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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6 컬쳐

공주인가, 왕비인가, 드래곤인가 ― HBO MAX의 '하우스 오브 드래곤'

2022.11.08

ⓒ <하우스 오브 드래곤> 포스터

HBO의 <왕좌의 게임>은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시리즈였지만, 많은 시청자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결말을 남겼다. 이후 <왕좌의 게임> 프리퀄인 <하우스 오브 드래곤>을 제작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조지 R.R. 마틴의 다른 소설 <불과 피>(Fire & Blood, 김영하 옮김, 은행나무 펴냄)의 한 부분을 각색한 이 드라마는 <왕좌의 게임>으로부터 200년 전 시대의 타르가리옌 왕조에서 일어난 내전을 다룬다.

막상 뚜껑을 연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는 <왕좌의 게임> 시리즈를 넘는 거대한 장점이 있었다. 물리적인 의미 그대로, 거대한 크기의 드래곤이다. 1화 초반에 어린 라에니라(밀리 올콕)가 시락스를 타고 등장하며 엄청난 스펙터클을 보여주었다. <왕좌의 게임>에서도 대너리스 타르가리옌이 타는 드래곤 세 마리가 있었지만, <하우스 오브 드래곤> 속 타르가리옌 왕조의 후예들에겐 다양한 크기와 개성의 드래곤이 각 한 마리씩 있고, 그들 모두가 용을 타고 하늘을 누빈다. 왕조의 정통성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타르가리옌 후예들을 지키는 강력한 무기인 드래곤이 이 드라마의 정체성이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스토리는 소설 <불과 피> 중에서도 “드래곤들의 죽음”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타르가리옌 역사에서 “드래곤들의 춤”이라고 불리는 라에니라 공주파와 알리센트 왕비파의 내전을 다루었다. 드라마의 초반, 어린 알리센트(에밀리 케리)와 라에니라는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다정한 친구이다. 하지만 라에니라의 어머니 아에마가 아들을 낳다가 죽고 알리센트의 아버지 오토 하이타워(리스 이반스)가 정권에 대한 욕심으로 딸을 라에니라의 아버지 비세리스 1세(패디 콘시다인)의 새로운 왕비로 들여보내며 두 사람의 우정과 신뢰는 흔들린다.

페이크 역사서 형식을 띤 <불과 피> 중에서도 “드래곤들의 죽음”은 2013년 조지 R.R. 마틴이 발표한 <위험한 여자들>이라는 작품집 중 <공주와 왕비>라는 단편의 스토리를 가져왔다. 기실 “위험한 여자들”은 이 시리즈에 적절한 묘사이다. 라에니라(에마 다시)는 타르가리옌 왕조에서 여자로는 최초로 왕위 계승자로 지목되었다. 철왕좌를 차지하겠다는 것은 라에니라 본인의 강렬한 욕망이기도 하다. 알리센트(올리비아 쿡)는 반대로 아버지에 의해서 조종당하는 인물이다. 아버지뻘인 비세리스와 결혼하는 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비세리스의 죽음 이후 아들 아에곤을 후계자로 옹립하고, 자기 나름대로 왕국의 평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알리센트는 의지 강한 여성으로 변모한다.

수억 명이 고대하는 전쟁

ⓒ <하우스 오브 드래곤> 스틸컷

이런 관점에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전작 <왕좌의 게임>에 비해서는 조금 더 여성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물론 폭력이 도처에 있으며 약하고 부드러운 자는 잔인하게 제거될 수 있는 <하우스 오브 드래곤>과 <왕좌의 게임> 세계관에서는 여성은 도구적으로 취급당하기 쉽다. 그렇지만 적어도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여성의 욕망을 선명히 다룬다. 시즌 1의 4화 “협해의 왕” 편에서 어린 라에니라는 삼촌 다에몬(맷 스미스)에게 끌려 자신의 욕망을 찾지만 다에몬은 그를 거절하고 돌아선다. 이후 라에니라는 거절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호위 기사인 크리스톤을 자기의 침실로 이끈다. 4화의 연출자 클레어 킬너는 라에니라가 자기의 욕망을 실현하는 장면과 왕비가 된 알리센트가 수동적으로 비세리스의 욕망에 대응하는 장면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왕위 계승자로서의 라에니라의 주체성과 대상으로 취급당하는 알리센트의 억압이 보이는 장면이다.

권력에서 배제된 여성의 분노는 비세리스의 사촌이자 라에니라의 5촌 고모인 라에니스 타르가리옌(이브 베스트)에게도 있다. 왕위 계승 순서로 보면 라에니스는 비세리스보다 앞서지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왕위를 차지할 수 없었다. 9화 “녹색협의회”에서 비세리스의 죽음 후 알리센트가 라에니스를 자신의 녹색파로 끌어들이려고 찾아와서, 이 분노를 다시금 상기시키며 협조를 부탁한다. 하지만 라에니스는 아버지, 남편, 아들을 보살피며 살아왔던 알리센트에게 왜 스스로 철왕좌를 차지할 생각을 하지는 않느냐고 되묻는다. 결국 이 드라마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이다.

엄밀히 말해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가치는 이런 거대한 메시지에 있다고만 볼 수는 없다. 드라마는 지나치게 잔인하고 빠른 살인, 근친혼, 섹스, 아동 학대 등의 자극적인 장면을 별다른 검열 없이 내보내는 것으로 비판받을 만하고, 화면도 가끔은 인물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을 만큼 어둡다. 스토리 전개는 군데군데 튀어서, ‘우리가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나?’ 싶을 만큼 생략하고 넘어가는 부분도 많다. 원작에서는 금발에 옅은 피부, 자주색 눈으로 묘사되는 벨라리온 가문을 쇼에선 짙은 피부의 배우들이 연기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백인 위주의 쇼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재미있다. 그것이 바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가치이다. 이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쇼는 사람들을 끈다.

ⓒ <하우스 오브 드래곤> 스틸컷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인물들은 내적 욕망이 만드는 논리에 따라서 행동하고, <왕좌의 게임> 외에 어떤 쇼도 포착하지 못하는 묘한 현실감을 띤다. 판타지이면서도 인간 사회의 정치학을 가장 극명하게 묘사하고, 숭고하든 비천하든 인물의 특성은 인간 성격의 단면을 보여준다. 여기에 삶의 시시한 희극과 거대한 비극이 동시에 공존한다. 대표적으로 8화 “조수의 영주” 편에서 이제 늙고 쇠잔하여 죽음을 앞둔 비세리스가 사랑하는 딸 라에니라를 지지하기 위해 힘겹게 철왕좌로 걸음을 떼는 장면이 그렇다. 그의 행진은 우스꽝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거기에는 비극적 엄숙함이 있다. 이런 장면들이 모여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을 만든다.

미국 시각으로 10월 23일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10화 “블랙 퀸”을 마지막으로 시즌 1의 막을 내린다. 이미 1화 방송 당시 999만 명의 시청자를 끌며 HBO 사상 1회 방송 최고 시청률을 올렸고, 비평가들의 평가도 시즌이 진행될수록 더 긍정적이다. 드디어 시작되는 라에니라의 흑색파와 알리센트의 녹색파의 전쟁, “드래곤들의 춤”은 2024년에나 다시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전 세계 수천만, 수억 명이 기다릴 전쟁이다.


글.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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