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역 근처에는 ‘내사랑(Dear my love)‘이라는 이름의 수플레 팬케이크 가게가 있다.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동명의 영화 <내 사랑(My love)>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가슴 저리는 여운과 함께 주인공 모드의 이름을 중얼거리게 만들었던. 애플이라는 단어를 보면 모 전자기기 회사의 이름인 것을 알면서도 머릿속 한 귀퉁이에 빨간 사과 하나가 덩그러니 놓이듯, 그때부터 팬케이크 가게를 떠올릴 때면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영화도 생각의 선상에 함께 놓이고는 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팬케이크를 먹고 싶단 생각을 하다 영화까지 다시 보기에 이르렀다. 처음 봤을 때와 같은 뭉클한 감동이 여전한 나머지 눈 오는 일요일 낮, 기어이 지하철을 타고 ‘내사랑’을 가고야 말았다. 심지어 하얀 눈발이 날리는 것마저도 영화 속 세상으로 풍덩 뛰어든 것 같단 생각을 하면서.
‘내사랑’의 외관은 소박하지만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어 유년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그 지점에서부터 점차 훈훈해지는 마음을 안고 들어가 먹고 싶은 팬케이크를 주문하고 나면 그때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 행복의 시작.
행복의 맛이랄밖에

수플레 팬케이크의 즐거운 점은 주문이 들어오고 나면 바로 만들어준다는 데에 있다. 수플레니까. 따뜻할 때 먹어야 제일 맛있으니까. 특히 ‘내사랑’은 주방과 테이블 공간이 인접해 있어 팬케이크가 만들어지는 동안 온갖 소리와 냄새를 만끽할 수 있다. 반죽을 젓는 소리, 따끈히 퍼지는 반죽 냄새, 과일을 다듬는 도맛소리, 크림을 휘핑하는 소리까지. 팬케이크를 향한 여정이 쌓여가면 책을 보거나 대화하며 기다리다가도 은연히 기대되는 마음에 어느새 앉아 있던 자리를 떠나 주방 앞을 서성이게 된다.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마침내,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포동포동함을 감출 길 없이 몽글몽글 흔들리는 수플레 팬케이크 두 덩이를 마주하게 된다. 맛에 따라 딸기 크림, 말차 크림, 초콜릿 크림 등을 포근한 극세사 담요처럼 두를 때도, 메이플 시럽과 노란 버터 한 조각을 머리에 얹고 나올 때도 있는데 어느 때이든 한결같이 귀엽다. 정말.
사랑스러운 형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고소하고 달콤한 맛에 목화솜처럼 보드라운 식감이 입안에 잠시 머무르다 사라지고 난 뒤에 찾아오는 것은 그저 행복이다. 이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온전한 감정. 모드가 세상을 그들의 집과 캔버스와 나무판자에 그림으로 담으며 느꼈을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더듬어보면, 또다시 팬케이크와 함께 영화 속으로 잠겨 든다.

감동을 충분히 느끼면서 천천히 먹어보려 했으나, 몸과 마음이 합심해 어서 이 행복과 완전한 하나가 되라고 시위를 하는 바람에 금세 접시를 비우고야 만다. 어쩌면 수플레 팬케이크가 구워져 나온 시간보다도 더 빨리. 다소 멋쩍기도 했으나 마침 손님들이 연이어 들어오던 중이었기에 얼른 자리를 비키려는 마음이었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일어났다.
나오고 보니 잠시 그치나 싶던 눈이 드문드문 내리고 있었다. 그저 팬케이크 가게와 영화 한 편의 이름이 우연히도 비슷했을 뿐이겠지만, 어찌 된 영문이든 나야 고마울 따름이었다. 덕분에 눈 내리는 날, 몽글몽글하게 떠오를 추억을 얻었으니까.

내사랑(dear my love)
서울시 서대문구 이화여대2길 37
12:00~7:30(오픈 일정은 매달 인스타그램에 공지)
인스타그램 @dearmylove.seoul
글 | 사진. 김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