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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8 컬쳐

동네에 로컬 맛집이 있다는 것

2020.11.09 | 나만의 디저트 아지트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온 것은 9년 전의 일이다. 동네에 대한 첫인상은 ‘정말 뭐가 없다.’였다. 강남이나 홍대 같은 번화가와 비교하자면 같은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한 주택가였고, 80년대 즈음의 서울이 이렇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게 될 만큼 시간이 멈춘 곳 같았다. 그래도 시장과 동네 마트, 편의점이 한 군데 정도는 있어서 생활 자체에 불편함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사실 ‘뭐가 없다’는 생각은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닌 그 외 부차적인 것들의 부재에 대한 감상에 가까웠다. 그리고 카페. 카페가 없었다.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조차도 이사를 온 뒤 1, 2년이 지나 생겼을 정도로 ‘뭐가 없었’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고 흐르니 이 허허벌판(?) 같던 동네에도 혼자 책을 읽거나 작업하러 가기 좋은 카페라든가 간단히 당 충전을 하기 좋은 디저트 카페가 하나둘 생겨났다. 그간의 뭐가 없던 세월을 떠올리면 이 정도만으로도 감개무량, 감지덕지였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가지고 보니 더 바라게 되더라.

누군가 이 외딴(?) 동네까지 일부러 놀러 와줬을 때 ‘여기 커피랑 디저트 다 맛있어!’ 하면서 내심 자신 있게 데려갈 수 있는, 타지에서 여행 온 친구에게 현지인들만 가는 ‘로컬 맛집’을 소개해주듯 데려갈 수 있는 그런 카페가 딱 하나만 더 생기면 좋겠다는 소박한듯 원대한 소망을 품게 된 것이다. 그러던 올해 초 어느 겨울날, 마치 늦은 새해 선물처럼 그렇게 이스트우드가 우리 동네로 찾아와주었다.

호주에 온 듯한 이 기분
호주 시드니의 ‘이스트우드’ 지역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까닭은 이스트우드의 팀원들이 호주 시드니에서 인연이 닿아 함께 가게를 이끌어나가고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이름뿐 아니라 가게의 분위기 또한 자연스레 호주를 연상케 하는데,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는 영업시간과 언제 가도 항상 유쾌하게 맞아주는 팀원들, 회색 시멘트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공간이 주는 다소 러프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분위기, 전면 창으로 드는 쨍한 햇살. 하늘이 파란 오후 나절에 들를 때면 잠시나마 호주 어딘가의 카페에 와 있는 듯하다.

‘아메리카노’가 아닌 숏블랙과 롱블랙의 ‘블랙’ 메뉴, 플랫화이트나 피콜로 마키아토 등 우유나 아이스크림이 들어가는 ‘화이트’ 메뉴로 구성된 다양한 베리에이션의 음료들은 고소하고 쌉쌀한 원두를 베이스로 한다. 하나같이 언제 마셔도, 누구와 와도 다들 좋아할 만한 맛들이다. 에스프레소 원두와는 다른 원두로 제조하는 콜드브루 또한 깔끔하면서 원두별로 캐릭터가 확실해 마시는 재미가 있다. 동네 카페에서 커피만 이 정도로 맛있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데, 이스트우드를 특히나 좋아하게 된 까닭은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디저트에 있었다. 밀푀유와 생토노레, 그리고 에클레어처럼 클래식하면서 본격적인 디저트를 내보이기 때문이었다. 커피와 디저트 모두 맛있는 카페를 바라기는 했지만 이렇게 제대로 된 쁘띠 갸또를 우리 동네에서 먹을 수 있게 될 줄이야. 역시 꿈은 일단 꾸기라도 해야 이루어지나 보다.

한입에 먹어야 하는 디저트
이스트우드의 디저트는 클래식한 카테고리의 디저트라 할지라도 분명하게 이스트우드만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밀푀유는 얇고 파삭한 푀이타쥬(파이지) 사이에 바닐라빈 특유의 화사한 향이 느껴지는 크렘 파티시에와 달콤한 화이트 초콜릿 크림이 함께 들어가는데, 언뜻 보면 그 맛이 다소 묵직할 것 같지만 막상 먹어보면 모든 레이어가 입안에서 한없이 부드럽게 녹아내려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맛이다.

에클레어는 솔트 캐러멜과 캐러멜 크림으로 채워진 슈 위에 고소하고 달콤한 프랄린, 허니콤이 얹어져 있는데 ‘달고나’와 비슷한 맛이면서도 벌집 모양을 닮은 공기층이 눅눅하지 않고 바삭한 식감을 주는 이 허니콤이 ‘킥’이다. 허니콤의 단맛이 에클레어의 캐러멜 풍미를 한층 더 강조해주면서 식감적으로도 포인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허니콤까지 함께 모든 레이어를 한번에 먹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바삭바삭, 경쾌하고 달콤한 맛을 온전히 느낄 수가 있다.

‘생토노레’는 대개 둥근 왕관의 실루엣을 연상케 하는 형태인데, 이에 다소 변형을 주어 네모반듯한 푀이타쥬 사이에 슈를 쌓고 다시 바닐라 크림을 가지런히 얹은 뒤, 마지막으로 그 위를 슈와 바닐라빈 껍질로 장식했다. 넉넉한 모양만큼이나 맛 또한 풍부해서 한 입, 한 입이 모두 만족스럽다. 그 밖에 제철 과일을 이용한 타르트나 레몬 타르트, 티라미수 타르트 등 계절감에 맞춰 나오는 디저트들도 있다. 최근에 나온 티라미수 타르트도 익숙한 듯 각별한 맛이라, 동네에 놀러 오는 지인들에게 맛보여줄 때면 항상 반응이 좋아 괜히 나까지 뿌듯해지고는 한다. 아무리 케이크가 맛있더라도 항상 케이크를 먹을 순 없는 노릇인데, 이스트우드는 커피에 간단히 곁들일 만한 쿠키나 까눌레, 휘낭시에, 파운드, 마들렌 등의 구움 과자도 무척 맛이 좋다. 특히 바삭하면서도 속은 은근히 촉촉한 데다 초코칩과 바나나칩이 넉넉히 박혀 있는 르뱅쿠키는 도무지 손을 멈출 수 없는 맛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 디저트가 없지만 말이다. 언제든 집에서 사뿐사뿐 갈 수 있는 거리에 좋은 카페가 있는 것만큼 일상의 질을 소소하게, 그러나 꾸준히 올려주는 것도 흔치 않다는 것을 이스트우드 덕에 새삼스레 체감하는 요즘이다. 저마다의 동네마다 저마다의 이스트우드가 생긴다면 좋겠다. 이 일상에 스며드는 잔잔한 즐거움은 나만 알기엔 아까우니까.

이스트우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도신로17길 6
월~일 9:00~22:00
인스타그램 @cafe.eastwood


·사진 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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