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사랑의 고고학〉 배우 옥자연 (1)'에서 이어집니다.

배우 옥자연
그래서 요가 하는 장면이 더 현실감이 있었나 봐요. 특히 영실이 ‘송장 자세’를 할 때가 좋았어요.
그러니까 이런 게 너무 좋은 거예요. 다른 영화였다면 등장인물이 요가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동작을 하는지를 찍을 텐데 대본에 ‘누워 있다.’ 이렇게만 되어 있어요.(웃음)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사랑의 고고학>으로 배우님이 발견한 내면의 새로운 모습이 있다면요?
새로운 모습이라기보다, 저도 모르게 인식에게 화가 나더라고요. 대본 분석을 거쳐서 영실이 화를 내진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영실은 모든 상황을 자기 식대로 받아들이고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거든요. 내가 이런 상황에 대한 좀 분노가 있구나, 몇 번 깨달았어요. 그래서 정신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죠. 난 옥자연이 아니다, 하면서.(웃음) 영화에서 영실이 인식한테 화를 내는 장면이 있는데, 첫 대본 리딩 때는 굉장히 큰 소리로 대사를 했거든요. (큰 목소리로) “돌아버리겠네”라는 대사인데, 감독님이 거기까지는 원하지 않으셨어요. 감정을 터뜨려 버리면 해소가 되잖아요. 그게 아니라 영실이 답답한 마음을 쭉 가져가는 게 좋더라고요.
작품을 보는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나요?
예전에는 뻔한 게 싫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어떤 역할이라도 뻔하지 않은 구체성을 내가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돼요. 대본을 혼자서도 많이 읽지만 일단 감독님이랑 대화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OK’를 내주는 건 감독이기 때문에(웃음), 게다가 대본 쓰신 분과 감독이 같을 땐 절대적으로 들으려고 해요. 그 의도를 잘 알아내는 것이 출발이니까요. 이번 영화의 경우 감독님께서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를 추천해주셨고, 큰 도움이 됐어요. 모두가 떠난 발굴지에 가만히 앉아 바람 등을 느끼는 그런 문장들은 영실과 흡사하다고 느꼈어요. 한참 동안 땅을 붓으로 판다고 생각해보면, 아주 오래 걸릴 거잖아요. 그런 과정을 몇 개월을 견딜 수 있는,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런 걸 상상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배우 옥자연
땅과 숲 사이에 선 영실을 보면서, 식물과 잘 어울리신다고 생각했어요. 키우는 식물이 있으신가요?
전 식물을 진짜 좋아해요. 숲이나 식물원에 가는 게 확실한 힐링이고요. 집에 3~40개의 크고 작은 식물들이 있어요. 이젠 돌보는 게 습관이 됐고, 촬영을 쉴 땐 분갈이를 해요.
<사랑의 고고학>으로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배웠고,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됐다고 하셨어요.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어요.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 할 때, 그걸 인지하게 된 것 같아요. 타인의 의사, 혹은 낯선 상황에 끌려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힘이요.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선, 제가 이완민 감독님을 신기하게 생각했던 지점이 있어요. 장면을 찍고 어땠는지 대화를 하잖아요. 그랬을 때 감독님의 반응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를 때가 있었거든요. “잘 나왔나요?”라고 물었는데 “내가 평소에 이런 걸 고민했었는데 그게 좀 해소됐다.” 같은 답변이요. 그런 접근은 되게 놀라웠고, 장면을 찍는 것만이 다가 아니고, 내가 이걸 통해서 무엇을 경유하는지가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소 인스타그램에 관람하신 작품을 소개해주시는데, 빅이슈 판매원분들과 독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을까요?
<인사이드 르윈>을 추천하고 싶어요. 길거리가 많이 나오는 영화인데, 재밌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최근 가장 재밌게 봤던 <이니셰린의 밴시>도 추천하고 싶네요. 첫 장면에서 콜린 파렐의 얼굴이 너무 좋아요.(웃음)
영화 초반 언급된 플라멩코처럼, 요즘 배우님 일상의 활기가 되어준 일이 있다면요?
최근 스웨덴에 갔다가 오로라를 봤는데, 어마어마한 경험이었어요. 일행과 함께 날이 흐려서 작은 오로라만 보다가, 투어가 끝나갈 즈음 거대한 오로라가 뜨는 걸 보게 됐어요. 아무도 핸드폰을 못 꺼냈어요. 너무 빠르고, 크고, 멋있어서요. 상상했던 것처럼 우아하게 움직이지 않고, 마치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연속사진으로 찍었을 때처럼, 초록색 칼이 막 휘둘리는 느낌? 정말 신기했어요.
<사랑의 고고학>은 인간을 돌아보게 되는 영화라는 코멘트를 남기셨어요. 영화를 본 관객분들에게 더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스스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싫었거든요. 영화 속에서 영실은 어떻게 보면 힘들었던 8년을 되게 세세히 돌아보잖아요. 정말 하기 싫은 일일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그냥 묻어버릴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돌아볼까? 생각하게 됐어요. 더 잘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도, 그냥 나에 대해서 아는 건 그 자체로 되게 좋은 것 같아요.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글. 황소연 | 사진. 김슬기 | 스타일리스트. 정소연 | 헤어. 조은혜 | 메이크업.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