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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0 빅이슈

주거 안정의 여정 (1)

2023.11.06

홈리스 여성들이 주거의 안정, 주거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하다 보면, 그 변화의 더딤을 견디는 게 힘들 때가 많다. 내가 홈리스 여성들을 접하는 통로는 여성 일시보호시설이다. 일시보호시설은 주로 길거리 노숙을 하거나 길거리 노숙을 할 위기에 처한 여성들이 서비스를 요청할 때 긴급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한다. 법적으로 정해진 한두 달의 이용 기간이 끝난 후에는 또다시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도록 거주 시설에 연계하거나 고시원, 임대주택 같은 지역사회의 거처를 안내하는 일도 한다. 그러니까 거리와 시설, 혹은 거리와 지역사회의 중간쯤에 있는 플랫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노숙 상황에서 응급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이 많지 않고, 여성 전용 일시보호시설은 전국에 딱 한 곳, 내가 일하는 곳뿐이라서 그간 많은 홈리스 여성들을 만나왔다. 시설의 문을 연 2016년부터 지금까지 거쳐간 여성들을 헤아려보니 자연인 수로만 1000명이 넘고, 반복해서 왔던 경우까지 더하면 1300백 건이 넘는다. 그 많은 여성들의 삶은 길거리나 찜질방 같은 위험천만하고 불안한 잠자리 환경을 벗어나 안전한 곳, 인간다운 곳으로 딱 한 발짝만 앞으로 나가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 더구나 더 나은 방향으로 후퇴 없이 전진하는 예는 너무나 드물더라는 것을 보여준다.

유성(가명) 님은 올해 초 더부살이하던 곳에서 나온 이후 갈 곳이 없자 동네 복지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해서 겨우 일시보호시설로 연계된 여성이었다. 어떤 관계이기에 그 집에서 살 수 있었느냐 물어보니 그저 아는 언니라고 했다. 그 말고는 아는 이가 없는 상태였다. 20여 년 전에 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몇 년 전 남편이 사망하고, 아들은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기면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 귀국했다. 그러나 막상 돌아온 한국에도 윤성 님을 반기고 도움을 줄 만한 끈끈한 관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아는 언니라는 사람도 그렇게 막역한 사이는 아닌 듯했고, 그러니 얼마간 지내다 눈치가 보여 스스로 나왔어야 했다.

돈도 갈 곳도 없는 여성들
유성 님은 60세가 거의 다 된 데다 몸도 여기저기 아파 일할 곳을 찾기도 쉽지 않더라고 했다. 시설에 온 직후에도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진료를 연계했다. 병원에서 관절염이 있으니 약을 좀 먹어보라는 의사의 처방을 받아 왔다. 그때 병원에서 건강보험 자격을 확인하다가 유성 님이 의료보호 자격을 취득했다는 걸 알았다. 시설에 오기 전에 주민센터에 찾아가 수급권을 신청했는데, 그사이 조건부수급자로 선정된 것이었다. 조건부수급은 지역의 자활근로 같은 일에 참여할 기회를 주어 생계비를 확보하도록 하는 것인데, 자활근로에 진입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 상담과 직업교육을 실시하고 그 기간에 기초생계비를 제공한다. 기초적인 생활도 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공공부조이므로 보통 생계비를 받는 사람들은 의료보호 자격도 주어서 의료비 부담을 경감해준다. 한시름 놓았다고, 시설 이용 기간 충분히 쉬시되, 짬짬이 나가서 생활할 수 있는 방을 찾아보시면 좋겠다고 안내했었다.

일시보호시설을 이용하던 초기에 유성 님은 꽤 모범적인 이용인이었다.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의 환경이라는 게 방 하나에서 서너 명이 함께 자고 생활해야 해서 개인 사물함 말고는 사생활을 누릴 만한 공간이 딱히 없다. 또한 이용인 모두 경제적으로도 인간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잠잘 곳을 찾아 시설에 왔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편치가 않은 상태이고 실제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여성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지내니 생활 습관의 차이 때문에라도 불협화음과 다툼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윤성 님은 사람들에게 뾰족하게 굴지도 않고 큰 다툼도 없이 지냈다. 방은 어디에 어떻게 얻을 것이냐고 물어보면 시설에 오기 전에 지냈던 자기에게 익숙한 동네에서 찾아보겠노라 해서 괜찮은 생각이라고 지지하곤 했었다.

이 글은 '주거 안정의 여정 (2)'에서 이어집니다.

소개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글. 김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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