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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4 커버스토리

시간을 관통해 명작이 돌아오기까지

2021.02.22 | 거북이북스 편집장 오원영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복간은 작가 신일숙이라는 역사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온 출판사 거북이북스의 편집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거북이북스 편집장 오원영은 추억의 만화방에서 손꼽아 기다리던 그 책을 독자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1986년에 발간된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 초판의 생생함을 되살려 2021년에 돌아왔다. 역시, 미래란 언제나 예측 불허의 존재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 복간이 결정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신일숙 작가님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 <리니지>, <파라오의 연인> 등을 포함한 많은 작품을 거북이북스에서 e-북으로만 서비스하고 있었는데, 작가님의 작품을 종이 책으로 내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중에서도 단연 <아르미안의 네 딸들> 복간 요청이 많았죠. 이미 몇 번 출간된 작품이지만 품절 상태였기 때문에 중고 시장에서 고가로 거래되었어요. 그래서 출판권을 가진 거북이북스에서 다시 내기로 결정했죠.
거북이북스 대표님과 신일숙 작가님은 순정 만화 잡지 <윙크> 창간 때부터 편집장과 작가로 인연을 맺어왔는데, 오랜 세월 함께한 게 복간에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복간 결정 후엔 ‘레트로판’이라는 콘셉트를 잡았어요. 1986년 도서출판 프린스에서 낸 초판본을 복원해내자고요. 어렵게 구한 35년 전 초판본 표지를 스캔해서 신 작가님께 드렸고, 작가님이 일일이 다시 보정하셨어요. 당시 만화 표지에 있던 ‘심의필’ 마크와 ‘심의를 거친 책’이라는 문구도 작가님이 지우고, 표지 그림을 완성해 보내주셨어요. 타이틀 디자인도 초판본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죠. 제작 과정에서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지만 아주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알라딘에서 진행한 북펀드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 20권 세트라 가격도 만만치 않았고, 그동안 몇 번 출간된 작품이라 수요 예측도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차에 <오민혁 단편선 화점>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알라딘 북펀드가 떠올랐어요. 알라딘은 만화 독자가 강세인데, 만화 MD 측에서 감사하게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셨어요. 선착순 한정 북펀드 굿즈는 ‘스와르다’ 패브릭 포스터와 ‘샤르휘나’ 틴케이스로 만들자고 협의했고요.


북펀드가 목표 금액을 훌쩍 넘겨 성공했습니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 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오픈 하루 만에 5천만 원을 돌파했어요. 그날 이후로 알라딘 북펀드 기록을 계속 경신했고요. 일반 판매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요. 지금까지 3쇄를 인쇄했는데, 무척 감사합니다.


전자책이 있는 상태에서 종이 책 복간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만화가 전자책, 앱북 등 디지털로 진화해도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감성은 영원할 것 같아요. 전산장치에 소장된 콘텐츠와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는 종이 책의 느낌은 확실히 다르죠. 펜과 잉크, 스크린톤만으로 완성한 핸드메이드 만화는 종이 책으로 볼 때 감흥이 더 크게 다가와요. 만화 독자라면 누구나 만화책에 얽힌 추억이 있고, 그 추억은 디지털이 아니라 책으로 존재한다 생각해요. 더욱이 레트로판으로 만든다면 그런 그리워하는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복간이 가장 의미 있는 지점은 독자들께 추억을 선물했다는 거예요. ‘독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이런 게 좋은 기획이구나.’ 하고 새삼 느꼈습니다.

이번 복간판에서 자랑하고 싶은, 공들인 부분이 무엇인지도 말씀해주세요.
아무래도 표지 디자인이에요. 표지 색상은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작품 해설을 써주신 박인하 교수님이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복간할 거면 무조건 주황색으로 가야 한다, 초판처럼 전 권을 주황색으로 통일하는 게 좋겠다.” 하고 제안하셨어요. 신일숙 작가님도 주옥같은 한마디를 던져주셨죠. 원래 표지는 빨간색이었다고. 알고 보니 대본소에서 여러 사람이 돌려 보다 색이 바래서 주황색이 된 거였어요. 그래서 4원색이 아닌, 별색으로 치명적인 붉은색을 구현했어요. 타이틀의 테두리도 홀로그램 금박으로 인쇄해서 더 고급스럽게 만들었고요. 인쇄소 사장님이 일반 금박보다 홀로그램 금박이 더 낫다며 강력히 추천하셨어요. 마치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이는 타이틀이 그렇게 완성됐어요. 20권 세트 박스도 금빛으로 완성했고요. 본문은 원작을 그대로 살리되, 교정 및 교열에 힘을 쏟았죠. 레트로판이 나오기까지 아주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어요. 모두가 함께 완성한 거나 마찬가지에요.


북펀드 페이지의 댓글창이 ‘감동적이다’,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반응으로 가득해요. 편집장으로서 이런 경험은 어떻게 다가왔나요?
신일숙 작가님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늘 우리를 놀라게 하고 감동을 주는 만화를 수십 편 만드셨잖아요. 모두가 한마음으로 신 작가님을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신 작가님은 <아르미안의 네 딸들>로 대본소 만화 시대를, <리니지>로 잡지 만화 시대를, <카야>로 웹툰 시대를 관통하고 계신 분이죠. 지금까지 새로운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는 건 작가님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이란 걸 알아요. 레트로판 기획으로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출간한 건 편집장으로서 크나큰 영광입니다. 저도 젊은 세대에 속하는 터라 이번에 명작의 품격을 제대로 알게 됐어요. 진심 어린 팬들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행복감도 느꼈고요.


1986년에 발간된 작품을, ‘처음 만난 그 느낌’으로 복간하는 의미와 함께 2021년에 만화를 보는 세대에 소개하는 의미도 클 것 같습니다.
역사가 없는 현실은 없죠. 지금은 웹툰 시대지만 <아르미안의 네 딸들> 같은 명작이 만화계의 토양을 튼튼하게 다져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한국 웹툰이 세계적인 문화 상품으로 자리 잡게 된 거고요. 언니가 빌려 온 만화책을 같이 읽던 소녀가 지금은 엄마가 되어 아이와 함께 읽을 수도 있죠. 어떤 독자는 엄마가 너무나 좋아하는 만화책이라 함께 읽으려고 구매했다고 해요. 명작은 영원하다고 하잖아요. 거북이북스에서는 1980년대에 출간되어 30여 개 언어로 번역된 독일 국민 동화 <꼬마 흡혈귀> 시리즈와 30년째 연재하고 있는 만화 <보노보노> 시리즈도 출간하고 있는데, 이번 순정 만화 복간 프로젝트로 다시금 명작의 힘을 확인했습니다. 명작들이 재조명되고 세대를 이어 읽힌다는 게 기쁩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살짝 귀띔해주세요.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출간할 때 이미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앞으로 레트로판 시리즈로 전설의 작품들을 하나씩 선보일 예정입니다. 작품을 다시 보며 행복했던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복간할 작품도 다들 인정할 만한 명작이라는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올해 안에 또 다른 명작으로 찾아올 거예요. 기대해주세요!


황소연
이미지제공 거북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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