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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1 스페셜

평등을 고민하는 시민을 위한 안내서

2020.02.21 | 일상에서부터 바꾸는 선량한 차별

일상에서 했던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면?
그럴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이미 일은 벌어졌다.
해야 할 것은 사과와 고민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저자는 말한다. "나 자신을 성찰하며 평등을 찾아가는 이 과정이 나는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헛된 믿음보다 훨씬 값지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아래의 예시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을 포함하지는 못한다. 차별은 '체크리스트'를 만들기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으므로. 되돌아보니, 아래의 예시들이 모두 나에게 해당된다고 해도 좌절하지 말자. 평등의 시작은 내 행동을 되짚는 것부터 시작되니 말이다. 지금은 2020년. 평등한 세계를 만들고 싶은 시민들에게 제안하는 작은 안내서.


"OO씨, 살 언제 뺄 거야?"
일상에서 말하고 듣는 외모 이야기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외모에 대해 아예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3일, 하루, 아니면 하루에 10분이라도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외모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할 말이 없어진다면, 그만큼 우리가 겉모습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살 좀 빼라, 화장 좀 해라, 예쁘게 입고 다녀라…. 관심의 탈을 쓴 '고나리질'은 이제 그만!

"어린 친구가 정말 기특하네!"
종종 나보다 어린 사람을 칭찬하기 위해 동원되는 단어들. 기특하다, 대견하다 같은 말은 특히 청소년들이 어떤 의견을 내거나 주장을 했을 때, 그것이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말일 때 자주 사용된다. 다른 방법으로 동의를 표현해보면 어떨까? "의견 정말 잘 들었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고마워요." 같은. 우리에겐 더 많은 공감의 언어가 필요하다.

"여기, 커피 하나!"
존댓말 사용하기,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아직도 편의점이나 카페, 백화점 등에서 서비스를 받을 때 반말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아무 말 없이 돈만 내밀고 빤히 쳐다보거나, 카드 혹은 지폐를 아무렇게나 던지기도 한다. 내 돈 내고 이렇게 불편해야 하느냐고? 실은 돈을 내고 받고 싶은 서비스가, 손님 대우가 아닌 '상전' 대우는 아닌지 고민해보자.

"우리 가게엔 안 왔으면 좋겠는데…"
낯선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해서 식당 등의 사업장에서 시각장애인이나 외국인 손님을 받지 않는 것이 온당할까? 피부색 등을 이유로 채용을 거부하거나 취소하는 것 역시 그렇다. 최근 난민 자격으로 국내 체류 중인 이가 호텔 세탁실 직원 모집에 합격한 후, 채용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합리적 이유 없이 장애와 인종, 피부색 등으로 업장 입장을 거부하거나 채용을 취소하는 행위는 명백한 차별이다. 두려운 것은 낯선 존재가 아니라, 낯선 존재를 공포의 대상으로 둔갑시키는 사회다.


"#MeToo 때문에 무서워서 뭔 말을 못 해~"
사실은 '여직원'들이 무서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자유롭게 말할 자유가 줄어드는 것이 두려운 것뿐. 그동안 나 스스로가 얼마나 '아무 말'을 해왔는지 돌아보는 건 어떨까. '무서워서 뭔 말을 못 해'를, 자신이 해온 언행을 반성할 기회로 만들자. 장난, 농담, '섹드립'은 상대방이 인정할 때만 성립된다. 내 맘대로 차별에 기반한 음담패설을 개그로 둔갑시키지 말자. 상대방이 인정하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그 정도 분위기는 살피면서 '농담'을 하자.

"약 먹어라", "정신병원 가봐라"
누군가 화를 내거나 기분이 바뀔 때, '약 먹을 시간'이라거나 '병원에 가봐라'라는 말을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걱정해서 하는 말일까? 정신장애인이 열등하고 뒤떨어진다는 편견은 곧 정신질환에 대한 선입견을 공고하게 한다.

"얼굴이 많이 타서 동남아 사람 같네."
역시 좌중을 웃기기 위해 선택한 말이라면, 잘못된 선택이다. 그저 얼굴이 햇볕에 그을렸다고 말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외모 이야기를 줄이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시커먼스'가 사람들을 웃기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누군가 "감정적인 걸 보니 꼭 한국인 같네."라고 말한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떨까?

"여자분이 이런 음악을 듣다니",
"여자인데 이런 기계를 다루다니!"

'음악 취향이 저와 비슷하시네요', '기계를 참 잘 다루시네요!' 등으로 바꿔 말하면 어떨까. 언뜻 대상을 치켜세우기 위한 말 같지만, 여성은 어떠한 틀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재생산에 지나지 않는다.


"남자친구・여자친구 있어?",
"너 남자야 여자야?"

여러 명이 모이면 등장하는 단골 질문. 상대방은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 무성애자일 수도 있다. 수많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자. 더불어 상대방의 겉모습을 보고 남성인지 여성인지 확정 짓는 것은, 굳이 즐거운 대화에 필요하지 않은 주제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냐고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우리는 으레 외모에 대한 평가를 칭찬과 긍정적인 인사로 주고받는다.
칭찬하려고 꺼낸 내 말이, 분위기를 즐겁게 하려고 했던 몇 마디가 누군가에게 '선량한 차별'일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시작하면 어떨까? 대신 우리가 만난 계기와 날씨, 교통수단, 서로의 취미, 즐겨 보는 책이나 TV 프로그램, 좋아하는 노래와 음식 등 각자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주제로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다면 더욱 다행이다. 앞으로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니까.
미처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차별적인 말과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세상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왜 예민하게 구느냐."는 말 대신, 지적해주어 고맙다는 인사와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넬 것을 권한다. 평등한 사회로의 출발은, 당신이 성찰하는 순간 이미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참고자료
국가인권위원회 웹진 <인권>,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차별없는 가게> 홈페이지
한국여성민우회 해보면 캠페인(2016)・조직문화 스트레칭 캠페인(2019)


황소연
그림자료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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