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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7 에세이

부모가 되고 싶진 않지만 아이는 너무 예뻐

2020.06.02 | 영켱 에세이

연애는 좋지만 결혼은 싫었다
아이 이야기 전에 이 이야기부터 해야지. 초딩 시절, 종종 드라마에는 ‘독신주의(그때는 비혼이 아니라 독신이라고 했다)’를 주장하는 깐깐한 도시 여성이 나오곤 했다. 물론 종국에 그녀들은 ‘말괄량이 길들이기st.’의 극적 기법에 따라 요상한 연애/결혼 수순을 밟으며 끝났지만, 어쨌든 어린 내 눈에 그녀들은 너무나 멋지고 신선했다. 오빠 있는 집의 그릇된 특성을 따라, 집에서 ‘기집애가’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인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기에 더욱 그랬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조금만 풀어지면 넌 다 포기하고 ‘취집’할 거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으니, ‘결혼’이라는 단어가 내게 긍정적으로 느껴질 리 만무했다. 가장 빨리 결혼한 친구는 스물여덟에 결혼했다. 내 소중한 친구가 결혼이라는 어렵고 힘든 어른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내내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친구가 결혼한 그해에 ‘(구)남친(현)남편’을 만났고, 4년 후 내가 먼저 프러포즈를 해서 결혼하게 됐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다.

노키즈존을 좋아했던 나
외가, 친가를 다 통틀어 가장 막내였던 나는 ‘아가’나 ‘동생’을 볼 기회가 잘 없었다. 아기를 예뻐하는 어른들을 보면 질투가 났고, 말도 안 통하고 시끄러운 저 애들이 뭐가 예쁜지 오래도록 잘 몰랐다. 최근까지도 사실 그랬다. 물론 이제 ‘질투’는 나지 않지만(!) 아이들의 돌고래 비명 소리를 들으면 몸서리가 쳐졌다. 카페에서는 내게 달려와 부딪힐까 봐 무서웠고, 내게 말을 걸면 무어라 답을 해줘야 할지 멍해져 아이와 아이의 부모님을 당황하게 한 적도 있다. 가장 아이를 피했던 건 비행기 안에서였다. 아이 울음소리나 칭얼대는 소리가 들리면 허겁지겁 이어폰을 끼어 귀를 막았다. 그곳이 어른도 참기 힘든 비행기 안이라는 것과 더 당황해하는 부모의 표정까지 이해할 깜냥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노키즈존이라는 팻말을 보면 먼저 마음이 편해졌고, 알 수 없는 우월감에 차기도 했던 것 같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런 옹졸하고 부족한 인간이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첫째 이유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였다.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 때문에 내 몸이 아프고 괴롭고, 또 내 삶이 영향받는 일이 달가울 리 없었다. 그래서 남편과 결혼하며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합의하고 여러 번 다짐을 받았다.

호르몬의 장난일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근 나는 아이가 너무 예뻐 죽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빠! 어디가?>나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활개를 치던 시절에도 딱히 동하지 않던 마음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에서 저자 사카이 준코는 이것을 호르몬의 영향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사실 나도 내 이런 증상을 종족 보존을 위한 인간의 유전적 본능이 아닐까 진심으로 고민해봤다. 그 결과, 나는 호르몬에 대해 딱히 아는 게 없어서 이 이유를 갖다 붙이기엔 양심에 찔려 그만뒀다. 대신에 나름의 이유로 고민해보건대 이것은 아마 내 영역이 조금 더 확장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친한 친구들도 아이를 낳고, 조카도 생겼다. 동떨어져 있던 ‘아이’라는 생명체가 내 관계 안으로 들어왔다. 사실 ‘감수성’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게 아니던가? 타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 아마 나는 느즈막히 아이에 대한 감수성이 생긴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이 얼마나 새롭고 신비로운지, 그들을 어떻게 지키고 싶고, 어떻게 웃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 이제야 알게 됐고 이해하게 됐다.

사랑해서 낳지 않기로 했다
내 모자란 상식과 생각을 또 고백하자면, 나는 ‘부모’에 대해 몰이해와 몰지각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왜 낳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왜 낳지 않기로 했는가.’보다 적게 듣지 않느냐며 실없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사랑하니까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번거롭지만 결혼도 했다면, 사랑하니까 만나고 싶어서 낳아
노력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나는 또 내 일이 아니라고 이해하지 못했다. 힘들고 포기하는 것도 많겠지만 아이와 행복하게 사랑하며 사는 친구들을 보면 참 예쁘고 좋아 보인다. 가끔 남편과 우리가 아이가 있었더라도 행복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사람 일 어찌 될지 모르듯 나도 언젠가 아이 있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훌륭한 주 양육자가 될 자신은 없어서 낳지 않겠다는 결심은 내게 유효하다. 우울의 기복이 심하고, 체력도 약한 내가 부모, 특히 ‘엄마’가 되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너무 예뻐 어떨까 상상해보다가도, 먹고 있던 약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프고 어지러워 고양이 화장실 치워주는 것도 너무 버겁던 어느 날들을 기억하면 그 상상은 곧바로 무너진다. 사실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을 견디고서라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조카를 예뻐하는 정도에서만 끝날 마음인 건지도 모르고. 정답이 없는 이야기를 길게 해서 마무리도 길어졌다. 이 원고가 실릴 때면, 어린이날도 이미 지난 후겠지만 어쨌든 아가는 사랑이다.


영켱(팜므팥알)
독립출판물 <9여친 1집>, <9여친 2집>을 제작했고,
단행본 <연애의 민낯>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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