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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0 인터뷰

‘워킹맘’ 문정아·이정미 씨 (2) ― 임신, 육아, 그리고 돌봄…

2022.08.02

‘돌봄의 위기’는 언제나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러나 비장애인, 비노인, 비감염인은 이 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감각하기 어렵다. 돌봄에 종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일하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번 호에 만난 돌봄 기술자는 서울에 거주하는 ‘워킹맘’ 문정아 씨와 이정미 씨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위해 직장에서 휴직, 퇴직, 이직, 전직 등 모든 방법을 동원했던 두 사람은 오늘도 매일매일 집 안팎에서 고군분투한다. 이 인터뷰는 총 2회에 걸친 인터뷰 중 두 번째다.


문정아 씨

정미 님은 10 남아, 7 여아 자녀를 두고 계시고, 정아 님은 13 남아, 9 여아 자녀를 두고 계세요. 자녀들이 가정 돌봄을 보고 자랄 텐데 어떤 점을 주의하고 강조하려고 하나요?

문정아(이하 ) 남편은 대를 잇고 가족을 먹여살리는 것을 아버지의 역할로 경험하고, 할머니와 어머니의 돌봄을 받고 자라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집안일의 빈틈을 잘 깨닫지 못해요. 그 점을 알게 되고 제가 모든 것을 일일이 지적하고 말해주게 됐어요. 하지만 이것도 그 남자를 돌보는 일이죠.

이정미(이하 ) 맞아요. 남편은 우리 집 큰아들이라는 얘기가 있잖아요.

평생 모르고 살아온 것들을 일러주는 일까지 제가 해야 하잖아요. 그럼에도 그 일이 필요한 이유는 남편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밖에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집에서 보이는 소위 ‘남성적인’ 모습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덜 줬으면 해서요.

시댁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나요. 남편도 시동생도 아버님도 가만히 있고, 어머님 혼자 부엌에서 식구들 식사를 준비하시더라고요. 저는 뒤에 쭈뼛쭈뼛 서 있었고요. 그래서 남편한테 음식을 주면서 조용히 얘기했죠. “당신은 우리 집에서도 가만히 있고, 본가에서도 가만히 있네.” 이 집안 남자들에게는 그 상황이 일상이었던거죠. 그래서 제 아들에게는 집안일에 참여시키고 교육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정미 씨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만화 <며느라기> 생각나요. 시어머니 생신날 자식들은 가만히 있고, 결혼한 며느리 혼자 생신상을 차리잖아요.

그런 모습이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 같아서 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요. 하루는 아들이 저한테 “엄마, 설거지 왜 안 했어?” 하고 묻기에 “엄마가 설거지하는 사람이야? 우리가 다 같이 밥을 먹었는데, 왜 엄마가 설거지를 해야 하지?” 하고 말했어요. 논리적으로 옳은 반박이니까 대답을 못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설거지할 테니까, 네가 빨래 개켜줄래?” 하니까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오빠가 하니까 딸도 와서 하고 분담이 되더라고요.

제가 여성으로서 떠안는 기존의 성 역할과 차별을 제 딸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어요. 아들보다 딸의 이야기를 더 신경 써서 들어주다 보니까 딸이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로 자랐고요. 그런데 시댁이나 친정에 가면 ‘딸내미가 저렇게 성격이 나쁘면 안 된다.’는 식의 얘기를 들어요. 한번은 제사 준비를 하다가 시어머니가 딸에게 무슨 일을 시켰는데, 아이가 “집에서 엄마는 저한테 이런 걸 시키지 않아요.” 하고 거부했어요. 할머니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니까 아이가 논리적으로 따지지는 못하고, “할머니한테는 과자 안 줄 거예요.” 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더라고요. 이미 전 시어른들과 여러 차례 부딪친 터라 난감했어요. 그런데 우리 아들이 “여자인 게 무슨 상관이에요. 여자라고 더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라고 말하더군요. 아이가 나서서 얘기해줘서 고마웠어요. 이렇게 아이의 세대는 이 문제를 스스로 돌파했으면 좋겠어요. 다만 우리가 (성차별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 하고요.

저는 ‘분노의 불꽃슛’이라는 워킹맘 풋살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그런데 가끔 놀러 오는 남자분이 몇 달을 연습한 우리보다 훨씬 잘하는 거예요.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한 회원이 “어릴 적 우리가 소꿉장난할 때 남자아이들은 공을 가지고 놀았잖아.” 하더라고요. 일리가 있어요. 공을 쉽게 가지고 논 사람이랑 처음 만지는 사람이랑 같을 수가 없죠.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성 역할을 파괴하는 경험을 다양하게 시켜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과 돌봄의 이중 과업, 감정 노동으로 야기되는 어려움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요즘 에세이를 쓰는 모임에 참여하는데, 저만 4인 가족의 일원이고 다른 친구들은 싱글이거나, 결혼했지만 아이는 없어요. 저는 인생의 절반 정도를 엄마로 살다 보니 결국 돌봄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되더군요. 저한테는 가사노동보다 돌봄 노동이 더 어려워요. 밤에 자다가도 아이가 울면 당장 깨서 달래야 하고, 몸이 아파도 같이 자며 보살펴야 하죠.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거나 저한테 일정이 있으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준비해야 하고요. 새벽 근무, 아침 근무, 야간 근무를 아울러 시간에 상관없이 노동하는 느낌이에요. 물론 대화를 나누면서도 감정 노동도 하고요. 이걸 글로 쓰고 보니까 무척 슬프더라고요. 하루 24시간 중에 내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잠을 자는 딱 6시간밖에 없구나 싶어서요.

엄마는 주로 돌봄 제공자지만 모든 사람은 언젠가, 어느 순간에는 다른 사람의 돌봄을 필요로 하잖아요. 돌봄이 필요해지면 어떤 형태의 돌봄을 받기를 바라시나요?

나이가 들면서 주변 친구들이나 언니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해요. 매월 하던 생리가 끝난 언니들도 있고, 생리 불순 같은 몸의 변화를 겪기도 하잖아요. 지금까지 주로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삶을 살았는데, 나중에 아이들이 독립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가족 구성에 변화가 생기면 어떡하나 싶어요. 저 자신을 스스로 돌봐야 할 텐데, 오랜 시간 다른 사람을 돌보느라 애쓰다가 자기를 돌봐야 하는 시기에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태인지 모를 때 느끼는 상실감과 아픔이 크대요. 그래서 제가 떠안은 돌봄에 대한 책임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회사에서든 제도적으로든요. 이런 변화가 생기고 제가 나이가 들면, 결국 가족이 아니라 친구나 동료처럼 비혈연관계의 사람들이 서로 돌보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맞아요. 우리끼리 연대하고 같이 살아가는 게 옳은 선택인 것 같아요.

작년 서울 성동구에서 돌봄 노동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경력보유여성 등의 존중 권익 증진에 관한 조례’(이하 경력보유여성조례) 제정해서 화제가 됐잖아요.

성동구의 돌봄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조례 같은 것도 물론 중요하고요. 돌봄 노동 제공자에게 회사 업무 시간을 조정해주는 정책이나 청년 수당처럼 돌봄 수당도 생기면 좋겠어요. 육아 수당이야 저출산‧고령화 사회 극복을 위한 인센티브 같은 개념이지 노동을 인정하는 의미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돌봄의 사회적 가치는 따로 매겨야 하죠.

아이를 가지면 모든 사람이 축하만 하잖아요. 저는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가 둘째 낳은 직후부터 아이가 생후 50일이 될 때까지 기간이었어요. 첫째도 어린데 더 어린 핏덩이를 안고 한여름에 모유 수유까지 하니까 우울감이 심해지더라고요. 저 자신이 외로운 섬 같다고 느꼈어요. 아이들을 의지하고 사랑하지만, 동시에 나의 우울감이나 힘든 마음을 아이들에게 쏟아내 또 다른 약자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힘들었죠. 다행히 저는 억지로 밖으로 불러내는 언니들이 있어서 점점 나아졌는데, 고립되어 힘든 엄마들도 많은 걸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해요. 자녀 양육 과정도 굉장히 양극화되어 있다고 봐요. 임신에 대해서는 축하를 쏟아내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번 대담을 통해 불합리한 상황에 맞서 싸워온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다음 세대는 같은 상황을 겪지 않기를 바랄 같아요. 결혼을 했든 했든 육아나 돌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텐데 다음 세대가 이루길 바라는 변화가 있다면 뭔가요?

다음 세대 여자들은 유연하게 쟁취하면 좋겠어요. 제가 육아휴직을 따내려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싸웠거든요. ‘내가 이만큼 하면 너도 이만큼 해야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에 끊임없이 싸웠는데,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까지 겪은 지난한 과정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더군요. 물론 제 성격도 한몫했겠지만,(웃음) 뾰족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쟁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어요.

저는 강해졌으면 좋겠어요. 정미님의 유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랑 일맥상통해요. ‘말을 좀 곱게 하라’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이래야만 한다’는 강박과 책임감에 휩싸여 기를 쓰며 살아왔어요. 다음 세대 여성들은 “너는 너무 기가 센 여자야.”라는 말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강한 마음이 결국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봐요. 말을 잘한다고 살리는 것도 아니고 인기 많다고, 센 척한다고 살리는 게 아니에요. 어쨌든 자기 마음만 강하면 잘해낼 수 있을 거예요.


글. 양수복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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