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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2 인터뷰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

2020.03.05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여자를 보라

이길보라 감독은 전작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서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로서 지켜본 부모의 삶을 온기 있게 전달했고 차기작 <기억의 전쟁>에서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출발해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고통에 주목하고 연대한다. 증언자들의 용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관용구로 강조하던 어투를 통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장편 영화 <기억의 전쟁>으로 돌아왔다. 지난번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농인 부모의 이야기를 담았고 이번엔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를 따라간다.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됐나.
할아버지께서 베트남 참전군인보다는 '참전용사'라는 말을 사용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참전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셨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받은 훈장이나 표창장 같은 게 집 안에 걸려 있어 자연스레 그것들을 보면서 자랐다. 그러다 할아버지께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암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20대가 돼 읽은 책에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두 가지 기억이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 간극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베트남에 가게 됐는데 탄 아주머니(응우옌 티 탄)를 만났다. 탄 아주머니는 내 할아버지가 참전군인임을 알면서도 따뜻하게 환대해주며 '밥 한술 뜨고 가라, 자고 가라.'고 했다. 왜 이 아주머니는 생판 본 적도 없는, 가해국에서 온 여자아이에게 밥을 먹으라고 하는 거지, 잠을 자고 가라는 거지?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영화의 배경은 휴양지 다낭에서 20분가량 떨어진 두 곳의 작은 마을이다. 1968년 한날한시에 학살당한 마을 주민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고 매년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곳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
할아버지는 다낭이라는 곳에 가봤다는 말씀만 하셨지 어느 마을에 주둔했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다. 퐁니∙퐁넛 두 마을은 세 명의 주인공을 선택하며 자연스레 배경이 됐다.

세 사람은 여성(응우옌 티 탄)과 시각장애인(응우옌 럽)과 청각장애인(딘 껌)이었다. 베트남에 갔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이 세 사람이 중요해 보였다. 당연히 내 출생과 연결되는데, 부모님이 농인이다 보니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게 됐다. 또 내가 여성이다 보니 여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됐고, 내가 전쟁 3세대니까 2세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됐다. 그렇게 세 명의 인물을 결정하게 됐다.

가해국에서 왔고 어떤 시각으로 주제를 다룰지 모르는 상황에서 경계심을 드러냈을 법도 하다. 세 사람은 영화 촬영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나.
일단 내가 전쟁 3세대고 딸 같은 나이이다 보니 우리가 카메라를 들고 갔을 때 다른 카메라보다 더 환대해주신 거 같다. 실제로 탄 아주머니네 막내와 내가 동갑이었다. 세 분 모두 "너희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구나. 잘 담아서 한국 사회에 잘 이야기해줘라"라고 말씀해주셨다.

무턱대고 카메라를 들이밀 수는 없고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돼야 솔직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세 명과 관계를 쌓아나가는 과정은 어땠나.
2015년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사전 단계를 밟으며 매년 베트남에 가서 위령제에 참여했다. 그러다 제작 중이던 2018년에 탄 아주머니가 민간인 학살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직접 방한하기로 결정된 이후, 탄 아주머니의 변화를 담기 위해 제작 기간이 늘어났다. 운명이라고 생각한 사건이었다. 국내에서 펼쳐진 전 일정 동안 쫓아다니며 촬영하고, 촬영이 없는 날은 관광을 다니며 같이 밥을 먹었다. 자연스럽게 손녀딸과 할머니 같은 사이가 됐다.

감독을 비롯해 스태프가 모두 여성으로 구성됐다. 다른 스태프들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나.
내가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데, 촬영감독과 프로듀서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나와 달리 붙임성이 아주 좋다. 위령제를 촬영하러 갔을 때 프로듀서가 거기서 밥을 했을 정도다.

응우옌 티 탄이 증언한 2018년 시민평화법정에서 주심 김영란 전 대법관은 '대한민국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선고했다. 좋은 결과이긴 하지만 우리 정부의 사과나 참전군인 개인의 사과가 실제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에선 안타깝다.
그렇다. 탄 아주머니의 몸이 좋지 않아서 방한하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어렵게 한국에 오셨다. 사실 탄 아주머니가 시민평화법정에서 얻고자 한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가 진상 규명을 해야 하고, 우리 정부의 사과도 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탄 아주머니가 한국 여정에서 받고 싶었던 건 '이 자리에 학살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올라와서 내 손을 잡고 사과하라.'는 단 한 가지였는데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법정에 참전군인이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굉장히 안타까웠다.


증언하기 위해 과거의 상처를 꺼내 상기시키며 수차례 증언을 반복해야 하는 탄의 어려움도, 감독의 미안함도 컸겠다.
서울을 비롯해 대구, 부산 등지에서 학살에 대해 증언하실 때마다 탄 아주머니가 너무나 힘들어하신다는 걸 알았다. 사람이 떠올리기조차 고통스러운 힘겨운 증언을 할 때 어떤 부분에서는 정신을 놓는다고 해야 하나, 그런 순간이 온다. 2018년(증언 당시) 여기에 서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학살 당시에 감정이입을 하셨다. 나 역시 촬영하면서 증언을 다시 들어야 했고, 죄송했다. 이미 여러 번 담았는데도 영화에 쓰기 위해, 우리 영화의 무드에 맞추기 위해, 인터뷰와 숏컷을 따기 위해 내가 탄 아주머니를 다시 한 번 그 고통스러운 기억의 시간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감독으로서 무겁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 질문을 다시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계속 다른 질문만 하니까 촬영감독과 프로듀서가 원활한 진행을 위해 질문을 재촉했다. 그들이 해줘야 하는 역할이었다. 내겐 질문자로서의 무게가 있고…그러다 인터뷰 마지막에 굉장히 어렵사리 다시 물어보게 됐다. 아주머니를 알면 알수록, 함께해온 시간과 쌓아온 관계가 생기면서 항상 그런 것들이 어려웠다. 그렇지만 아주머니는 우리가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계셨고, 영화에 맞는 것을 해주려고 노력하셨다.



편집하는 과정에서 영화적 장치를 통해 메시지를 강조한 부분이 있나.
껌 아저씨가 손짓과 몸짓으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자막을 넣을 수 있었지만 넣지 않았다. 관객들은 그를 보며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대포가 있다는 건가, 미사일이 날아간다는 건가,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고 느낄 거다. 나는 그 사람들의 언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껌, 럽, 탄이 가진 언어를 관객들이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막으로 쉽게 이해하는 게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관객들이 시간을 들여 언어를 이해하는 체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학살로 몇 명이 죽었는지 설명만을 듣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증언할 때 언제 눈물을 흘리는지, 언제 과거로 돌아가는지, 어떤 방식으로 눈을 움직이는지 그 사람의 언어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제목도 <기억의 전쟁>이고, 양측의 입장이 있다. 참전군인들은 시민평화법정 날 민간인을 죽인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어떻게 해석했나.
처음엔 논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정말 양민을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른 부대가 죽였을 수 있고, 그 사람은 무고할 수 있다. 무고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촬영을 하면 할수록 그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푸티지(촬영 필름)를 통해 들여다보니까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한 개인으로 보이기 시작하더라. 군복을 입은 아저씨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군복을 입혀놓은 우리 할아버지, 이가 다 빠진 우리 할아버지 모습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보이니까 그제야 그 사람들의 논리와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정말 한 명도 안 죽였을 수 있다. 또 전쟁에선 내가 살려면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안 되니까 그런 선택을 했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전쟁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다. 아무도 자기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 저렇게 광장에 나와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거 같았다. 이들을 악의 축이나 흑백논리로 다루는 게 아니라 다른 기억을 가진 하나의 주체로 그리기로 했다. 가해자만이 아니라 결국 가해자이자 피해자, 또 다른 기억을 지닌 사람들로 담으려고 노력했다.

베트남인 피해자들과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참전군인들 사이에서 개인으로서 무력하단 생각도 든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베트남전쟁이 무엇이었는지를 각자의 시선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고, 새 기억을 만들 수 있고,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 이 영화가 담론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말하게 하는 촉매제가 됐으면 좋겠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영화가 공개됐을 때 관객분들이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간다고 하셨다. 가슴에 그런 물음표, 질문을 가지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해답을 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각자의 질문을 품고 삶에서 대답을 찾는 일을 해나갔으면 좋겠다.

영화의 주인공인 세 사람도 완성된 영화를 시청했나.
2019년 베트남에 방문해 위령제를 지내고 상영회를 열었다. 탄 아주머니네 집에 텔레비전이 있어서 다른 마을에 사는 럽 아저씨와 껌 아저씨를 모셔와 마을 상영회 같은 걸 했다. 텔레비전 화면도, 소리도, 자막도 작아서 전체 내용을 잘 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너무 좋아하셨고 자기의 이야기가 영화화될 수 있다는 데 놀라고 자랑스러워하셨다. 이들의 이야기가 한국 사회와 베트남 사회에 잘 전달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 자기들의 이야기에 대해 잘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건 세 분이 그날 처음 만났다는 거다. 내가 세 명을 찍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서로 다른 마을에 살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만 알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세 분을 모시고 같이 밥을 먹고 상영회를 여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왜냐면 럽 아저씨는 시력을 잃었고 껌 아저씨는 청각장애인이라 음성언어로 소통하지 못했다. 탄 아주머니의 경우에는 럽 아저씨와는 음성언어로 이야기하지만 수어는 못 해 껌 아저씨와 소통이 불가능했다. 세 명이 모였을 때 내가 껌 아저씨 옆에 붙어서 수어를 한국어로 통역하고 통역사가 베트남어로 통역했다. 두 단계에 걸쳐 통역하고 밥을 먹으며 영화를 봤다. 재밌는 시간이었다.


지난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와 <기억의 전쟁> 모두 가족의 이야기가 단초가 됐다. 영화를 구상할 때 경험에서부터 출발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지금 작업 중인 신작도 내 가족의 이야기다. 나와 할머니와 엄마의 임신 중지 경험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결국 내 모든 작업은 가족에서 출발하는 거 같다. 맨 처음 만든 다큐멘터리도 내 이야기였다. 내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나와 가장 가까이 있고, 그 이야기들을 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 그 이야기들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 그런데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만들었을 때 한국에서 '사적 다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더 거대하고 거시적인 담론이나 사회적인 담론을 다뤄야지, 왜 가족 이야기를 다루느냐'고 내려다보며 은근슬쩍 폄훼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보잘것없나? 밖에 나가서 사회문제를 다루고 '본격' 정치 영화를 만들어야 좋은 영화인가 싶더라. 내가 만드는 영화는 다 정치적인데 말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결국 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4학기 동안 유학하면서 공부했는데 첫 학기 주제가 주관성이었다. '어떤 시선에서 영화를 만드는가'가 중요하다고 배웠다. 그래서 내 작업에 확신을 갖게 됐다. 내가 하는 작업이 작고 하찮은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잘 알고, 좋아하고, 소중하고 중요한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다.

이길보라 감독이 계속해서 집중하는 논픽션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 현실이 픽션보다 훨씬 재밌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다뤄야 하는 이야기가 많고, 허구보다 현실이 더 허구 같은 부조리극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본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도 모두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장애인 가정을 다뤘다. 사람들은 따뜻함을 느꼈고, 장애인 가정이 나보다 따뜻하게 살 수 있다고 받아들였다더라. 나도 그렇게 다루고 싶었다. <기억의 전쟁>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외면할 때 이 여성은 사과를 받고 싶다고 끊임없이 증언한다. 나머지 두 캐릭터도 그렇다. 또 영화 말미에 중학생들이 나온다. 법정에 와서 탄 아주머니에게 선물을 주고 '기억하겠다'라고 말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마음가짐과 태도에서 뭔가 희망이 있을 거 같다.


<기억의 전쟁>은 어떤 영화?
다 자라 20대가 된 손녀는 스스로를 '용사'라고 칭하던 베트남 참전 군인 할아버지의 기억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가족을 잃고 남겨진 피해자들. 그리고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참전용사'라는 자랑스러운 칭호를 안고 사는 노쇠한 군인들 사이 기억의 간극은 얼마나 벌어져 있는 걸까.


양수복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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