지금은 사라진 ‘양동’(현 남대문로5가)이라는 동네가 있었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양동은 1946년부터 1980년대까지 전국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6·25전쟁 이후 난민들이 모여 살면서 판자촌이 형성되었고, 가난이 지속되자 사창가로 변모한 곳이기도 하다. 정부는 1964년 후반부터 반복적으로 판자촌 철거를 진행했고, 1967년에는 종로3가 사창가와 함께 이곳 사창가도 철거했다. 1978년에는 재개발사업 구역으로 지정하는데, 이 개발의 물꼬를 튼 계기가 바로 힐튼호텔 건설이었다. 이 과정에서 600여 명의 세입자가 어디론가 이주했다. 판자촌, 사창가, 도시 빈민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기보다는 그 공간을 없애고 새로운 성격의 건물을 지음으로써 대한민국 건축 기술의 현재와 위세를 내보였다.

누군가 사라진 자리에 세워진 힐튼호텔

그 시작점이 다소 불편한 진실을 품고 있더라도 최고의 건축가가 최고의 재료로 만든 완성도 높은 건축물이라면 지켜야 할 대상으로 논의해야 하는 것일까? 무언가를 지켜내는 데에는 대상의 가치뿐 아니라 이야기와 시대적 맥락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 또한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기에 명확한 기준이라고 할 순 없다.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어떤 대상을 ‘철거’하려는 순간에는 주변이 시끄러울 때가 많다. 유명한 사람이 연관되어 있으면 더욱 관심을 받는다. 지금 힐튼호텔이 바로 이런 사례에 속한다. 철거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보존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 지점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 과정에서 건축물로서 대한민국의 건축사적 가치가 아니라 사라진 양동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미 사라진 곳을 들춰내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는 일이고, 지금 지켜내야 할 것은 아직 철거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일까? 대한민국 현대 건축사에서 손꼽히는 건축가가 힐튼호텔을 설계하고, 최고의 재료로 서양의 모더니즘을 구현했다는 평가는 부정할 수 없지만,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지워진 자리에 세워졌다는 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글은 '힐튼호텔 철거와 상실을 대하는 태도 (2)'로 이어집니다.


글 | 사진.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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