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좋아하는 동네를 꼽아보라 하면 꼭 손가락 안에 들곤 하는 부암동. 인왕산과 북악산에 둘러싸여 북한산을 바라보는 부암동은 유독 한적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풍긴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미술관, 성곽길을 따라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책로, 골목마다 오밀조밀 자리하고 있는 작은 가게들. 산자락 능선을 타고 자리 잡은 동네는 언제 걸어도 좋지만, 날씨가 좋으면 산책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날씨가 좋을 때면 찾게 되는 부암동의 공간들을 소개한다.
글 | 사진. 김윤지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청운문학도서관
인왕산 자락을 품은 청운문학도서관은 우리가 흔히 아는 도서관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한옥 대청마루에서 독서와 사색을 즐길 수 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이나 3호선 경복궁역에서 버스를 타고 ‘자하문고개, 윤동주문학관’에서 하차한 후, 5분 정도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청운문학도서관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이정표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 나무들 틈으로 한옥 기와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지하층과 지상층 총 2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정표를 따라 내려가면 가장 먼저 지상층에 위치한 한옥 열람실과 세미나실이 우리를 반긴다.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 곳으로 행사가 없을 땐 이곳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열람실 바로 옆에 위치한 정자야말로 청운문학도서관의 백미. 활짝 열어젖힌 창 너머로 계단식 폭포가 흘러내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한옥에도 책이 비치되어 있어 빈손으로 가도 독서를 즐길 수 있지만, 지하층에 마련된 열람실에서 책을 빌려와도 좋겠다. 열람실의 크기는 아담하지만, 문학 특성화 도서관답게 외국 문학 작품을 포함, 국내 작가들의 시와 소설, 수필 위주의 다양한 문학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대청마루에 앉아 청량한 폭포 소리와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잠시 이곳이 서울의 한가운데라는 걸 잊는다.
운영시간 화~금 10시부터 21시까지/ 토~일 10시부터 19시까지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36길 40

여유를 느끼며, 레이지버거클럽
버거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한 이곳은 작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즐비한 부암동에서 단연 눈에 띄는 존재. 미국식 수제버거로 유명한 곳답게 간판부터 내부까지 미국 영화에 나올 법한 이국적인 분위기를 띤다. 부암동 주민센터를 지나 창의문 삼거리로 올라가다 보면 만나볼 수 있는데, 가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통창 너머의 풍경이 우리를 반긴다. 벽면이 모두 창으로 되어 있어 어디에 앉든 부암동 전경이 내려다보이지만, 창가 쪽 소파 자리가 비어 있다면 창가로 향하자. 날이 따뜻해지면 활짝 열어놓은 통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수제버거를 즐길 수 있는데, 날씨가 좋을 때면 꼭 이곳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 좌석 배치와 창 너머의 북악산뷰는 이곳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에 한몫한다.
클래식한 치즈버거부터 시그니처 소스가 들어간 클럽 버거, 느타리버섯이 들어간 매직 머쉬룸 버거까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개성 넘치는 버거도 이곳의 매력. 이날, 에디터는 고추장 버터에 구운 새우에 바나나가 곁들여진 티키 쉬림프를 주문했는데, 촉촉한 빵과 고소한 새우, 달달한 바나나 사이로 씹히는 당근의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프렌치프라이, 어니언링, 콘립 등 버거에 곁들이면 좋을 사이드와 쉐이크, 맥주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역시 통창으로 된 주방 너머로 수제버거 제조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는 덤.
영업시간 매일 11시부터 20시까지
주소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37 2층

작은 이탈리아, 알리멘따리 꼰떼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낮은 건물 외관이 발길을 붙잡는 이곳은 청운문학도서관에서 레이지버거클럽으로 향하는 경사진 골목에 위치해 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언뜻 보이는 빈티지한 장식품과 향긋한 레몬, 허브 토분은 이탈리아의 작고 소박한 식료품점을 연상케 한다. 마치 여행을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다섯 평 남짓의 공간을 소품과 식료품으로 남김없이 채운 그로서리는 작은 쇼핑 공간이지만 제품 구성이 알차다.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주인장이 오픈한 이탈리안 식료품점으로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각종 햄과 치즈, 오일, 이탈리아식 파스타 등 현지 식료품이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기성 제품 외에 주인장이 직접 현지의 레시피로 만든 바질 페스토, 무화과 잼, 레몬 민트 잼, 각종 채소절임 등 이국적이고도 푸근한 맛을 내는 수제 잼과 절임류도 추천할 만하다.
영업시간 수~일 10시부터 18시 30분까지 (매주 월, 화 정기 휴무)
주소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33

고양이, 커피, 재즈 그리고 제비꽃다방
부암동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터줏대감 제비꽃다방은 카페 겸 와인바로 운영되고 있다. 부암동 주민센터 건너편 건물 2층에 위치해 있는데,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양이 두 마리와 앤틱한 가구, 그리고 창 너머로 펼쳐진 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통창으로 보이는 가로수가 사계절마다 다른 분위기를 주는 이곳은 자연광이 조명의 역할을 해 어느 계절에 방문해도 따뜻함이 물씬 느껴진다.
내부는 넓은 편으로 혼자 온 손님부터 단체 손님을 위한 좌석까지 테이블 형태 또한 다양하다. 주문은 자리에서 큐알코드로 가능한데, 이곳이 처음이라면 수제커피를 마셔볼 것을 권한다. 원두는 물론 핸드드립, 모카포트, 프렌치 프레스, 핸드 프레스 등 추출 도구도 선택 가능하다. 원두는 적당한 산미에 산뜻한 과일 향이 느껴지는 ‘제비꽃 블렌딩’을 추천한다. 와인, 상그리아, 하이볼 등 주류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데, 바틀 와인이 5만 원 내외로 가격 또한 합리적인 편이다. 마치 춤을 추듯 가게 안을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고양이 두 마리에 느긋한 재즈까지 더해져 절로 나른해지는 이곳은 해가 질 때쯤이면 더욱 매력적이니 부암동 산책을 마무리할 공간을 찾고 있다면 이곳으로. 비정기적으로 공연이나 전시도 열리고 있으니 방문에 참고하자.
영업시간 화~금 17시부터 24시까지/ 토~일 13시부터 24시까지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주소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46 2층
* 이 기사의 제목은 이도우 작가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시공사 펴냄, 2018)에서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