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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1 커버스토리

무해한 개그는 가능하다

2021.11.01 | 우리가 <모죠의 일지>를 사랑해 마지않는 이유

며칠째 한 줄도 건지지 못했다. 이 리뷰를 쓰기 위해 <모죠의 일지>를 자기 전에 몇 화씩 몰아 보고 있는데, 메모장 앱을 켜기도 전에 스르륵 잠들어버렸다. 분명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낄낄거리며 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참고로 나는 정주행할 만한 웹툰을 찾았다 싶으면 새벽 4, 5시가 되도록 올빼미 눈을 하고서 스마트폰 을 들여다보는 인간이다. 그런데 <모죠의 일지>는 다르다. 읽다 보면 캡처 한 장 뜰 새도 없이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고 쿨쿨 자게 된다. 잔잔한 힐링 웹툰도 아니고, 쉴 새 없이 드립이 난무하는 일상 개그 웹툰은 어째서 내게 수면제가 된 걸까.

일단 썸네일을 보자. 주인공이 누워 있다. 네이버 웹툰 통틀어 이렇게 건방진 썸네일은 처음이다. 아무리 콘셉트가 ‘집순이’라도 그렇지 독자를 누워서 맞이하다니! 저 심기 불편한 듯한 표정은 또 어떻고! 초기 썸네 일에서 모죠는, 예의 그 심드렁한 얼굴로 앉아 있기는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힘든지 누워버린 것이다. 건방 진 녀석 같으니... 완전 내 스타일이다.

2019년 5월 4일부터 매주 수요일, 토요일 2회씩 연재 해왔던 일상 개그 웹툰 <모죠의 일지>는 2021년 9월 25일 꽉 차게 250화를 그리고 완결을 맞이했다. 모바일 기준, 여성 독자들의 절대 지지를 얻었던 이 웹툰은 자칭 ‘소신 있는 취향, 내성적인 성향’을 지닌 ‘훌륭한 집순이 모죠’가 겪은 일상을 소재로 삼는다. 말린 더덕, 인삼, 산삼 등으로 오해받는 작가 캐릭터는 실은 염소를 의인화한 것으로, 화가 나면 악마 버전 염소로 벌크업하기도 하고, 멍청한 순간에는 초점 없는 눈깔의 풀 뜯는 염소 버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모죠는 겁이 많고 소심하지만 ‘관종’ 기질도 다분해서,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틈만 나면 드립을 쳐대며 일상을 시트콤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와 티키타카를 해대는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가족으로는 집안 내 서열 1위인 엄마(갈색 염소), 2위인 반려견 ‘단단한 개’, 3위인 반려묘 ‘리틀조’가 있다. 안타깝게도 모죠는 서열 4위인데, 그 이유인즉 엄마가 모죠를 타박하는 것으로 시작해 모죠가 뭐라고 변명하다가 자연스럽게 현실을 인정하면 패배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 모녀는 개그 욕심이 다분하다. 노잼인 가족 구성원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때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하면 가족을 잃는 대참사가 발생하기도 한다.(40화. ‘집이 나라인 만화’) 단단한 개한테는 한심한 인간 취급받고, 성깔 있는 고양이 리틀조에게도 치이기 일쑤인 모죠. 그는 당하는 역할을 자처하며 자기를 희화화하는데, 가족에 대한 애정 덕분인지 그 역할을 즐기는 듯하다.

친구도 많다. 자취하는 맹덕이, 게임 친구 제임스, 고등학교 단짝 허송, 감쟈, 앨리, 굴굴, 포도, 라노, 아귀 등등이 있다. 친구들도 대체로 집순이라 모여봐야 별반 드라마틱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자취하는 맹덕이 집에 친구 넷이 모여봐야 각자 사방신마냥 벽에 붙어서 스마트폰이나 보다가 20세 넘은 사람들이 <짱구는 못 말려>를 함께 보며 낄낄대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각자 집에 가는 식이다.(111화 ‘할 일 없는 청년 모임’) 이 야망 없는 청년들의 평범한 하루를 보다 보면, 어느새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다이어리에 해야 할 일 들을 빼곡히 적어두고, 해가 지면 오늘도 뭐했나 하는 허탈감과 자괴감에 휩싸여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요즘, 나는 잠자리에서도 내일의 할 일 목록을 생각하며 쉽게 잠들지 못한다. 그런데 <모죠의 일지>를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은 저 멀리 사라지고, 게으르고 느슨한 인간 모죠로부터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는 것이다.

어설프게 실패해서는 웃길 수 없다!
모두가 자기계발의 화신인 시대, 포기하고 망하고 누워버리는 모죠는 존재 자체로 내게 힐링 요정이다. 맘 먹고 도서관에 가봐야 실컷 자고 일어나서 학식에 돈가스 먹으러 갔다가 용가리 너겟을 튀겨 줬다며 분노하고, 일찍 일어나려 하지만 늘 제자리인 자신을 두고 ‘360도 달라진 삶’이라며 뻔뻔하게 자랑한다. ‘식곤 증’, ‘무계획 라이프’ 등등 제목만 봐도 백 퍼센트 공감 할 만한 회차가 수두룩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모죠는 좀 더 적극적으로 실패한다. 그는 자타 공인 똥손으로, 뭘 하나 만들어도 안내서를 끝까지 읽지 않고 자기 맘대로 주물러버리는 습관이 있다. 그는 번번이 기상천외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양모 펠트로 보슬보슬하고 귀여운 고양이를 만들려고 했는데 근육질의 악당 고양이를 만든다거나(약간 무섭다), 화이트초코를 분홍색으로 덮은 마카롱을 구우려고 했는데 틀니가 나왔다거나(아주 닮았다), 티코스터를 뜨려고 했는데 곱창밴드가 나오고 말았다든가(곱창 끈이 아니라고?) 여하튼 그는 집에서 다종다양하게 만들어서 ‘조지는’ 취미를 갖고 있다. 망하는 과정을 이토록 웃기게 그릴 수 있을까. 이런 에피소드를 만날 때마 다 숨이 꺽꺽 넘어가도록 웃으며 생각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더니, 모죠처럼 유머 필터를 갖다 대면 매일이 시트콤이겠구나. 가슴 한가운데 자리 잡은 불안 덩어리도 이렇게 찰진 드립과 비유로 풀어내면, 한번 웃고 지나갈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마음이 편해져 잠이 솔솔 오나 보다.

*이 기사는 <무해한 개그는 가능하다 2>에서 이어집니다.


김은화
그림제공 네이버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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