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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3 에세이

여성 홈리스, 세월호 가족들과 위로를 나누다

2023.02.28


'빅이슈코리아에서는 여성 홈리스 정서지원 프로그램인 ‘BIG ISSUE WITH HER’의 일환으로 세월호 어머니들과 함께 꽃누르미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압화 작업물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감각을 깨워나가는 것이 목표인데요. 이들이 가느다란 연결고리를 통해 행복을 나누며 얼굴이 밝아지는 순간을 들여다보면, 지나온 긴 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그 안에 녹아 있습니다. (사)한국꽃누르미협회 식물공예연구회 이지연 강사, 세월호 가족 동아리 ‘꽃마중’ 성호 어머니, 건우 어머니와 함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사진. 김화경

《빅이슈》 독자분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려요.
이지연 강사 현재 세월호 가족 동아리 ‘꽃마중’과 동행하고 있는 이지연입니다.
성호 어머니 세월호 참사로 희생자 엄마가 된 2학년 4반 성호 엄마 엄소영입니다.
건우 어머니 저는 2학년 5반 ‘큰 건우’ 엄마입니다. 단원고에는 건우가 많아요. 그래서 큰 건우 엄마가 되었어요.

꽃을 통한 분의 만남이 궁금해요.
이지연 강사 20년 전 심한 마음의 병을 앓다가 만난 것이 ‘꽃누르미’였어요. 풀·꽃·잎의 위로를 받았고 지금은 그 위로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8년을 세월호 어머니들을 만나며 보냈어요. 처음엔 어머니들이 힘을 낼 만한 것을 하자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옆에서 수를 놓고, 밥때가 되면 같이 먹으며 시간을 보냈지요. 꽃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꽃누르미 작업도 함께 했고 그렇게 ‘꽃마중’ 팀이 결성됐어요. 그때 성호 어머니, 건우 어머니와의 인연도 시작됐어요. 지금은 두 분이 빅이슈 여성 홈리스 대상 정서지원 수업을 이어 진행하고 있으니,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릴레이 수업인 셈이네요. 단순히 꽃을 만진다는 의미에서 나아가, 서로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호 어머니 정기적으로 ‘꽃마중’ 팀이 모이면 얼굴도 보고 점심도 먹어요. 꽃을 말릴 일이 있으면 같이 채집해 말리기도 하고, 액세서리도 함께 만든답니다. 그중 ‘압화 리본목걸이’의 경우, 처음에 노란 리본을 알리기 위해 시작했어요. 지금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세월호 기억물품 상점에서 공식 물품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스탠드부터 소주잔까지 다양한 물품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 사진. 김화경

빅이슈와 함께하는 수업을 준비하면서 어떤 마음이셨어요?
건우 어머니 처음엔 노숙하셨던 분들이라고 생각하니 조심스러운 면도 있었어요. 여성 홈리스 클래스가 진행되기 전, 빅이슈 직원분들과의 첫 만남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을 여쭤봤어요. 다른 시선으로 보지 말고, 개인적인 일은 되도록 물어보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누가 되지 않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도 있었지만, 나중엔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첫 수업 당시, 꽃누르미 작업을 할 풀과 꽃을 채집하기 위해 다 같이 밖으로 나가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천천히 하늘도 바라보고, 좋아하는 꽃도 얘기하다 보니 처음보다 가까워진 느낌이었어요. 그 과정을 일기로 기록했어요.

"수업이 끝나고 미리 준비했던 양말목 키링을 가지고 꽃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서 한 분이 아까는 꽃잎이 너무 얇아서 숨도 못 쉬고 부서질까 봐
얼마나 조심했는지 너무 힘들었다고, 지금 만드는 꽃은 쭉쭉 당길 수 있어서
너무 시원하다고 하시면서 웃으신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우리도 꽃이지 하신다.
맞장구를 치면서 생각했다. 그렇지, 우리 모두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꽃이지!"

‒ 2022. 11. 11.(화) 건우 어머니 일기 중에서

ⓒ 사진. 김화경

수업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지연 강사 여성 홈리스 수업을 진행한 첫날 거울을 준비했어요. 이분들께 온전히 자기 모습을 오래 바라볼 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하는 마음으로요. 정성 들여 거울을 꽃으로 꾸미시더니 다들 하나같이 이건 본인이 갖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선물할 거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제 마음에 확 파고들더군요. 귀하게 만든 걸 주고 싶은 마음… 처음 만들어본 건 더욱 소중할 텐데, 고마운 분들을 먼저 떠올리시던 게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후, 받는 이가 정말 기뻐했다고 자랑하시던 모습들도 떠올라요. 함께했던 수업마다 늘 자랑이셨어요.
성호 어머니 저에게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씀하셨던 분이 계셨어요. 순간 울컥해서 눈물이 나는 걸 참으며 그분을 안았어요. 참 감동 받았어서 그 말이 기억에 남네요. 수업을 진행하며 그 어디서도 배울 수 없던 걸 많이 배웠고, 오히려 담아가는 기분이었어요.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어요. 다시 일어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분들이 큰 에너지를 받아 잘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이 나중에는 힘이 생겨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길 바라요. 저도 이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고 있고요.

《빅이슈》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건우 어머니 빅이슈 수업에 참여하는 분들 모두 작가님이세요. 이분들이 만드신 책갈피 하나로도 독자님들이 충분히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누가 만들었는지보다, 이 자체만으로 너무 예쁘거든요. 저희가 제작하면서 느끼는 설렘 그 감정 그대로 집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성호 어머니 편견을 깰 수 있는 과정이라 참 좋아요. 꽃누르미는 정해진 틀에 맞춰 나를 넣는 게 아니라서 더 좋죠. 책갈피를 받아보시는 독자님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갈피를 받아보시는 셈이에요. 이걸 받은 독자님들이 ‘나도 뜻깊은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자부심을 품으셨으면 좋겠어요.
이지연 강사 빛깔 고운 잎 하나가 눈에 띄어 책갈피에 넣어 눌러보았다면 《빅이슈》 독자님들도 이미 꽃누르미를 만나신 거예요. 꽃잎, 풀잎 하나하나 채집하고 누른 시간, 고르고 골라 올려놓은 시간을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 사이사이 깃든 평안과 따뜻함을 받아주시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작은 점이 모여 선이 되는 것처럼, 독자님들도 누군가의 선을 이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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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는 삶의 동선에 빅이슈 판매원이 있다면 판매원에게 직접 구입하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판매원이 없다면 정기구독도 좋은 선택입니다. 빅이슈코리아는 거리에서 잡지 판매가 쉽지 않은 여성 홈리스들이 정기구독자에게 보낼 잡지를 포장하는 일거리를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여성 홈리스의 손작업으로 전국의 정기구독자에게 《빅이슈》가 발송되며, 정기구독이 늘어날수록 여성 홈리스의 일거리도 늘어납니다. 한 달에 두 번, 당신이 오래 머무는 그곳에서 《빅이슈》를 반갑게 만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글. 양계영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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