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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9 인터뷰

9천 개의 테이프 속 한순간

2020.07.07 | 1944년 일본군 ‘위안부’ 영상 발굴한 제작진

지난 5월 28일, KBS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자료 가운데서 제2차 세계대전 시 구출된 일본군 ‘위안부’ 영상을 보도했다. 1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영상에서 연합군에 구출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고박영심 할머니는 두 팔을 들고 ‘만세’를 외친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할머니의 입모양을 유심히 관찰한 제작진에 의해 영상은 사료로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됐다. 교과서 등에 실린 사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만삭의 위안부’ 박영심이 자유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한국전쟁과 관련한 기획을 진행하던 김형석 KBS <다큐 인사이트> PD와 김정아 영상 리서처는 폭탄이 비 오듯 떨어지는, 9천여 개의 테이프 속 전쟁의 참상에서 이번 영상을 찾아냈다. 이들은 영상 사료가 주는 특별한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된 ‘만삭의 위안부’ 영상은 역사적으로도, 방송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으로서 갖는 의미도 클 것 같다.
김형석
1990년 정도부터 한국현대사 관련 프로그램이 있어왔다.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이 만들어졌고, 8·15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있었다. 사실 해방 전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에서 ‘촬영’이라는 행위 자체가 귀했던 상황이라 더 의미가 깊다.
김정아 여러 전쟁 관련 영상을 보다가 발견한 장면이다. 박영심 할머니가 정확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만세”를 부르는 게 맞는지 여러 번 돌려보았다. 처음엔 ‘이게 뭐지?’ 하는 느낌이었다.

공개된 영상의 역사적 의미를 좀 더 설명한다면.
김정아 역사왜곡 공세는 강해지는데, 우리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의 증언 외에는 증거를 찾기 어려운 상태지 않나. 이번 영상을 통해 피해자가 더 있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번 영상은 전투 현장에 피해자들이 있었고, 그것이 군에 의한 조직적인 범죄였음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할머니가 ‘만세’를 외치는 모습은 강제로 붙잡혀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상세한 기록이나 목록이 없는 상태에서 관련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정아 2017년에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에서 최초로 발견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영상은 ‘차이니즈 걸스’라고 그나마 정보가 실마리처럼 나와 있었다. 이번 영상은 그런 색인 자체가 없었다.
김형석 수천 개의 자료를 계속 보는 일이 정말 힘든 작업이다. 의미 있는 영상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영상도 많다. 또 공개된 것보다 더욱 참혹한 영상도 많다. 90년대에도 영상 발굴 작업이 있었는데, 산발적으로는 자료가 있었지만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방문해 방대한 양의 자료를 복사해 오게 되었다.

한국의 역사를 담은 영상, 사진 자료를 이렇게 찾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김형석 1945년 즈음에는 한국이 영상 자료를 찍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주로 미군에서 찍은 영상이었기에 한국보다는 미국에 그런 영상이 많이 소장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크게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있지만, 트루먼 기념 도서관, 맥아더 기념관 등 자료가 미국 곳곳에 퍼져 있다. 다만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다. 어마어마하게 큰 창고에 무더기로 자료가 있고, 필요한 사람이 찾아야 하는 시스템이다. 사실 이번에 공개된 영상도 번호와 내용만 알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홈페이지에서 다운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정확히 어떤 영상인지 모르기에, 알아서 찾아보는 과정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영상보다는 사진과 문서 위주로 역사 자료를 찾는데, KBS는 1990년대에 선도적으로 영상 발굴 작업을 했었다. 이번에 조사해보고 싶었던 곳은, 미군 육군 역사관(CMH,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이었다. 이곳에 영상이 있을지 확실치는 않지만, 학자들은 자료가 많을 거라고 하더라.

발굴 과정에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김형석 영상 길이를 10분 정도로 잡아서 대략적으로 1500시간 분량이지만, 사실 60분짜리 등 더 긴 테이프도 많았다. 자료 중 일부는 필름으로 존재하는데, 일일이 릴에 돌려서 조회해야 한다. 비공개된 양은 가늠하기 어렵다. 학자들이 문서를 찾다가, ‘영상이 있지 않을까?’ 싶어 정보공개 청구를 해야만 영상이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해방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김형석 한국전쟁은 이 땅에서 발생한, 역사상 가장 글로벌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역사는 지금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90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은 전쟁의 발발과 그 이전 전체를 조감한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글로벌한 시각에서 이 사건을 조명하고 싶다.

영상 기록이 앞으로 ‘사료’로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까.
김정아 지금까지의 역사 기록은 주로 신문 등 글로 된 것이었다. 이제는 영상을 통해 역사를 기록할 필요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 들어서 영상역사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영상이 주는 힘이 있지 않나. 세월호 참사 때 국민들이 가슴이 아팠던 건 우리가 그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조선인 ‘위안부’들의 모습도 글을 통한 뉴스였다면 이렇게 시청자들이 감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혹한 현장을 눈으로 봤기에 공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 혹은 학자들과 협업할 수 있는 지점이나 사료 발굴의 범위가 있을까.
김정아 국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의 자료 역시 문서 위주다. 영상을 통한 역사기록은 어떻게 보면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경우 해방기의 영화 영상 등을 수집하고 있는데, 최초의 사료로서 의미가 있는 자료 발굴은 국가가 주도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이 영상이 어떻게 활용될 것이라고 보는지.
김형석 영상에 저작권 문제도 없으니 교육 현장이나 시민단체 등, 민간에서 다양하게 활용했으면 좋겠다.KBS 내부에 공익적인 콘텐츠가 많은데, 시청자에게 공개해서 시민들이 많이 접하고 활용했으면 한다. 이번 영상 공개가 그 시작이다.

<한국전쟁 70년> 기획 다큐멘터리는 언제쯤 시청자들이 만나볼 수 있을까. 대략적인 규모나 어떤 방식으로 제작될지 이야기해준다면.
김형석 7월 27일, 정전협정일에 방영될 예정이다. 발발보다는 정전이라는 지점을 주요하게 보고자 한다. 아직 평화체제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 않나. 발발이라는 사건도 중요하지만 전쟁을 제대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작자로서 더 발굴하거나 조명하고 싶은 주제가 있나.
김정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미군 등에서 찍은 영상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 KBS에만 있는 <전진조선보>, <전진대한보>라는 ‘뉴스 영화’가 있다. 미군정에서 한국정부 수립으로 이행되는 시기, 런던올림픽 출전을 위해 선수들이 1948년 5월쯤 출국을 하는데, 그때는 ‘조선인민’이다. 그리고 8월 이후 돌아올 때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입국한다. 그런 영상을 보면 분단의 아픔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정아 박영심 할머니가 등장한 영상을 찾는 작업이 단발로 우연히 이루어진 건 아니다. 영상 자료의 중요성을 인지한 제작진, 특파원들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 영상기록물을 국가 차원에서, 방송사와 함께 협업해 긴 호흡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본다.
김형석 장기적으로 이런 콘텐츠에 시청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고, 관심 있는 제작진이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인터뷰이의 원문 그대로 '일본군 성노예제' 표현 대신 '위안부'로 표기하여 매거진에 실었습니다.


황소연
사진제공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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