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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6 인터뷰

<여공의 밤> 김건희 감독

2024.02.16

서울 영등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감독이 이제 타지에서 그곳을 바라본다. 전작을 통해 당산, 청파동 등 공간의 함의를 탐구해온 김건희 감독은 <여공의 밤>을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존재하던 방직공장과 당시 총동원령으로 그곳에 끌려와 일하게 된, 이제는 노인이 된 여성들을 만난다. 역사의 증언을 따라가다 보면 영등포가 거쳐온 변화가 자연스럽게 선명해진다. 방직공장과 기숙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 구청의 철거 조치 공지문이 붙은 홈리스의 짐, 텅 빈 공장과 꽉 채워진 복합 쇼핑몰이 동시에 존재하는 영등포엔 “영등포까지 울며 왔다.”고 말하는 1931년생 이옥순 씨의 기억, 수많은 여공들의 애환이 있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촬영된 사진 한 장을 발견하면서 <여공의 밤> 작업을 시작한 김건희 감독을 만났다.


© <여공의 밤> 김건희 감독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섹션에서 영화가 공개되었습니다. 영화제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경험은 어땠나요?
부산국제영화제는 첫 상영이어서 많이 떨렸고요. 관객들이 각기 다르게 영화를 바라봐주시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관객들이 해석해서 영화를 풍부하게 이해하실 때 놀랍고 좋았어요.

<여공의 밤>은 영등포의 옛 방직공장을 중심으로 복합 쇼핑몰, 골목, 모텔촌, 사거리 등을 조명합니다. 전체 촬영 기간은 어느 정도였는지, 어느 정도 규모를 촬영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작업 자체는 2019년 5월부터 시작했고 테스트 촬영은 그해 8월에 시작했어요. 전체 촬영은 3년 남짓이었고요. 영등포의 다양함, 시간이 얽혀 있는 요소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한 영화에 담기는 좀 어려워서, 방직공장의 터를 조명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뒀고요. 그 외에도 공간의 젠더적 특성이 확 바뀌는 경우를 촬영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현재 공구상가엔 주로 남성들이 있지만, 거기에도 여성들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여성의 공간이었지만 남성의 공간으로 바뀐 곳을 촬영했어요. 멀리서 집창촌도 촬영했는데, 영화에 넣는 게 맞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여성들이 있는 곳이지만 굉장히 남성의 공간이라고 여겨졌거든요. 사실 그 공간도 일제강점기부터 있었고, 미군 부대가 들어오면서 더 활성화가 됐죠. 모텔촌의 경우도, 영화에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원래는 여성들이 방직공장으로 끌려가지 않았을 때는 여관 같은 데에 가둬두기도 했다는 점을 짚고 싶었어요. 모텔을 쓸고 닦고 관리하는 게 거의 여성들이기도 하고요. 그들이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궁금했어요.

© 영화 <여공의 밤> 스틸

영등포 방직공장에서 일한 인터뷰이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인터뷰까지의 설득의 과정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해방 직전, 태평양전쟁 때문에 공장으로 동원된 분들을 만났는데요. 그분들은 식민지 권력에 의해 동원된 ‘노무자’라고 정의돼요. 각 시도청과 동주민센터에 연락을 했어요. 국가 강제동원자 관련해서는 경기도청에서 유일하게 전수 조사와 관리가 이루어지는 상태였고요. 영등포 방직공장에 동원된 두 분을 알게 됐는데, 한 분은 너무 억울해서 본인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셨어요. 또 다른 분은 아드님이 인터뷰를 하자고 설득하셨고요.

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당산>, <청파동을 기억하는가>처럼 공간을 조명하는 영화가 많아요. 감독님이 각별하게 느끼는 공간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의문이 남는 공간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여기 왜 이러지?’ 같은 생각이 드는 이상한 곳이요.(웃음) 공간을 보면 직감이 와요. 사실 영등포와 당산은 제가 오랫동안 살았던 곳이어서, 지금과는 또 느낌이 다른데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치안이 안 좋았어요. 공장과 아파트 등 성격이 다른 건물들이 얽혀 있었죠. 너무 많은 맥락이 있는 공간이라고 할까요? 청파동의 경우 재개발 문제로 논의가 많았던 공간인데요. 사라질지도 모르는 공간에 대한 궁금증, 그 공간을 남기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요즘에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공간이 있나요?
진짜 많은데, 서울 자체도 저는 이상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제가 가는 곳은 늘 똑같아요. 우연한 계기로 평소 안 가는 데를 가게 되면 신기해요. 얼마 전 구일동에 가게 됐는데, 진짜 이상한 거예요.(웃음) 차도와 인도의 구획이라든가, 급커브 구간이라든가…. 편의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송역 같은 공간에도 관심이 가요.

<여공의 밤>을 보면 여성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100년 전 여성 노동자들의 흔적을 찾으면서 지금의 여성 노동자에 대해서 고민하신 지점도 궁금해요.
과거엔 그들이 개개인의 정체성이 다 지워진 채로 모여서 먹고 자고 일하는, 집단의 형태로 존재했다고 보거든요. 지금은 좀 다른 의미로 개인이 지워져서, 여성 노동자들이 있지만 없는 듯하게 보이는 게 특징 같아요. 사실 타임스퀘어 같은 경우만 해도 점포를 지키고 일을 하는 여성들이 많잖아요. 영화에 마네킹이 서 있는 쇼윈도를 비추는 장면이 있는데, 그 마네킹에 옷을 입힌 것도 일하는 여성들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거리의 식당에서도 개인은 거의 보이지 않고요. 사람들은 분명 일하고, 그 노동에 의해 우리가 뭔가를 소비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조명하고 싶었어요.

탐구하고 싶은 지역이나 역사, 인물들이 있나요?
<여공의 밤>은 전체 촬영 분량의 반만 담겨 있어요. 더 많은 걸 찍었는데 도저히 한 영화에 담을 수 없어서 다른 영화로 담아내기로 했는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일본에 정신근로대로 갔던 분들을 인터뷰하기도 했거든요. 식민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 전국 곳곳에서 사라지는 추세인데, 그곳을 담은 기록을 모아 만들 예정입니다. 강제동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하더라고요. 피해자들에 따라 자신의 경험을 축소하거나, 꺼내놓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시기도 하고요.

조명이 교차하는 장면은 마치 네온사인을 포착한 듯해요. 빛을 활용한 장면들이 <여공의 밤>에서 중요했던 이유는 뭘까요?
네온사인이 영등포를 상징하는 요소라고 생각했어요. 휘황찬란하고 밤인데도 밝게 빛나는데 피해자들이 1940년대 말 영등포로 동원됐을 때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었죠. 빛 자체가 귀한 시기였잖아요. 뭔가 잘 보이지 않고, 피해자들의 역사도 가시화되지 않는 것에 비해 영등포는 너무 화려하고 모든 걸 잘 볼 수 있는 환경이라 대비를 두고 싶었어요.
특히 정월대보름에 달집을 태우는 영등포구 행사 장면을 촬영할 땐, 그 광경이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농촌에서 하는 행사가 도시에서 열린다는 것, 소원을 적은 종이를 붙여서 태운다는 것이 그렇게 다가왔는데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어린 시절 공장으로 끌려가셨잖아요. 당시 가족들도 소원을 비는 마음으로, 피해자들이 건강하게 돌아오길 바라지 않았을까 싶었고요. 그리고 이 행사가 굉장히 규모가 커서, 구의원 같은 사람들도 참여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해요. 소원을 비는 것조차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역사와 연결된다고 느꼈어요. 할머니들이 식민지 권력에 의해 부름을 받았듯이요. (일종의 퍼포먼스인 거네요.) 맞아요. 굉장히 큰 ‘불멍’을 영등포 구민들이 하는 거예요.(웃음) 그 광경을 고층 빌딩이 빼곡한 도시가 바라본다는 생각도 했고요.

<당산>을 만들고, 당산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셨다고요. <여공의 밤> 이후 영등포를 대하는 마음은 어떻게 변화하셨나요?
영등포에서 오래 살았는데도 늘 불편했거든요. 무섭기도 했고요.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를 고민했어요. 한동안 밀착된 공간이었다가 이제 거리를 두고, 영등포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아주 편안하진 않지만, 영등포도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라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준비 중이신 다른 작품이 궁금합니다. 역시 공간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일까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바로 제작하긴 힘들 것 같고, 페미니즘 관련해서 단편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화가 나서 안 할 수가 없어서요.(웃음) 분노의 힘이 담긴 영화가 될 듯해요. 또 장편으로는 디지몬 애니메이션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전부터 시도하고 싶었거든요. 디지몬을 보고 자란 우리 세대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여전히 디지몬을 좋아하는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요. 저에게 최초의 디스토피아는 디지몬이에요.


글. 황소연 | 사진제공.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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