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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2 컬쳐

미술관과 함께 아름답게 늙어가기

2021.01.20 | ON THE ROAD

내가 하는 일이란 영상을 촬영하거나 사진을 찍는 것이다. 업무를 위해 공부를 하다 보면 시각예술 전반을 두루 살피게 된다. 그래서인지 내 일과 장르가 달라도 시각예술의 원류인 미술에 많은 관심이 간다. 책에서만 보아오던 미술 작품을 직접 보러 가는 것이 여행의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문화란 상대적인 것이어서 우월하고 열등한 것이 따로 있지 않다. 저마다의 가치를 가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내가 단 하나 우러러보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서양의 미술관 문화다. 도시마다 중심가에 미술관을 여럿 두고 있는 건 우리도 매한가지이지만, 미술관과의 심리적인 거리는 사뭇 다르다. 학생들이 미술관 바닥에 둘러앉아 선생님과 묻고 답하는 걸 보다가 참여도와 열기가 매우 높아서 놀란 적이 여러 번이었다. 미술관을 제집 드나들 듯이 다닌 이력이 짐작되었다. 샤갈의 그림 앞에 드러누워 있는 아이에게 미술관은 놀이터와 다름없는 곳이었고, 그 아이가 컸을 때는 미술관을 사랑방쯤으로 여길 것이었다. 문턱이 낮은 미술관이 좋은 예술가와 수준 높은 관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었다. 유럽의 미술관은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번은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감상하는 노부부를 본 적이 있다. 두 분이 바싹 붙어 오디오 가이드 한 대를 귀에 대고 함께 설명을 들으며 감상하고 있었다. 두 분의 모습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 보였다. 노부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아름답게 늙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18세기 전후에 유럽에선 ‘그랜드 투어’라는 것이 유행이었다. 유럽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고대 로마의 유적지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작품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비행기나 철도가 없던 시절이어서 단숨에 이탈리아에 닿을 수 없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마차를 타고 여러 나라를 거치며 세계를 이해하는 시야를 넓히고 예술을 대하는 안목을 높이는 게 그랜드 투어였다. 일종의 학교였다. 막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상류층 자제들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가정교사와 하인을 대동하고 여행에 나섰다. 하지만 각종 교통수단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유명한 예술 작품을 만나는 일이 더 이상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도시마다 여행 가이드북을 펼치면 미술관을 중요하게 소개한다. ‘핵심 관광 코스’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그랜드 투어의 전통이 남아서일 것이다. 과거의 그랜드 투어는 일생의 어느 특정한 기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의 그랜드 투어는 일생에 걸쳐 조금씩 완성해나가야 하는 것이 되었다. 미술관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평생의 학교다.


·사진 박 로드리고 세희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촬영감독이다.
틈틈이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고 사람이 만든 풍경에 대해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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