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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0 에세이

2030의 오늘은 - 나만의 김종욱 마주 보기

2024.05.16

글. 이주희

뒤늦게 <김종욱 찾기>를 보았다. <김종욱 찾기>는 창작뮤지컬로 첫사랑인 김종욱을 찾으려는 서지우와 서지우의 첫사랑을 찾아주는 한기준의 이야기다. 공연을 다 보고 난 뒤에 여운이 남는 장면은 <김종욱 찾기> 하면 바로 떠오르는 연애가 아니었다. 사랑이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9년이 지난 현재에도 나아가지 못하는 서지우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서지우가 김종욱을 마주 보고 나서야 현재를 나아가는 장면이었다.
서지우가 김종욱을 만난 후에 한기준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김종욱을 직시하지 않으면서 생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욱더 김종욱을 마주 보기 어려워졌다고. 사랑이 정말 변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무서웠다고. 실제로 만나보니 다 허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허무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다고.
유일하게 이름이 고정되어 있고, 공연명에도 들어가는 ‘김종욱’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봤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미리 겁먹어 피하기만 하고, 실제로 마주 보기 어려웠던 모든 것들을 김종욱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나에게 어떤 김종욱이 있는지 돌아보았다. 나에게는 인간관계가 김종욱이었다. 서지우가 사랑이 변할 것이 무서워 김종욱을 마주하지 못했다면, 나는 타인이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줄 거라는 믿음이 없어 김종욱을 마주하지 못했다.
지인들은 나에 대해 “너처럼 아는 사람이 많고, 다른 사람이랑 잘 지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네가 인간관계를 못하는 거면 다른 사람들은 다 못하는 거지.”라고 이야기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깊은 속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고, 타인이 좋아할 것 같은 모습만 보여줬기 때문에 저런 평가가 나올 수 있는 거니까.
속이야기를 하면 지금 좋은 관계가 깨질 것 같아 하지 못했다. 서지우가 처음 느꼈던 설렘의 사랑이 변할 것 같아서 사랑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관계가 쉽게 깨진다고 느낀 경험들이 많아서 더 겁먹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특별한 이유 없이 나를 따돌렸다. 함께한 시간이 아무리 많더라도 사람은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따돌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반 전체의 따돌림이 되었다. 혼자 버티다 너무 힘들어 부모님께 용기 내서 이야기했다가 오히려 혼만 났다. 따돌림을 당하면 안 당하도록 노력해야지 왜 전학이라는 도망을 선택하느냐고. 가장 가까운 가족이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데 과연 타인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막상, 별거 아닌 많은 것들
그 후에도 비슷한 경험들이 계속되었다. 인간관계가 깨지는 경험이 쌓일수록 깊은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피상적인 인간관계만 하기 시작했다. 깊은 관계가 되었을 때 신뢰가 깨지는 것보다 얕은 관계일 때 신뢰가 깨지는 것이 덜 힘들었기 때문에.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인간관계가 두려워서 그랬다.
얕은 관계가 많아질수록 마음이 편해야 했는데 아니었다. 더욱 외로워졌고, 더욱 나의 모습을 잃어갔다. 나의 김종욱을 정확히 마주 보고 실제로 두려운 것이 맞는지 확인했어야 했는데, 무서울 거라 생각하고 도망가서 그런 것 같았다. 분명히 두려움을 피하고 앞으로 나아간 줄 알았는데, 피한 상태에서 꼼짝도 못 하고 서 있었다는 걸 공연을 보고 난 뒤에야 알았다.
김종욱을 마주 보는 건 엄청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하니 별거 아니었다고 이야기하는 서지우처럼 나도 요즘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 계기는 에세이를 쓰는 수업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마음을 돌아보는 수업이라 그런지 참석자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글과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의 글을 읽어가면서 용기 내어 나 또한 속이야기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이후 예전부터 친했던 사람들에게도 나의 속내를 조금씩 꺼내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걱정과는 다르게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
아직 나아가는 중이지만, 혹시 나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만의 김종욱을 찾아서 마주해보라고.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나도 나만의 김종욱을 찾아 계속 마주 보려고 노력할 거다. 그러고 난 뒤 나의 모든 김종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마음의 짐 없이 가볍게 다닐 것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후련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의 김종욱을 마주 보면서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기를 응원한다.

* ’사단법인 오늘은’의 아트퍼스트 에세이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챙김을 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매주 글을 쓰고 나누며 얻은 정서적 위로를, 자기 이야기로 꾹꾹 눌러 담은 이 글을 통해 또 다른 대중과 나누고자 합니다.


이주희
글쓰기를 통해 저를 처음으로 돌아보고 그제야 숨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나에 대해 알아가는 글을 쓰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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