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취미인데 대회까지? (1)'에서 이어집니다.

내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거기에는 골반 비대칭과 발의 아치 무너짐, 전체적인 근력 부족 등 짧은 기간에 개선하기 어려운 요인이 있는데, 당장 제대로 해내라며 채찍질해대니 서럽기도 했다. ‘초심자용 대회인데 잘 안 되는 동작은 빼고 잘되는 동작을 보기 좋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인 전략 아닌가?’ 하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웠고, 계속 난도 높은 동작을 해내길 요구하는 그가 야속했다. 심지어 그가 탱고 강사를 언급하며 너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하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강사를 초심자에게 갖다 대는 건 선 넘은 것 아닌가! 그렇게 쌓인 부정적인 감정이 일정 정도 쌓이고 나니 머릿속 퓨즈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며 이성을 잃었다.
결국 나는 욕쟁이로 변했다. 그에게 “×발, 기분 × 같게 말하네.” “본인은 ×나 잘 추는 줄 아나 봐.”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양손으로 ‘벅큐’를 날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건넌 다리를 태워버리듯이 화를 낸 뒤, 막상 파트너십이 깨질 위기에 처하자 ‘아 맞다, 얘 아니면 같이 할 애 없지!’ 하는 생각이 들어 후회했다. 일단 저지른 뒤 꼬리 내리고 사과하며 어르고 달래는 일이 연습 기간 동안 수차례 반복됐다.
나한테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건 아닌가? 후회할 것을 경험을 통해 이미 알면서 왜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속된 말로 꼭지가 돌면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력을 상실하며 감정을 폭발시켜야만 하는 나에게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다. 심리 상담을 받아볼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무료 심리검사 및 심리 상담을 단기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할머니가 되면 꼭 참가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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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심리 상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기회 되면 또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요약해 말하겠다.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은 심리 상담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해보자(파트너야, 너도 해봐). 적어도 나는 도움이 됐다. 심리검사 결과를 인식하며 나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상담 과정에서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 행동 요령도 습득했다. 내 감정을 ‘분노’로 납작하게 이해하지 않고 기저의 감정을 살펴볼 것. 쌓아놓다 한 번에 터뜨리지 말고, 쌓이기 전에 미리 감정을 알아차려 알맞은 어휘를 붙여줄 것. 분노를 ‘행동화’하는 것이 미성숙한 방어기제일 수 있음을 인지하며 더욱 성숙한 방어기제를 훈련할 것.
심리 상담 덕인지 파트너십은 대회까지 이어졌다.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가장 먼저 시상대에 오른 팀이 우리였다(3위). 꽃다발과 상패를 손에 쥐고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니 들떴다. 게다가 대회 중 찍힌 사진과 영상을 보니 파트너와 나, 썩 잘 어울려 보였다. 이 파트너십을 잠시 더 유지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은 그저 좋은 동네 친구로 지내기로. 먼 훗날 둘 다 어마어마한 실력을 갖춘 뒤 만나면 덜 싸울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남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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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한테는 대회 참가가 ‘재미’있는 경험은 아니었다. 준비 과정에서 많은 괴로움이 있었고, 대회 당일에는 심히 떨렸으며, 대회 전후 계속 몸 여기저기 아프고 쑤셨다. 하지만 해볼 가치가 있는 경험이었다. 참가비가 아깝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를 더 잘 알게 됐고, 탱고 실력이 향상됐으며, 탱고를 더 잘 추고 싶다는 자극을 받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도 남겼으니.
언젠가 먼 훗날, 할머니가 돼서라도 세계 탱고 대회 결승전에 오르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탱고를 출 것이다. 내가 언젠가 서고 싶은 그 무대가 궁금한 독자들은 ‘Mundial de Tango’를 유튜브에 검색해보시라. 지난 대회 영상을 볼 수 있고, 9월 중 시기가 맞아떨어지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생중계하는 대회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박력 넘치면서도 우아한 탱고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시길.
글. 최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