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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9 컬쳐

아무튼, 하마구치 류스케 ― 사람의 영화에 깃든 시간

2022.07.21

ⓒ 영화 《해피 아워》 스틸

“그 자신이 구축하는 세계, 그의 시선이 다다르는 곳에는
언제나 자기 내면의 소리든 타인의 소리든 ‘듣는 자’들이 있다.”

아무튼, 하마구치 류스케다. 2019년 서울에서 진행한 인터뷰로 처음 그와 만난 이후 올해까지 그의 영화에 관해 소개하고 말하고 쓸 기회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땐 프로그래머로 일본 영화의 현재를 조명하는 기획을 진행해 그의 영화를 상영했다. 당시 ‘낭뜨 3대륙 영화제’ 참여차 프랑스에 머물던 그와 화상으로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올해는 ‘무주산골영화제’ 특별전의 주인공인 그에 관한 소책자를 만드는 일을 하며 또 한번 하마구치 영화를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얼마 전 국내에 발간한 그가 직접 쓴 책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영화 ‘해피 아워’ 연출노트와 각본집>(2022, 모쿠슈라)의 한국어판에도 <해피 아워>(2015)에 관한 비평으로 참여했다. 하마구치 영화에 관해 쓸 수 있어서, 그의 영화에 작게나마 첨언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뻤다. 동시대 영화인들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적극적인 관객들에게 최근 몇 년간 가장 뜨거운 이름이 누구냐고 하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영향 아래 나 역시 얼마간 함께하고 있다. 어쩌면 꽤 깊은 인연이라 말해야 할까. 창작자의 창작 세계의 잠정적 현재라 할 창작물과 만나왔고 심지어 만든 이와 직간접적으로 만나 작품에 관해 말할 일이 이어졌으니 이만하면 누군가의 심도와 만나고 있다고 하고 싶어질 정도다.


ⓒ 영화 《해피 아워》 스틸

하마구치 류스케가 배운 것들
하마구치 류스케. 도쿄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도쿄예술대학교대학원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그는 졸업 작품 <열정>(2008)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엄청난 영화광인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존 카사베츠와 에릭 로메르, 하워드 혹스 등을 언급하며 자신의 영화적 자양분에 관해 말해왔다. 그 가운데 대학원 재학 당시 만난 스승 구로사와 기요시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구로사와는 영화를 만든다는 건 ‘기록하는 것’과 ‘허구를 작동하는 것’, 양립할 수 없는 두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해왔다. 다시 말해 이 말은 카메라가 하는 일과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한 말이기도 하다. 하마구치는 이 말에서 힌트를 얻는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가 가장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카메라가 기록할 수만 있다면, 그럼 뭔가 조금 더 괜찮은 영화를 찍을 수 있지 않겠는가를 생각한 것 같다.

하마구치 류스케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라면 2011년 3월 11일의 동일본 대지진이다. 지진 이후 센다이 미디어 센터는 재해 이후의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사람을 물색했고 도쿄예대 대학원의 추천으로 하마구치가 이 작업에 합류한다. 하마구치는 이른바 ‘도호쿠 기록 영화 3부작’으로 명명되는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폐허가 된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여전히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카메라에 담는다. 이 과정에서 그가 가장 크게 이해한 것은 ‘좋은 목소리’ 즉, 사람들 내면의 소리, 오장육부를 거쳐 나오는 이야기를 잘 ‘듣는’ 법이다. 그때 깨달은 바를 하마구치는 이후 자기 영화의 근간으로 삼게 된 것 같다. 그 자신이 구축하는 세계, 그의 시선이 다다르는 곳에는 언제나 자기 내면의 소리든 타인의 소리든 ‘듣는 자’들이 있다.

ⓒ 영화 《해피 아워》 스틸

우리가 들을 수만 있다면
하마구치의 연출의 비밀과 그 힘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있다면, 그가 배우와 소통하는 방식과 연기 연출법일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허구의 세계를 연기로 실행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의 문제. 여기에 영화의 사활을 거는 하마구치. <해피 아워>야말로 그것을 집약한 가장 좋은 예의 영화다. 도호쿠 지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작업한 직후였다. 2013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하마구치는 고베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즉흥연기 워크숍 인 고베’를 진행한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17명의 참가자 가운데 3분의 2가 연기 경험이 전무했다. 워크숍을 시작할 때부터 이 과정 끝에 뜻이 동하는 사람들끼리 영화를 만들자는 전제가 있었고 그 결과물이 지금 우리가 보는 <해피 아워>다. ‘듣는’ 일이 이 워크숍의 핵심이었다고 한다. 참가자들끼리 서로를 인터뷰해보기, 안무가를 초대해 다른 방식으로 상호 소통하는 걸 체험하기 같은 게 대표적이다. 그 과정 끝에 영화가 된 <해피 아워>를 보게 된다면 바로 알 것이다. 이 영화는 30대 중반을 넘어선 네 명의 친구 아카리, 사쿠라코, 후미, 준이 각자 외면해왔던 제 안의 목소리를 듣기까지의 시간이다. 그렇기에 막상 영화를 보다 보면 5시간 17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무리가 되지 않는다. 잘 듣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도 그건 마찬가지다.

시간의 영화, 사람의 영화
그러니까, 돌이켜보면 지난 몇 년간 나로서도 하마구치와 함께한 시간이었고 하마구치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창작자의 창작 세계의 핵심이라 할 창작물을 통해서 그와 깊이 만나왔다. 그의 영화에서 시간은 달리 쓰면 사람이다. 시간의 영화라 쓰고 사람의 영화라 읽는다. 아무튼, 지금은 하마구치 류스케다.


글.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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