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리 가이> 스틸컷
누구보다 열심히 산 내 인생의 주인공이 실은 내가 아니라니, 내 생각과 의지로 결정하고 사랑했던 것들이 실은 ‘창조주’와 스크린 밖 관객을 위한 것이었다면? 게다가 내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진정한 삶을 찾아 탈출을 시도한다.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 쇼>(1998)가 바로 떠오른다. 이 영화의 주인공 ‘트루먼’이 미디어 중 방송의 희생자였다면 우리의 ‘가이’(라이언 레이놀즈)는 게임 세계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은행원으로 살아가던 가이가 자신이 게임 속 배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게이머’들의 조작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개척하고 주인공이 되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게임 속 캐릭터인 것도 놀라운데, 더구나 주인공도 아니고 배경에 불과하다니. 누구나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걸 알게 된 남자가 자신의 의지로 주인공이 되어 실력을 레벨 업 하는 것이 <프리 가이>의 주요 재미를 견인한다. 이 영화는 박물관의 모든 전시품이 살아 움직이는 세계를 스크린에 구현한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의 숀 레비가 감독을 맡았다.
영화 <프리 가이> 스틸컷
사실 게임은 실재하는 세상과 달리 어떤 한계도 없다. 게임 속에선 무엇이든 가능하다. <프리 가이>는 게임 속 ‘캐릭터’가 스스로 주인공이 되기를 택한다는 아이디어와 ‘게임’이라는 특수한 배경을 이용해 스펙터클한 상상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주연을 맡은 라이언 레이놀즈는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다. 가장 큰 뉴스가 세계의 종말이다. 살다 보면 내가 배경 캐릭터로 전락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의 캐릭터에 공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영화는 요즘 세대(게임 세대)를 위한 현대 버전의 <빽 투 더 퓨쳐>다. 게임 세계에서 일하는 여성이자 주체적인 캐릭터 ‘밀리/몰로토프걸’은 드라마 <킬링 이브>로 사랑받은 조디 코머가 맡았다. 영화에서 주인공 가이를 연기한 라이언 레이놀즈와 흔한 게임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진 않았다고 말하는 조디 코머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못해도 괜찮을 때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
영화 <프리 가이> 스틸컷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 인터뷰>
<프리 가이>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꼈는가?
은행 창구 직원이 자신이 살벌한 오픈 월드 게임 속 배경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주요 설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일종의 주체성과 소속감을 원하는 가이라는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숀 레비 감독에게도 보냈다. 같이 작품을 하자는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해왔던 터라. 나는 예술가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숀 레비 감독의 오랜 팬이다.
<프리 가이>에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숀 레비 감독과 함께 작업하는 건 어땠나?
그도 이 이야기에서 나와 똑같은 것을 발견한 듯했다. 나는 소원 성취 스토리텔링이 그리웠는데 이 영화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숀 레비도 같은 매력을 느낀 것 같다. 작업량이 무시무시할 것 같아서 세계관을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서 각본가 자크 펜과 각본의 모든 장면을 하나씩 일일이 짚어보았다. 숀 레비는 세계관 구축의 완벽한 파트너다. 그 분야에 워낙 경험도 많고 유능하다.
우리는 <빽 투 더 퓨쳐> 같은 분위기를 원했다. 그 영화는 지금 봐도 1985년에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대부분의 소원 성취 영화가 그렇다. 볼 때마다 새로운 뭔가가 보이도록 이 영화에 디테일과 이스터 에그를 되도록 많이 넣고 싶었다.
영화 <프리 가이> 스틸컷
가이는 어떤 캐릭터인가?
가이는 아이처럼 순수한 캐릭터다. 그는 매일 똑같은 패턴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상할 정도로 긍정적이고. 그러다 밀리/몰로토프걸을 만나 성장하게 된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굉장히 흥미롭고 특별한 방식으로 가이의 성장을 돕는다. 가이가 행위에서 주체성을 얻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가이는 성장하면서 뒤쪽 배경에서 정면으로 나온다. 그동안 세상에 일어났고 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관련해 많은 부분에 공감하게 한다.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보다 더 공감하게 된 것 같다. 캐릭터의 여정이 이렇게 명료한 시나리오는 보기가 쉽지 않은데 마음에 쏙 든다. 이 영화의 모든 요소가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겹쳐 보일 것이다.
영화 <프리 가이> 스틸컷
조디 코머가 맡은 밀리/몰로토프걸이 궁금하다.
조디를 봤을 때 처음 영화에 출연한 메릴 스트립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강렬하고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연기를 얼마나 섬세하게 잘하는지 함께 연기할 때면 완전히 그 장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꼭 유체 이탈이라도 해서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녀는 스스로 별로라고 말할 때도 나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항상 연기에 오롯이 집중했다. 나를 비롯한 제작자들은 조디 코머가 출연하는 드라마 <킬링 이브>를 워낙 좋아하고, 그녀가 센 캐릭터를 잘 연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웬걸, 그녀는 모두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주인공 가이를 연기하는 한편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제작 일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인가? 제작자로서 어떤 작품에 끌리는가?
제작 일이 좋다. 하지만 제작자로 참여하지 않는 것도 좋다. 그럴 땐 그냥 내 촬영분이 끝나면 퇴근해도 되니까 좀 더 쉽게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배우보다는 제작자로 일할 때 얻는 만족감이 더 크다. 사실 내가 제작한 영화는 <프리 가이> 외에 두 편밖에 안 된다. <데드풀> 1편, 2편. 창작 과정의 파트너라는 느낌이 들어서 이 일이 좋다. 하지만 나는 연출에 대해 아는 척하지 않고 숀 레비 감독에게 다 맡겼다. 우리의 호흡이 좋았던 것도 그 덕분이고. 우리는 서로 존중한다. 나이 들수록 현장에서 서로 존중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영화를 흥행시킬 인재 한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 되어야 한다. 그게 스크린에서도 다 표시가 난다. 내가 오래전에 힘들게 깨우친 교훈이 있다. 지금까지도 늘 가슴에 새기는 교훈인데, 못해도 되는 환경이어야만 진정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배우들과 함께하는 현장에서 나는 실수해도 괜찮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다들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수에 수치심을 느끼는 환경에서는 창의성을 발휘할 길이 막힌다. 처음에는 형편없는 아이디어였지만 다듬기를 거듭해 최고의 아이디어가 된 적이 많다. 이런 일이 가능한 현장을 만들고자 애썼다.
딸 셋의 아빠가 된 지금 시나리오를 보는 관점도 좀 달라진 것 같다. 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한 번도 영화에서 다룬 적 없는 소외된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예전과 관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달라져서 감사하다.
영화 <프리 가이> 스틸컷
관객이 <프리 가이>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이 영화를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이유는 뭔가?
무엇보다 엄청 재미있다. 어릴 때 <빽 투 더 퓨쳐>를 보고 실제로 몸이 붕 뜬 것처럼 들뜬 기분을 느꼈는데, <프리 가이>를 본 관객들이 바로 그런 기분을 느낄 것 같다. 분명히 영화관을 나설 때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진즉 나왔어야 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감정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영화라서 관객이 극장에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플 정도다.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사운드가 가슴에 울려 퍼지는 것을 느끼며 꼭 극장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극장에서 보는 것이 경험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스케일이 큰 영화라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
보통 남자들이 생각하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다.
영화 <프리 가이> 스틸컷
<조디 코머 인터뷰>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어떤 점에 끌렸는가?
모든 것을 다 갖춘 영화다. 내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숀 레비와 라이언 레이놀즈의 합류가 이미 결정된 시점이어서 두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세상에서 제일 웃긴 라이언 레이놀즈의 상대역이고, 같이 연기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 겁나기도 했다. 하지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라서 좋았다. 스케일이나 1인 2역 연기 등 모든 도전 요소가 나를 밀어붙였다.
밀리는 어떤 캐릭터인가?
밀리는 영리하다. 똑똑하고 의지가 강하다. 특히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점이 존경스럽다. 유머 감각도 있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아무리 힘든 시련이 닥쳐도 반드시 상황을 바로잡으려 하는 모습이다.
의상이 연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가?
매우 중요했다. 자율성과 주체성을 불어넣었다. 몰로토프걸은 부츠와 가죽 바지 차림이다. 20대 여성이고 게임 세계에서 일한다. 그녀는 보통 남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 캐릭터다. 제작진이 의상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최종 결과물이 아주 멋지다.
영화 <프리 가이> 스틸컷
스턴트 코디네이터가 당신의 열정에 감탄했다고 하더라. 촬영하면서 즐거웠던 점은?
<킬링 이브> 때도 스턴트 연기가 많긴 하지만 몸을 쓰는 면에서 이 영화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수준의 스턴트 연기는 처음이라 배우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스턴트 연기는 감정이 강렬하거나 임팩트가 강하거나 둘 중 하나라 최대한 그런 모드에 머무르려고 노력했다. 평소에도 스턴트 연기자들을 존경했지만 이번에 하루에 서너 시간씩 같이 일하면서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많은 노력을 쏟아붓는다는 걸 알게 됐다. 스턴트 장면을 빼고 <프리 가이>를 논할 순 없을 것 같다. 최종 버전에서 내가 정말 멋지게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라이언 레이놀즈는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주연 배우와 제작자로서 각각 달라 보이던가?
물론이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촬영 분량이 없는 날에도 현장에 나왔다. 항상 자리를 지키며 모니터링을 했고 뭔가 좀 아니다 싶으면 대사를 바꿔보기도 했다. 이 작품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느껴졌다. 이 작품뿐 아니라 그는 뭘 하든 그럴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영화 <프리 가이> 스틸컷
<프리 가이>를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면에서 거대하기 때문이다. 다채롭고 몰입감이 강렬하다. 비디오게임 속 세계에 있다가 갑자기 현실 세계로 돌아와 ‘아, 원래는 이 세계에 있었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굉장히 재미있다. 보면서 신나게 웃었다.
극장에 가서 감상하며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다. 사실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영화는 사람들을 배꼽 빠져라 큰 소리로 웃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빨리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다.
정리. 김송희|사진 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