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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4

동갑내기 여성의 사망,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2021.02.10 | 이주노동자 속헹의 죽음

속헹, 그녀는 나와 동갑내기 여성이었다.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한 해 그녀도 한국에 입국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녀도 나처럼 4년 넘게 한곳에서만 일했다.

하지만 속헹과 나의 환경은 달랐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직장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지만 그녀가 외국에서 온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직장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한국에는 고용허가제라는 제도가 있다. 이 제도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정해진 기간 동안 지정된 업체에서만 일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녀처럼 매년 5만 5천 명의 외국인이 직장 이전의 자유를 빼앗긴 채로 한국에 입국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나. 속헹의 고된 노동에도 거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 농장에서 4년을 일했고 곧 고국인 캄보디아로 돌아갈 비행기 표도 끊어놓은 상태였다. 2021년 1월 10일, 계획대로라면 속헹은 캄보디아로 떠났어야 했다. 그로부터 20일 앞선 지난 2020년 12월 20일, 속헹은 포천 기숙사의 한 작은 방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그녀는 따뜻한 나라에서 태어났고 자랐지만 그녀가 사망한 당일 포천 지역은 영하 18도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결국 그녀는 살아서 캄보디아로 돌아가지 못했다.

전날 밤, 누전차단기를 수차례 올려도 계속 내려갔고 그녀를 제외한 동료들은 모두 난방이 되지 않는 기숙사를 피해 인근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속헹은 홀로 난방이 되지 않는 기숙사에 남았다. 이러한 사실은 동료들이 이주노동 관련 시민사회단체에 연락을 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그녀를 “가족처럼 대했다.”고 말한 농장주는 비닐하우스 안에 가건물을 지어두고 노동자들에게서 월세로 13만 원씩을 받았다. 특별히 이 농장에서만 벌어진 악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에서는 가능한 일이었으므로.

‘한국인이나 챙기라’는 말
나는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쓰고 시민기자의 기사를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정신이 건강한 날에는 크게 개의치 않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기사 댓글을 살피고 그걸 깊숙이 받아들일 때도 있다. 속헹 사망 기사의 경우는 후자였다. 이주노동자 기사에는 언제부터인가 습관적으로 달리는 댓글 유형이 있다. 바로 ‘한국인부터 챙기라.’는 말이다. 댓글을 단 이들은 이주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한국인도 있지 않느냐고 비난한다.

캄보디아는 한국인이 자주 가는 대표적인 여행지다.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5시간 25분이 걸린다. 굳이 덧붙이자면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차로 5시간이 걸린다. 댓글을 단 복수의 이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왜 당신에게 캄보디아에서 온 속헹은 한국인보다 더 먼 사람인가. 그건 아마도 캄보디아와의 물리적 거리 때문은 아닐 것이다.

속헹이 20일만 더 살아서 출국했더라면 나는 그녀를 평생 모를 수도 있었다. 그녀가 사망한 뒤에서야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됐고 얼굴을 보게 됐다. 포털사이트를 조금만 검색하면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가 한국에서 살았던 곳의 사진을 본다. 서두에 속헹과의 공통점을 길게 늘여 쓴 건 다음과 같은 이유다. 나는 어쩌면 댓글을 단 당신보다도 동갑내기인 속헹이라는 한 명의 사람과 공통점이 더 많지 않은가.

속헹의 죽음을 두고
속헹의 죽음을 둘러싸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똑같은 죽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쌓여 있다. 이미 속헹이 한국에 입국한 해인 2016년부터 이주노동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고용노동부는 내리는 비만 피하려고 했다. 2016년 이후 비닐하우스 숙소는 금지됐지만,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을 기숙사로 활용하는 경우는 허용했다. 바로 속헹이 살던 기숙사와 같은 형태의 숙소 말이다.

5년이 지났고, 속헹이 죽고 나서야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고용허가를 불허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설건축물은 허용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은 안 되지만 ‘비닐하우스 외 가설건축물’은 된다는 희한한 논리였다.

또한 속헹은 한국에 와서 끊임없이 일을 했지만 3년 넘게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부검 결과 속헹의 사인은 ‘간경화 합병증’이었지만 속헹이 한국에 입국했을 때 진행했던 건강검진 결과에서는 이상 증세를 발견하지 못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병을 얻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합리적이다.

한국은 내국인,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다가 매일 최소 두 명씩 죽는 나라다. 산재 사망률은 OECD 가입국 가운데 1위다.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대체로 속헹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대로라면 속헹과 비슷한 피해자는 얼마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유지영
<오마이뉴스> 사회부 기자. 언제나 정확하게 듣는 사람이고 싶다.

사진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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