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순간이 찾아올 때 마치 영화 같다고 하잖아요. 사람들은 비유를 할 때 무의식적으로 그 대척점에 있는 무언가를 설명하곤 합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 사진 같다고 하고, 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고 하는 것처럼요. 영화가 삶의 거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영화책방 35mm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그 경계가 모호한 느낌이 들었어요. 책방이라는 배경에서 이제 엔딩 크레디트를 바라보는 책방 주인 이미화 작가를 만나봤습니다. 이다음엔 어떤 영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다소 어두운 이야기지만 책방 문을 닫게 된 사연을 듣고 싶어요.
어둡지 않아요(웃음). 망해서 닫는 게 아니어서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있어요. 지난 2년 동안 많은 시도와 실패를 했어요. 책방을 운영하면서 아쉬웠던 점 중 하나가 바로 위치였는데요. 주택가에 덩그러니 있어서 그런지 손님들이 방문하기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이곳에서는 당분간 프라이빗 영화관 ‘옷장영화관’만 운영하고 망원동에 새로운 작업실 겸 책방을 열 계획이에요.
처음 책방을 열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나세요?
책과 영화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책방이 멀어도 손님들이 찾아올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망원동처럼 비슷한 업종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이곳에서 운영을 안 했으면 그런 배움도 없었을 거예요.
책방은 어떻게 열게 됐는지 궁금해요.
만화책방, 비디오 대여점 같은 아지트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그러다 제 책을 내고 우연히 출판사가 운영하는 책방에서 알바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아무래도 작가들은 인세만으로는 수입이 부족하니까요. 그때 책방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게 됐죠. 또 책이 얼마나 돈이 안 되는지도요. 오히려 그런 어려운 현실을 알고 나니 부담 없이 책방을 열 수 있었어요.
책방에서 가장 애착이 갔던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북포레스트’라고 서울숲에서 책 읽는 모임인데요. 캠핑 분위기에서 티타임을 즐기며 함께 책을 읽는 프로그램이에요. 참가자는 책만 챙겨 오면 됐어요. 숲속의 다양한 사람들 틈에서 책을 읽는 경험이 좋았어요. 그곳에서 음악 축제가 열리면 멀리서 음악을 들을 수 있고요.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던 프로그램이었어요.
가장 많이 판매한 책이 궁금해요.
제 책을 가장 많이 팔았어요(웃음). 제목은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인데요. 영화 촬영지에서 제가 직접 담은 사진과 글을 엮은 책이에요. 대표적인 로맨스 영화인 ‘비포 시리즈’를 비롯해 <원스>, <미드나잇 인 파리>, <노팅힐>같이 도시의 매력을 담은 영화들의 이야기를 기록했어요. 아무래도 제 책이라서 인세도 받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됐어요.
작가님께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요?
자영업 하기 힘든 도시요. 최근 동인천에 가보니 주인들의 특색이 담긴 작은 카페들이 많더라고요. 그게 가능한 이유는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은 아무래도 수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잖아요. 저희 책방이 문을 닫는 이유 중 하나도 임대료 때문이고요. 요즘 모두가 힘들지만 제게 서울은 독립책방이 살아남기 힘든 곳인 것 같아요.

책방에 있으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인지 궁금해요.
책방의 존재 자체가 저한테는 행복이었어요. 제가 만든 공간에 언제든 돌아올 수 있어서요. 아무리 늦은 시간일지라도 혼자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했어요.
공간과 사람이 닮아간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개인적으로 세련된 것보다 촌스러운 것을 좋아해요. 가구도 새것보다 닳은 것들이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좋아하는 소품들로 꾸며놓다 보니 자연스레 저를 닮아가는 것 같아요. 친한 친구들이 책방에 놀러 와서 ‘여기 딱 이미화 같다.’고 말할 때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요즘 마음에 머무는 영화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1998년 개봉한 영화 <유브 갓 메일>이요. 작은 동화 책방을 운영하는 여자의 아름다운 실패를 그린 영화예요. 바로 앞에 대형 책방이 들어와서 문을 닫는 내용인데요. 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지라 결국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긴 하지만요. 대형 책방 앞에서 주인공은 어떻게든 버티려고 노력하지만 실패로 끝나요. 그 과정에서 누군가 그녀에게 정말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는 이야기를 해줘요. 당장은 실패처럼 느껴지겠지만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라고요. 무언가를 끝낼 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는 그 말이 제게 큰 힘이 되었어요.
책방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변한 건 무엇인가요?
상대방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잖아요. 자영업을 하면서 예전에 손님이었을 때는 몰랐던 걸 알게 됐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현실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 꿈이나 낭만으로는 삶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도요. 멋진 공간의 주인이 겉으로는 행복해 보여도 속은 문드러질 수 있겠더라고요.
대신 손님들의 낭만을 먹고 사는 느낌이 들 때도 있을 것 같아요.
퇴근하고 오시거나 귀한 주말을 잘 보내기 위해 책방에 오시잖아요. 그 시간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어요. 모임을 운영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영화책방 35mm에 낭만을 가지고 오신만큼 잘 누리시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책방 인스타그램을 보면 단지 책만 파는 게 아니더라고요.
영화를 많이 소개하고 싶었어요. 특히 영화 장면이나 대사를 활용했어요. 힘든 이야기도 대놓고 드러내기보다는 그걸 영화로 풀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페이소스를 영화 대사로 쓴 거죠. 영화 책방 주인은 영화로 말하는 게 멋지잖아요. 책방 문을 닫을 때도 영화 <유브 갓 메일>의 장면과 대사를 활용했어요. “이번 주에 내 가게가 문을 닫아요. 아름다운 가게죠.”
작가님이 생각하는 해피엔딩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주인공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해피엔딩은 아닌 것 같아요. 주인공의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게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요. 책방의 시작과 끝의 모든 과정이 하나의 영화처럼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만약 책방의 엔딩 크레디트를 만든다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책방의 시작과 끝을 같이한 남자 친구요. 이곳이 원래 12년 동안 방치된 창고였어요. 페인트칠부터 전기와 수도, 바닥 공사까지 둘이서 직접 했어요. 돈을 쓰는 방법도 몰랐어요.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마무리를 함께 잘 하게 되어 고마워요. 그리고 평소에 친구들이 정말 많이 응원해줬어요. 엑스트라는 제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카메오는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의 최지웅 실장님인데요. 책방을 방문하시고 포스팅 해주셨을 때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많이 늘었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실 영화책방 35mm는 주연인 저의 원맨쇼였던 것 같아요(웃음).
손님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공간을 응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곳에서 돈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라지지 않도록 자주 가주셨으면 해요. 특히 작은 책방이라면 책을 많이 사주시기를 바라요. 주인이 큐레이션 해놓은 책들은 그 값어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신간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를 내고 다양한 홍보를 하고 있어요. 제가 위로를 주고받는 걸 잘 못 하는데요. 위로가 필요한 순간마다 영화를 봤어요. 제가 영화를 통해 받았던 위로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27편의 영화 글이 담겨 있습니다.
미래에서 영화책방 35mm 기억을 떠올린다면요.
책방 문을 닫으면서도 힘들다는 내색을 안 했어요. 평소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넌 하고 싶은 거 하잖아.’라는 말이에요. 맞는 말이에요. 하고 싶은 거 하니까 힘들어도 참을 수 있더라고요. 내 일이니까 참을 수 있었어요. 내 안에 뭔가 쌓이는 게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글 정규환
사진 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