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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3 컬쳐

무대 위, 즉흥의 챕터가 열린다 ― 펀타스틱 씨어터 (2)

2022.09.23


이 글은 ;무대 위, 즉흥의 챕터가 열린다 ― 펀타스틱 씨어터 (1)'에서 이어집니다.

제1원칙은 Yes, and

ⓒ 2022코미디캠프 포스터

임프라브의 가치를 묻자 펀타스틱 씨어터 박형근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임프라브의 제1원칙은 ‘yes, and’다. 상대방이 만들어준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Yes), 거기에 추가적인 정보, 내 생각을 덧붙이는 것(and). 이 과정에서 서로는 상대방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배우들은 무관한 정보를 받아서 거기에 자기 생각을 얹어가며 서로 협업해 대화를 이어 나가게 되는데 이 방식은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식과도 닮아 있다. 다만 여기에서의 yes가 무조건적인 찬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상대의 제안에 동의한다기보다 상대의 제안을 인지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내 이야기를 온전히 인지하고 그대로 들어줄 것이라는 신뢰. 이러한 믿음에서라면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들이 필터 없이 쏟아져 나올 수 있을 터. 그래서 임프라브를 활용한 기업 워크숍이나 자기계발 프로그램도 꽤 많다.

박형근 대표도 금융권 조직에서 리더 역할을 할 때 이 임프라브 개념을 처음 접했다. 조직 구성원들의 창의적 발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접근이었는데 그것이 본인 삶의 커다란 화두가 되었다.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미국 월스트리트로 진출, 30년간 투자를 매개하는 트레이더의 삶을 살다가 임프라브와 함께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 미국 시카고에 있는 코미디 사관학교라 불리는 ‘I.O.(Improv Olympic)’라는 곳에서 수업을 들으며 행보를 더욱 구체화했다. 이후 퇴직을 감행하고 2016년 숙대 앞에서 50석 규모의 ‘코리아 임프라브 씨어터’라는 작은 극장을 열었다. 그 성취의 경험들이 지금의 ‘펀타스틱 씨어터’로 이어졌다. 하지만 매번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삼각지로 확장 이전한 지 3개월도 안 되어 팬데믹의 여파를 정면으로 맞은 것. 하지만 대관과 다양한 공간 활용으로 지속 가능한 방법을 모색했고 결국 이 임프라브 문화의 산실은 지금껏 건재하게 살아남았다. 9월 초에도 임프라브 극단의 공연을 무사히 마쳤고 앞으로는 정기공연도 재개할 계획. 이 임프라브 아지트에서 앞으로 어떤 에너지가 퍼져 나갈지 사뭇 기대가 된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이 문을 열었다. 무용가인 배구자와 그의 남편 홍순언이 설립한 동양극장은 회전무대를 갖추고 전속 극단까지 두며 연극을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그곳에서 뿌린 씨앗들은 신파극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고, 이름난 배우들의 성장을 도모했다. 조선인들의 정서에 맞는 연극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거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대를 마련한다는 건 단순히 마음을 모으고, 생각을 합치는 것만이 아니다. 쌓고 펼칠 수 있는 물리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 대학로의 소극장들처럼, 그리고 30년대의 동양극장처럼, 하나의 문화가 꽃피려면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을 뿌리내릴 수 있는 단단한 거점이 필요하다. 페스티벌, 스탠드업 코미디, 토크쇼 등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공간. 여기, 펀타스틱 씨어터에서 즉흥의 챕터가 열린다.


글. 김선미
사진. 김선미·펀타스틱 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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