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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7 에세이

2030의 오늘은 - 꽤 괜찮은 대답

2024.04.09

“좋아하는 지역이나 공간 있으세요? 스트레스 받을 때 간다거나 마음이 편해져서 자주 가고 싶은 곳이요.” 동료가 점심 식사 중 찾아온 정적을 깨며 질문을 던졌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라 0.5초간 속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곧바로 음… 소리를 내며 눈동자를 굴렸다q. 최선의 답을 고민하고 있다는 비언어적 표현을 활용하며 눈동자보다 더 빠르게 발등에 불 떨어진 적토마를 타고 일생을 거슬러 올랐다. 어디를 가든 괜찮았다거나 사람 사는 데가 거기서 거기라 비슷비슷하게 느껴져 딱히 없다는 말과 함께 머쓱하게 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소에 대한 기준이 관대한 나는 여기는 이래서 좋고 저기는 저래서 좋았는데 어떻게 정하냐고 혼란스러워하며 과거를 달렸다. 입술을 다물고 음… 소리를 내는 시간은 실제로 2초 정도 흘렀겠으나 이 상태도 엄밀히 따지면 정적에 가까워 식은땀이 났다. 그냥 아무거나 말해! 일단 뱉어!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자아가 소리쳤다. 정말 대부분 괜찮았기에 막 지나는 기억의 지점을 말하고 싶었지만 성의 없는 말처럼 들리면 어쩌나 망설여졌다. 상대는 별 기대 없이 던진 질문이라 뭐라고 하든 크게 상관없었을 텐데 멋진 취향을 곁들인 생각이 오고 가는 자리라 비슷한 결로 말하고 싶었다. 앗, 이렇게 1초가 또 지나갔다.

이제는 음… 대신 두 입술을 움직여 단어다운 단어를 뱉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조금 더 지체하면 질문이 다른 사람한테 어색하게 넘어가거나 화제가 삐걱거리며 전환될 흐름이 느껴졌다. 멋쩍게 웃으며 고르기 어렵다고 할 것인가, 안장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이며 또 다른 내가 목 놓아 소리치고 있는 문장 그대로 다 좋다고 할 것인가. 중심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했지만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 적토마도 모든 체력을 소진한 듯 그대로 주저앉았다. 너덜너덜해진 머릿속과 달리 뿌리가 단단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내고 싶어 성대에 힘을 주었다. 그럴싸한 포장을 고민하다 또 1초가 지나기 전에 얼른 입술을 움직였다.

어머, 나 집 좋아하고 있었잖아

“집이요.” 집이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바로 내뱉지. 얼마나 근사한 문장을 만들려고 시간을 끌었을까. 그래도 질문에는 아주 적확한 답이었다고 자신을 달랬다. 스트레스 받을 때 혼자 있고 싶어지면 가고 싶은 곳이자 무슨 행동을 해도 마음이 편해서 자주 가고 싶은 곳. 세상이 나를 미워한다고 느껴지면 견디고 견디다 도망쳐 달려가고 싶은 곳. 끓어오르는 분노와 감추고 싶은 수치심을 숨기지 않고 벽에 대고 마구 토해내도 묵묵히 들어주는 곳. 나에게는 집이었다.

이번에는 빈틈없이 그럴싸한 근거를 이어 말했다. 후줄근하게 있어도 편하잖아요. 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얼마나 좋으면 학교 다닐 때도 1교시 전부터 집에 가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성인이 돼서도 그렇더라고요. 이불은 점점 어두워지는 방에서 혼자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얼른 가서 함께 있어주고 싶어요. 대부분 겪어봤을 만한 경험을 곁들이며 쾌활하게 웃으니 주변에서 공감의 호응이 나왔다. 대답할 차례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옮겨갔다. 한결 편해진 상태로 대화의 흐름을 쫓으며 방금 불쑥 튀어나온 나의 말을 곱씹었다.

자다가 뒤척일 때 나는 소리를 들으면 벌레인가 싶어 잠이 확 달아나는 집. 겨울에는 웃풍과 제대로 돌지 않는 보일러 때문에 야외 캠핑하는 심정으로 날숨에 그려지는 허연 입김을 세는 집. 여름에는 창문을 열어도 종이가 축축해질 정도로 습해 책 한 권 마음 편히 놓을 수 없는 집. 가끔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취가 올라와 강제로 외출하게 만드는 집. 계단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이름 모를 사람의 발소리와 말소리로 새벽에도 느닷없이 잠을 깨우는 집. 외로운 타지에서 나를 강하게 키워내고 있는 빨간 벽돌 월세 집.

어머, 나 집 좋아하고 있었잖아. 더 나은 조건으로 이사를 갈망할 때도 많지만 집은 집이라고 좋아하는 공간이었구나 싶어 새삼스러웠다. 내가 가진 좋아함의 기준이 관대해서일까, 아니면 함께 보낸 시간만큼 정들어서일까. 끝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며 마지막 한 숟갈을 입에 넣었다. 문득 어서 집에 들어가 냉랭해졌을 공기를 체온으로 데워주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퇴근까지 한참 남았다.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 ‘사단법인 오늘은’의 아트퍼스트 에세이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챙김을 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매주 글을 쓰고 나누며 얻은 정서적 위로를, 자기 이야기로 꾹꾹 눌러 담은 이 글을 통해 또 다른 대중과 나누고자 합니다.

김수진
어제의 기록이 오늘의 경험과 만나 더 나은 내일로 연결된다고 믿습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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