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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4 에세이

할머니는 동백 씨를 줍는다

2020.04.17 | 제주4·3사건 72주기를 기리며

나의 직업은 제주의 할망(‘할머니’의 제주어)들을 만나는 일이다. 왜 만나느냐고 물으면 여러 까닭이 있지만 한마디로 답하면 ‘좋아서’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 좋고, 무엇보다 나를 반겨주시니 좋다. 아무 마을 아무 길 위에서 아무 말이나 하면서 아무 할머님이나 만난다. 빨래를 걷다가 눈이 맞거나,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다가 혹은 길을 묻다가 만난다. 그럼에도 생판 모르는 나에게 커피를 타 주실 때가 많다. ‘심심했는데 잘됐다.’며 들려주시는 이런저런 이야기에 달콤한 즉석커피. 그 신비로운 조화에 중독되어 할망을 만나러 다닌지 벌써 8년째다.

혼자 듣기 아까운 이야기들을 조금씩 세상과 나누는 동안 ‘제주 할망 전문 인터뷰어’라는 기이한 직업이 생겼다. 몇 해 전부터는 지역방송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의 리포터로도 일한다. 그러자 새로운 별명이 하나 생겼다. 새처럼 짹짹거리며 이 집 저 집 날아다닌다고 시청자들이 나를 ‘조잘조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조잘조잘, 그것은 내가 내는 소리 같지만, 사실 할머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적에 모두에게서 나는 소리다. 함께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우리는 재잘재잘 노래하는 새처럼 잠시 만나고 쿨하게 헤어진다.

“살당보난 살아져라”
대화는 언제나 유쾌하게 시작되어 여운을 남긴다. 이따금 내게 노인과 대화하는 비법을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요령은 간단하다. 일단, 할머님 곁에 앉는다. 그러고는 내어주신 커피를 맛있게 받아먹는다. 즉석커피를 넣고 거기에 설탕을 두세 스푼 더 얹는 바람에 이가 녹을 듯 달아도 말이다. 여기서 애써 무언가를 묻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순간 하고 싶은 만큼의 이야기를 하시도록 그냥 둔다. 8~90년을 살아온 할머님께서 당신 삶을 남에게 전하는 방식이란 매우 시적이기 때문에, 일단 말문이 열리면 그저 고맙게 들으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만일 이야기가 점점 슬프고 고통스러워지더라도 함부로 할머니를 불쌍히 여기거나 공감하는 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 아프고 불편한 마음은 그대로 가지고 집에 온다. 왜 그럴까 생각하며 때로는 책도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나는 배웠다. 몸소 겪지 않으면 모를 일들은 대부분 겪지 않는 것이 나은 것들인데, 그들이 살아온 시대에는 그런 일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가 그랬고 제주4·3이 그랬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노인의 대부분이 어렸거나 젊었을 적에, 그들을 아끼고 보듬어야 할 국가의 어른들이 제 할 일을 하기는커녕 광기 어린 폭력으로 사람들을 상처 입혔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온갖 비극을 다 겪으며 살아온 할머님들은 그 고난의 길을 딱 여덟 자로 줄여 말한다. “살당보난 살아져라(살다보니 살아지더라).” 그리고 사이사이에 ‘허이고, 기여(그렇지)…’ 하는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바짝 말라버린 시간에 공기를 불어넣은 다음, 아프게 한 번 가슴을 ‘툭’ 쳐야만 나오는 말들이다. 특히 제주4·3사건에 관련된 이야기가 그렇다. 아무도 그것을 ‘추억’이라 부르지 않는다. 일흔 해가 더 지나도 제주4·3사건은 아물지 않는 상처이자 처방약을 찾지 못한 질병처럼 섬을 떠돌기 때문이다. 한숨으로 시작하는 할머님들의 이날에 대한 기억은, 문득 떠오르는 첫 구절만으로도 아프다. 늘 그렇다.

“허이고, 기여… 바로 내 눈앞에서 그랬어…”, “오빠는 그저 머리가 좋았을 뿐인데…”, “신접살림 차린 지 한 달 만에 남편이 총 맞고…”, “내가 아무리 어렸어도 기억이 다나…”, “폭도가 뭔지 알지도 못하는데…”, “그때 차라리 죽었으면…”, “왜놈들도 그러지는 않았어…”, “옆집 할머닌 죽창으로 다섯 번을 찔렸는데…”, “임신한 사람 배를 발로…”, “모질게 추운 겨울이었어…”, “아이들도 성담을 쌓고 보초를 섰지…”, “아기들이 영양실조로 죽고… 우리 집이 불타는 걸 봤어…”, “엄마 시체도 못 찾았고…”, “해방이 되면 좋을 줄 알았는데…”, “검은 개는 경찰, 노란 개는 군인…”, “여기 바로 이 자리에서 총으로 다 죽였어…”, “죄 없는 날 감옥에 가두고는…”, “같은 마을 사람이 아버질 죽였어…”, “폭도 자식이라며 취직도 못 하고 아버질 미워했어…”, “그때 두들겨 맞아서 불구가 되었어…”, “목숨이 붙어 있으니 산 것뿐…” …그래도, 살당보난 살아져라.

동백꽃보다 동백 씨가 좋은 할망들
제주4·3사건(1948~54)은 당시 30만 명이던 도민 인구의 10분의 1을 휩쓸어갔다. 그 시절을 겪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이 내가 만나는 제주의 노인이다. 저마다의 기억들은 섬을 가라앉게 하고도 남을 만큼 무거운 것이지만, 할머니는 매년 동백 씨를 줍는다. 제주4·3사건을 기억하는 의미로 동백꽃 배지를 다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꽃이 아닌 씨를 해마다 줍는다. “허허, 이게 다 돈이야!” 하시며 하나하나 모은 동백 씨를 방앗간에 가져가면, 그 좋다는 동백기름이 된다. 집 떠난 자식 손주들 밥상에 올릴 할머니의 동백꽃 사랑이다. 힘들었던 시간이야 흘러버린 지금, 대부분의 시간 그들은 조용히 지내도 제법 유쾌하고, 외로워 보여도 혼자는 아니다.

그러니 노인은 ‘문제’가 아니라 ‘해답’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흩어지더라도그것을 하나부터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 내가 ‘인간력’이라 부르는 그 힘이 그들에겐 있다. 갑작스레 몰아친 코로나19가 세상을 무너뜨리고 있는 요즘,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무너졌던 섬을 고사리손으로 정성껏 되살려 낸 한 분 한 분의 할머님들이 더없이 소중한 이유다. 그런 그들에게 한없는 존경을 표하며, 마지막으로 최근 백 번째 생신을 맞은 한 위대하신 할머님의 말씀을 전하며, 나의 ‘조잘조잘’을 마친다.

“할머니는 살면서 미운 사람 없었어요?”
“왜 없어. 부모 자식, 이웃도 나라도 미울 때가 있었지.”
“그럴 땐 어떻게 하셨는데요?”
“그냥 참아.”
“하이고, 어떻게 참고만 살아요?”
“허허, 그게 힘이 들지. 그런데, 그 마음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 못된 말을 들었다고 못된 말로 돌리지 말고. 미운 사람에게 밉단 말 말고. 꾹 참아서 가슴에 쌓으면, 언젠간 그것이 꼭 복이 되어 돌아와. 만일 나에게 안 돌아오지? 그럼 후세에게라도 돌아오는 거. 그리고 하루에 한 번 가만히 눈 감고 기도를 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기도.”


정신지
<할망은 희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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