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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0

“그분은 우리 관할이 아닌데요”

2021.05.23 | 동네에서 밀려난 여성 홈리스 / 홈리스 여성 이야기

© unsplash

일시 보호시설을 이용하고 고시원으로 나가서 생활하는 두 여성과 관련한 일로 오늘 하루 동안 네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한 사람은 두 여성이 각각 생활하는 고시원의 총무들이었다. 먼저 전화를 한 사람은 “그곳에서 월세를 지원하는 여성 B씨”와 관련한 일이라며, 그이가 고시원에서 자주 소리를 질러 조용히 해달라고 당부했지만 전혀 듣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제발 옆방 입주자를 생각해 조용히 지내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고, 옆방 입주자들은 B씨 때문에 고시원을 나가겠다고 하니 시설에서 어떻게 좀 해달라고 했다. B씨가 매일 고성방가로 주변을 시끄럽게 했을 거라는 점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시설을 이용할 때도 하루에 몇 번씩 혼자서 소리 높여 하소연을 하곤 했으니 말이다.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B씨는 치료를 받지 않아서 노숙인 재활 시설이나 자활 시설에도 가기 힘들고, 정부의 지원금으로 월세를 지원받는 것도 싫다고 고집을 피우던 분이다. 그래서 후원금으로 한 달 고시원비를 지원해 독립하게 해드렸다. 독립할 능력이 있거나 준비가 된 것이 아니라, 규정상 시설 이용 기간이 만료되었고, 다른 시설은 이용하기 싫다고 했기 때문에 거리 노숙보다는 나은 대안으로 찾은 게 고시원인 셈이다. 우리 말이 효과적일지 모르겠지만 한번 찾아가 면담을 해보겠다고 답했다.

지역 돌봄 서비스의 구멍, 다들 힘든 건 알지만…
또 다른 고시원의 총무는 작년에 고시원비를 지원한 염 선생님 문제로 전화를 했다. 그 전에도 고시원비 지원이 종료되면 이후 고시원비는 어떻게 낼 거냐며 걱정하는 전화를 했었고, 주민센터에 찾아가 전입신고를 하고 주거급여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우리와 긴밀하게 협력해 꽤 친숙한 관계다. 오늘의 용건을 요약하면 이렇다. 염 선생님이 나가서 며칠 동안 술을 마시고 무전취식으로 경찰에 신고되어 자신이 가서 데리고 왔고, 술을 마시고 어디를 어떻게 다녔는지 다리가 퉁퉁 부어 병원에 가야 할 듯하니 시설 실무자들이 병원에 모시고 가달라는 내용이었다. 염 선생님을 챙길 가족이나 친지가 없다는 건 잘 알지만, 고시원으로 나간 지 1년이 되었고 주거급여를 받는 수급자로 선정되었으니 주민센터에 연락해서 지역주민을 좀 챙겨달라고 건의해보자고 응대했다. 총무도 주민센터에 전화해보겠다며 흔쾌히 전화를 끊었다.

© unsplash

그렇게 일이 풀리나 보다 했는데, 한참 후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담당자는 우리 시설에서 자신들의 담당 구역 내 고시원으로 힘들고 어려운 분들을 자꾸 보내 관리하기 버거우니 가능하면 다른 지역의 고시원을 찾아서 분산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얼마나 힘들면 이런 전화를 했을까 싶고 고충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살고 싶은 곳, 자신의 형편에 맞는 곳이 하필이면 그런 고시원인 홈리스 여성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다. 공공기관에서조차 관리하기 수월한 지역주민을 선택하려 하면, 홈리스 여성들이 어떻게 노숙을 벗어나 지역사회 주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화를 간신히 누르고 고시원을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홈리스 여성 당사자라고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염 선생님 건으로 마지막 전화를 받았다. 취약계층 동행 서비스를 하는 사회적기업이라며, 주민센터의 연락을 받았는데 자신들은 오늘만 해도 이미 세 건의 동행 활동이 예정되어 있으니 염 선생님처럼 병원에 자주 가야 하는 분은 우리 시설과 동행 활동을 분담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또다시 죄송하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고 똑같은 답변을 반복해야 했다. 우리 역시 하루 근무자가 한두 명에 불과하고, 우리 시설에 있는 여성들을 돌보기에도 부담이 크며, 염 선생님은 이미 지역사회 주민이 된 지 1년이 되어가므로 지역에서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는….

홈리스의 비빌 언덕이 되어줄 수 있는 기관은 공공이든 민간이든 저마다 일이 많아 버겁고 힘들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서로 떠넘기는 듯한 사태가 생기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돌봄 서비스의 구멍이 발생한다.

© unsplash

혼자, 씩씩하게 혹은 여럿이 다정하게
이런 일을 되풀이해서 겪다 보면 이런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노숙을 벗어난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홈리스 여성은 노숙을 벗어난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노숙인 시설에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홈리스의 자립 성공률이다. 얼마나 자립을 하는지, 자립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일을 하는지, 자립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지, 다시 노숙하게 되었다고 찾아오는 일은 없는지 등등. 질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립한 삶이라는 건 ‘혼자서도 씩씩하게,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가정하는 듯하다. 씩씩하게, 스스로 선다는 것!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성인이라면 모름지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일반적 덕목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탄하는 잣대가 될 수 있어 위험하다. 돈줄이 메말라 모아둔 비상금은커녕 당장 월세를 낼 돈도 없는 홈리스 여성들, 찾아서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대개 일용직이어서 수시로 실업 상태에 맞닥뜨리는 여성들, 몸이 여기저기 안 좋고,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아 일은커녕 일상을 유지하기도 버거운 여성들, 도움을 청할 가족이나 친지가 거의 없는 여성들, 이들 홈리스 여성들이 노숙을 벗어나 지역사회의 주민이 되려면 ‘혼자 씩씩하게’로는 어렵다. 성공하기 힘들다.

하긴, 타인의 도움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건 인간의 본령이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찌 아이뿐이겠는가. 어른인 우리의 삶을 보아도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살아간다. 어떤 관계는 공적이거나 공식적이고, 어떤 관계는 지극히 사적이고 비공식적이다. 얽히고설킨 관계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삶을 유지한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거나 너무 힘든 일이다. 우리에게 엄마가, 아빠가, 형제가, 친구가 필요한 것처럼 홈리스의 위태로운 삶을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들에게도 지역사회의 촘촘한 지지 체계가 절실하다.


김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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