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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1 스페셜

포스트 코로나의 조건

2020.07.28 | '홈리스행동' 활동가 형진

전염병의 전 지구적 유행 안에서, 홈리스들은 기존보다 더 열악한 상황을 겪고 있다. 다만 홈리스가 일할공공일자리의 부족함과, 취약한 주거환경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존재했던 문제다. ‘홈리스행동’ 활동가 형진은 홈리스의 어려움이 바이러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진단은 ‘착시’임을 분명히 짚었다.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할 ‘집’은, 거리 홈리스와 쪽방, 고시원에 거주하는 주거취약계층에게 어떤 의미일까. 형진에게 코로나19와 홈리스, 공생의 조건을 물었다.

서울시가 최근 ‘노숙인 공공일자리 축소개편안’을 철회했다. 공공예산 축소 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이들이 주거취약계층임을 여실히 드러낸 개편안이었다.

홈리스들이 현재 참여할 수 있는 서울시 공공일자리는 크게 반일제일자리, 전일제일자리 두 가지로 나뉜다. 지난 5월 말, 서울시가 홈리스 시설에 공문을 보내 축소개편안을 알렸다. 반일제일자리의 노동시간 5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는 것이 내용이었다. 이렇게 되면 평균임금이 48만 원~64만 원 선으로 줄어드는데, 국가가 정한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일제일자리는 신용불량 상태이거나 주거불명등록자 등 노동 능력이 미약한 홈리스들이 참여 가능한 유일한 일자리다. 이후 서울시인권위에서는 개편안 철회와 더불어, 공공일자리를 늘리라는 권고를 냈고, 지난 6월 30일 서울시의 축소개편안은 철회된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세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홈리스 사이에서 팽배했을 것 같다.
거리 홈리스뿐 아니라 쪽방, 고시원에 사시는 분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질이 낮은 저임금 일을 하고 있다. 보통 때라면 한 달에 20일 정도 건설 일용직을 나갔는데, 올해 들어선 한 달에 하루도 일을 못 나갔다는 분도 계신다. 공공일자리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료급식소도 문을 닫고, 거리에서 지내는것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들의 하루는 바이러스로부터 충분히 안전한지 궁금하다.
‘노숙인 시설’ 차원에서 거리 홈리스들에게 마스크나 손 소독제 등을 나눠준다고 알고 있다. 홈리스행동에선 매주 고정적으로 ‘홈리스 인권지킴이’ 활동을 통해 거리 홈리스들을 만난다. 거리는 생활하기 굉장히 어려운 동시에, 권리침해가 발생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용산역의 홈리스 밀집 지역에서 만난 어떤 분은 한 개의 마스크를 일주일 내내 사용하고 있었다. 더 심각한 건, 홈리스를 괴롭히거나 지내고 있는 공간에서 강제로 내쫓는 상황이 늘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22일, 서울 중구청에서 갑자기 서울역에 놓인 홈리스들의 물건을 한꺼번에 치워버린 일이 있었다. 용달차로 말 그대로 쓸어버린 거다. 물건들은 쓰레기가 아니라, 홈리스의 살림살이다. ‘홈리스는 그렇게 대해도 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행동이었다고 본다. 서울시에서는 홈리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늘 이야기하는데, 상황의 원인은 열악한 복지 체계다.

홈리스들에겐 긴급재난지원금 신청 및 수령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홈리스행동을 포함해, 거리 홈리스 아웃리치와 상담 활동을 하는 단체가 함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한 이들은 조사대상 100여 명 중 10% 정도였다. 홈리스들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어디서 어떻게 신청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소는 지방인데 서울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경우 신청이 어려웠다는 문제도 있다. 사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방세다. 하루라도 여관이나 쪽방에서 지내길 바라는 분들이 있는데, 현금 지급이 안 되지 않나.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생계급여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이유는 용처가 제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홈리스 밀집 지역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의 존재를 알린 결과, 일단 수령이 가능한 분들은 편의점 등에서 식사 등을 해결하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알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방역 수칙은 홈리스를 포함한 주거취약계층이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방역 수칙과 현실의 괴리가 느껴지진 않는지.
‘거리를 둔다는 건 자신의 공간을 갖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에선가 봤다. 가족 내에서 거리두기를 못 하는 분들이 계실 수 있고, 물리적으로 거리두기가 어려운 분들도 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방침을 지키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고시원, 쪽방에 거주하는 이들이 몇 십만 가구인 것은 예전부터 존재했던 사실이기에, 주거권이 침해된 상황의 책임을 코로나19에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거상향을 위해 공공주택을 늘리는 것 외에 어떤 것이 가능할까.
‘집다운 집’이 생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현재 시행되는 정책만으로 주거취약계층의 주거 상향을 꾀하기엔 무리가 있는 듯하다. 집에서 지내기 힘들어서 밖에서 주무시는 경우도 있다. 여성 홈리스의 경우, 외부 침입 걱정 때문에 더워도 문을 다 닫고 자는 분들도 많다. 지난 2월에 거리 노숙도 처음이고 고시원 거주도 처음인 분을 만났는데, 어느 날 본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열은 안 나고 기침이 계속 난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이유를 찾았다. 저녁에 자다가 무언가를 찾느라 플래시를 켰는데, 불빛이 올라가는 줄기에서 엄청난 먼지를 보신 거다. 그분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도 고시원 입주민들이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다니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방이 너무 좁아 먼지가 많고, 환기가 되지 않아서 그랬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셨다. 쪽방이나 고시원이 열악하고 위험하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그곳에 거주한 것이 아니지 않나.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 이후, 노후 고시원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확대된 정도다. 안전 조치뿐 아니라 주거시설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홈리스의 ‘공생’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포스트 코로나’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인권’은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홈리스들의 권리침해 상황은 계속 있어왔는데, 그게 왜 문제인지 성찰하려는 노력이 공공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진 않다.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의 권리를 어떻게 복원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황소연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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