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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2 에세이

길거리 비닐 집의 숙이 님 (2)

2023.02.04


이 글은 '길거리 비닐 집의 숙이 님 (1)'에서 이어집니다.

더디기만 한 변화

ⓒ unsplash

어떤 사람이 홈리스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단박에 이루어지는 극적인 과정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조금씩의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숙이 님의 경우에도 처음 뵈었던 몇 년 전 이후 이런저런 부침이 있었다.

숙이 님이 일시보호시설에 처음 온 때는 2021년 겨울이었다. 당시 동행했던 분 말로는 어느 야산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는 것을 구청에서 알게 되었고, 여러 차례 찾아간 끝에 힘들게 움막을 철거하고 시설로 오게 만든 것이라 했다. 시설에 처음 왔을 때 숙이 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역을 하는 게 자신의 소명이며, 그 외 일은 해보지 않았다고 했었다. 어떻게 살고자 해도 현실에서 생활을 유지하기는 해야 하지 않느냐고 설득해서 자활근로로 시설의 급식을 돕는 일을 하도록 했었다. 숙이 님의 생애력을 생각하면 그 일을 하는 것도 엄청난 변화여서 환호했었다. 그러다 일시보호 기간이 끝나갈 즈음 월세를 지원받아 고시원에 입실하였다. 고시원에서 한 달이라도 버틸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했다. 물론 고시원의 배려와 허용이 있기는 했다. 시설에서 다른 이용인들을 불편하게 했던 행동을 고시원에서라고 안 했을 리 없다. 고시원에서 밤에 소리를 지르고 어떨 땐 찬송가를 불렀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니 자제해 달라고 했지만 기도하는 것이라며 그치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다른 주민이 퇴실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식사도 잘하고 빨래도 꼬박꼬박 하며 위생 관리가 되었다. 또 주거급여 선정이 늦어져 월세가 밀릴 때는 일할 곳을 구해 달라고 부탁도 할 줄 알고, 가지고 있던 돈 중 일부를 내고 나머지는 주거급여가 나오면 그때 내겠다고 협상도 하면서 다시 길거리로 나가지는 않았다. 그때는 성공적인 탈노숙이라고 생각했었다.

첫 고시원 생활이 유지되지 못한 것은 고시원 측이 수리를 위해 방을 옮기길 요청해서다. 숙이 님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으며 방 이동을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을 불렀고, 고시원에서 쫓겨나듯 나오게 되었다. 겨우 다른 고시원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다른 입주민의 택배 물건을 가져가서 문제가 생긴 적도 있고 월세가 밀린 적도 있었으나 또 그럭저럭 유지했다. 지역사회의 자활근로에 참여하면 생계비를 지원받는 조건부수급자로 지정되었으나 근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탈락했다. 그러다 고시원 주인이 바뀌었고,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한다며 퇴거를 요청했다. 아무리 사정을 설명해도 방에서 꼼짝도 않으니 도와 달라며 시설로 연락이 왔다. 찾아가 만나서 상황을 설명했으나 역시나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다른 고시원을 소개해 달라며 찾아왔기에 소개해주었지만 가지 않고 연락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다 반년 만에 노숙하는 모습으로 다시 만난 것이었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먼저

ⓒ unsplash

숙이 님의 탈노숙이 아슬아슬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숙이 님의 상황을 설명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분은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할 것이다. 맞다. 하지만 잘 안 됐다. 자신의 행동을 이상하다고 여기지도 않을 뿐더러 종교적 신념에 따른 활동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정신과 진료를 받도록 하기는 힘들었다.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어 보이고 그것이 일자리나 주거를 유지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65세 미만의 근로 가능한 연령대 여성이었으므로 의사의 소견서 없이 근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지역사회 자활근로를 통해 생계비를 받는 자격을 취득했지만, 그 일에 참여하지 않은 숙이 님은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했다.

숙이 님이 그나마 길거리나 시설이 아닌 고시원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건 주거급여 수급자로 선정되어 고시원 월세라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거의 안정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월세가 아주 싼 고시원은 수리가 필요해서, 주인이 바뀌어서 등의 이유로 이사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럴 때마다 숙이 님 가까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주고 일을 돕는 사람이 필요했다. 지역사회에 생활하는 어떤 사람이 스스로 생활을 꾸려갈 힘이 부족하고, 이를 도와줄 가족이나 친지가 없다면 누가 이 부분을 보완해주어야 할까? 주소지가 자주 바뀌고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거의 없는 홈리스 여성, 스스로 서비스를 찾을 의욕이 없이 마음을 닫아버린 홈리스 여성이라면? 누군가가 찾아가서 관계를 발전시키지 않고서는 서비스가 미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지역사회에 뿌리가 없는 홈리스 여성의 고립을 막을 만큼 책임지고 찾아가는 활동을 할 여력이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숙이 님이 잠깐 머물렀던 시설도, 고시원의 주인도, 혹은 수급자를 지원하는 관공서 주무 부처의 공무원도, 그 누구도 숙이 님과 견고한 관계를 형성하고 지원하지 못했다.

홈리스 정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극도로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노숙 전에 이를 예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숙의 경계에 있을 때 악화를 막아낼 촘촘한 손길이 여전히 부족하다. 그러다 결국 찾아가는 활동이 가장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때는 어떤 이가 가장 열악한 상황, 모든 사람들의 눈에 띄는 길거리 노숙에 이르렀을 때다. 그나마 길거리 비닐 집의 숙이 님이 설득하러 간 사회복지사를 밀쳐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인 걸까?


글. 김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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